본문 바로가기

중국 수필, 단편소설

모어(母語)의 처마 밑에서; 在母语的屋檐下 (四) - 끝 : 彭程 ㅡ 2/2 오늘날, 이 시대는 전 세계가 한 울타리 같이 되어, 교류는 빨라졌고, 정보는 활발히 통한다. 하지만 언어는 오히려 강세와 약세의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상업 왕래, 무역 전개, 국제업무, 이런 것들은 매개가 없으면 안 된다. 또한 직위 초빙, 직무평가 역시 언제나 언어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언어 패권의 배후에는 지나간 영광 혹은 현재의 실력이 드러나 보인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모어(母語)는 다른 언어 사람들의 것이고 그것들은 영원히 단지 도구일 뿐이다. 언어가 다른 사람들은 모어의 따듯함과 속성, 비유를 하는 감각, 암시하는 말, 역설적으로 하는 말 혹은 겉으로는 칭찬하며 속으로는 억누르는 말을 깊이 느끼지 못한다. 이런 모든 것이 한 개인이 모어에서.. 더보기
모어(母語)의 처마 밑에서; 在母语的屋檐下 (四) : 彭程 ㅡ 1/2 나는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냈다. 나는 막 일을 기억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나이였는데 어느 여름날, 어른들이 오수를 즐기고 있을 때 혼자 문을 나와 밖으로 놀러 나갔다. 나는 깡충깡충 뛰어 달아나는 토끼를 보고 정신없이 쫓아가느라 얼결에 멀리 갔는데, 동네 밖을 벗어나 계속 울창한 숲 속으로 걸어가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무서워서 엉엉 울었다. 하지만 사방에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나는 길을 찾으려고 정신없이 숲 속을 돌아다녔다. 꽤 오랫동안을 헤맸을 때, 문득, 나무들 사이로 마을 끝 어느 집 처마가 보였다. 공중에 매달린 것 같이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땅 위로 내려온 듯, 안도감이 들었다. 장기간 객지를 유랑하던 사람에게, 모어(母語)의 친숙한.. 더보기
모어(母語)의 처마 밑에서; 在母语的屋檐下(三) : 彭程 ㅡ 2/2 한 민족을 멸절시키려면 반드시 그들의 언어를 박탈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민족의 역사와 기억을 연결하고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를 수호한다는 것은 바로 민족의 존엄을 보호하고 일종의 문화의 유전자를 전하는 것과 같나. 역사상 유태인은 많은 괄시와 배척을 받았고, 길게는 수십 세기 동안의 좌절하며, 정처 없는 유랑을 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완강하게 자기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왔기 때문에 꺼지지 않는 불을 계속 유지했고, 강인하게 맥을 연속시킬 수 있었다. 마치 고시(古詩)에 나오는 离离原上草, 野火烧不尽, 只缘疮痍满目焦土无边之下, 生命的根系依然葳蕤와 같다. (唐代 백거이의 시: 들판의 무성한 풀은, 들불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다 태울 수 없다. 만신창이가 된 끝없는 잿더미 아래.. 더보기
모어(母語)의 처마 밑에서; 在母语的屋檐下(三) : 彭程 ㅡ 1/2 "열려라, 참깨!." 주문을 외우자 동굴 돌문이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열렸고 쌓여있는 구슬과 보물들이 번쩍번쩍 빛났다. 하지만, 언어의 깊은 뜻을 통찰하고 파악하는 데, 주문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시간은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하나의 언어에 잠겨져서 충분히 오랜 시간을 거쳤다면, 자연스럽게 그것의 정교하고 미묘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저장하여 숙성시킨 술은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짙은 향이 배어난다. 오이가 익으면 저절로 꼭지가 떨어지고,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어나는 것처럼, 일정한 때가 되면 언어의 신비와 매혹은 그 실마리가 드러날 것이다. 음조가 오르고 내리는 성조(声调)에, 화필로 이리저리 내리긋는 획에, 꽃송이가 하늘거리는 모양, 바람에 불어 물결이 만드는 파도, 밝은 햇살 아.. 더보기
