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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모어(母語)의 처마 밑에서; 在母语的屋檐下 (四) : 彭程 ㅡ 1/2

 

나는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냈다. 나는 막 일을 기억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나이였는데 어느 여름날, 어른들이 오수를 즐기고 있을 때 혼자 문을 나와 밖으로 놀러 나갔다. 나는 깡충깡충 뛰어 달아나는 토끼를 보고 정신없이 쫓아가느라  얼결에 멀리 갔는데, 동네 밖을 벗어나 계속 울창한 숲 속으로 걸어가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무서워서 엉엉 울었다. 하지만 사방에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나는 길을 찾으려고 정신없이 숲 속을 돌아다녔다. 꽤 오랫동안을 헤맸을 때, 문득, 나무들 사이로 마을 끝 어느 집 처마가 보였다. 공중에 매달린 것 같이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땅 위로 내려온 듯, 안도감이 들었다.

장기간 객지를 유랑하던 사람에게, 모어(母語)의 친숙한 음조는 당연히 이와 같은 일종의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온 느낌을 가져다준다. 중국어 백성은 타향에 얹혀살아도 모어는 바로 고향의 사투리 토속어이고 이국에 있으면, 모어는 바로 네모난 충국 한자이다. 이것은 혹시 엄격한 정의에는 거슬릴지 모르지만, 내심의 진실에는 맞는다. "관직에 들면 잘못에 대응해야 하지만, 고향 말이 귀에 들리면 정말 돌아가고 싶어 진다." (명. 고추(高啓:명 초 시인)의 <오나라 땅, 풍교에 가다>. 고향의 말인 모어의 제일 구체적 직관 형식은, 확실한 존재감이다.

언어의 단절로 인한 난감함은 특정 환경에서 일종의 살을 베이는 고통으로 진화할 수 있다. 뉴욕, 퀸즈의 플러싱(Flushing)에 있는 길가 소공원에서 친척을 방문하러 온 후지엔(福建) 노인이 발아래로 비둘기들이 깡 총대며 모이를 찾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그 모습이 쓸쓸하였다. 그는 그곳이 양원(후난 성 정주에 있는 모스크) 보다 좋다고 느꼈으나, 말이 통하지 않아 맨해튼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려면 월가로 출근하는 아들이 시간을 내주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엔 비슷한 처지의 중국인 화교들이 많아서 웬만하면 피차간에 모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 이웃 중 한 사람은 3월에 중국을 떠나왔는데, 금방 외로움이 심해져서 참기 어려울 정도로 초조해했다. 그는 퇴직 후 미국 중부에 있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딸네 작은 집에 가서 잠시 살았다. 주위에 있는 집이라야 기껏 수십 호에 불과했고, 중국인이라곤 오직 그들뿐이었다.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TV를 보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으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났고, 외로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푸른 하늘 흰 구름, 검푸른 숲, 맑은 공기, 깊은 고요함, 일제 모든 것이 그가 바라던 것과  맞아떨어졌지만, 단 한 가지, 언어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하나의 통상, 언제나 변하지 않는 당연한 진리가, 이때는 도리어 행복을 구성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이런 만남은 언제나 예기치 않게 그런 희한한 순간, 마치 계시인 것처럼 신탁의 시각을 얻게 해 주었다. 한 사람과 모어의 관계는 그런 시각에 얻어지는 심각하고 확실한 게시를 얻게 해 주었다. 늘 사이가 좋기 때문에 오히려 본체만 체하기도 한다. 한 마리의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가 둘러싸고, 휩쓸어 가는 물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물을 의식하거나 따져 물을 필요가 하나도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어떤 연고로 이런 환경을 떠나게 되면 한 여름 사막에 있는 것처럼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전혀 낯선 언어에 갇히게 되면 혼자 涸辙之鲋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리에 생긴 작은 웅덩이에 갇힌 붕어, 궁지에 빠진 사람)를 느끼게  되어 모어의 도움을 갈망하게 된다. 그때의 친절한 음절과 성조는 마음 밑바닥을 통과하는 하나의 시원한 물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