모어(母语)의 처마 밑에서; 在母语的屋檐下(二) : 彭程 언어에 대한 이름 짓기는 언어 자체처럼 풍부하고 다채롭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언어를 촉각과 안경에 비유했다. 우리는 그것들을 빌어 사물을 만져보고 생활을 관찰하며 존재를 확실하고 견실한 관계로 구축한다. 세상은 언어 가운데서 드러나 보이는데, 태양이 아침 햇살 가운데 내려오는 것과 같고, 폭풍우가 구름 사이에서 축적되는 것과 같고, 한 방울의 먹물이 화선지에 천천히 번져나가면서 한 마리의 올챙이도 되고, 한 조각의 꽃잎도 되고, 하나의 돌도 되는 것과 같다. 언어는 당연히, 맨 먼저 표현과 교류를 위한 것이지만 이런 수단 성격의 기능 위에 훨씬 특별한 하나의 자족적이고, 풍부하고, 방대하면서도 정교하고 오묘한 아름다음이 있다. 이런 아름다움을 깊이 느끼고 정확하게 감상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하.. 더보기
모어(母語)의 처마 밑에서; 在母语的屋檐下(一) : 彭程 소년 시절 친구가 바다를 건너 친지를 방문하러 왔다. 여러 해 동안 못 보았던 터라 우리는 밤새도록 술을 들며 긴 얘기를 나누었다. 80년대 중반, 복단대(复旦大学) 본과를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간 지 근 30년이 흘렀지만 영어의 유창한 정도는 모어(母語) 보다는 한 수 아래였다. 우리는 고향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우리 고향의 방언에 대해 장시간 고정된 회제로 삼았다. 갑자기 재미가 들어, 우리 두 사람은 아예 고향 말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처럼 방언을 말할 기회가 많지 않으니, 대화 중 개별적 단어에 대하여 생소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나는 얼른 보통화(普通话 : 북경 표준어)로 바꾸어 말했다. 상대방도 습관적으로 자주 한 두 마디 영어가 섞여 나왔다... 더보기
出鏡 5 (끝). (회면에 등장하기) : 南帆 그런 급진적인 사상가들이 지금 이 세대를 "경관 사회(景观社会 : 겉모습 사회)"라고 묘사하기 시작했다. 큰 거리는 네온사인, 쇼윈도, 그 밖에도 무수한 그림, 사진과 디지털 영상들로 넘쳐난다. 우리는 어디나 다 있는 도시의 소음을 불평해왔으나, 현재는, 시각 쓰레기가 이미 산같이 쌓였다. 우리가 매일 보게 되는 것은 인공적인 경관 아닌 것이 없고, 진짜 대자연의 산과 강은 벌써 우리의 시선 범위 밖으로 떠나가버렸다. 당연히, 우리가 바로 시각 쓰레기의 생산자이다. 사진을 찍고, 인터넷 공간에 올리는 일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매일 거행하는 일과이다. 설령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는다 하더라도, 병상에 눕기 전 한 가지 할 일이 있는데, 바로 동행한 사람에게 휴대폰을 건네주고 ---- 찰칵 찍어서, 인.. 더보기
出鏡 4. (회면에 등장하기) : 南帆 노신(鲁迅)이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에 종사하게 된 전고(典故 : 이유, 까닭)는 이미 많은 토론을 불러일으켰고, 교수들은 그것을 "환등기 사건"이라 불렀다. 교수들은 이 전고를 우화(寓話)로 보는 것을 거절했다. 그들의 지나치게 따지는 고증 벽은 이것을 이미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확정 지었다. 이 때문에 이런 종류의 사소한 일들도 반드시 고증을 필요로 했다. "환등기 슬라이드가 사진이었나? 실물 보존은 어디에 되어있지? 어떤 시간에 보았을까? " 의 자서와 에서의 서술은 얼마나 많이 차이가 나나? 실마리가 다른 토론 중에 한 가지 재미있는 문제가 점차 드러났다. 그것은 보는 것(看)과 보여지는 것(被看)이다. 죄수를 보는 "구경꾼", 죄수를 관찰하는 사람을 보는 "구경꾼" 노신, 그리고 노신과 함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