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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발자국을 거두어 들이는 사람(收脚印的人) - 田鑫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6월, 마을은 텅텅 비었다. 어른들은 모두 보리 수확하러 갔고, 목축하는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가축을 데리고 서늘한 곳으로 갔다. 골목 안은 아무도 없었고 나 혼자 나무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 개미들이 흙더미에서 기어 나오고 기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개미를 관찰하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 당신도 개미 한 마리가 먼저 촉각을 쏙 내밀고 바깥 상황을 확실히 살펴보면 그 뒤에 줄을 섰던 개미들이 성질을 못 참고 그놈을 밀어내고 나서 잇달아 커다란 무리의 개미 떼가 샘물이 마치 샘구멍에서 솟아 나오듯 기어 나와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개미들의 족적을 보고 싶었으나 흙위에 그 어떤 족적도 남지 않았다. 나는 실망해서 벌떡 일어나 바지를 벗고 그들이 솟아 나오던 곳에 대.. 더보기
술과 더불어 한평생(伴 酒 一生) 兴安 2/2 북경으로 돌아온 후, 나는 일부러 중국 국가박물관에 가서 훨씬 세련되고 정교한 옛 중국 주기(酒器)들을 감상하였다.. 중국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주기는 대단히 중요한데, 굳이 희귀한 당시의 청동기나 은을 두드려 만든 주전자와 술잔을 말하지 않더라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유물들이 많았고 그 종류 또한 참으로 많았다. 여기서 주기의 명칭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중국 고대에 발달했던 술을 따르는 용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尊. 壶, 区, 卮, 皿, 鉴, 斛, 觥, 瓮, 瓿, 彝, 등이 있다 (주전자 역할을 하는 그릇 항아리를 뜻함) 또 술을 마시는 용기에는 觚, 觯, 角, 爵, 杯, 舟, 罐, 瓮, 碗, 盅 (술잔의 종류)등이 있어 눈이 휘둥그레지게 한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하남성 안양현의 은(殷) .. 더보기
술과 더불어 한평생(伴 酒 一生) 兴安 1/2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은 대략 선조들의 유전자 탓이다. 부친 역시 애주가 셔서,매일 두 잔의 바이주(白酒)를 드시고 나서야 식사를 하셨다. 나도 다르지 않아서 보통 집에서 술을 드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나 역시 몇 사람의 친구들과 조촐한 모임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 적으면 3량 많으면 반근, 술이 많이 오를때도 있으나 어쩔 도리가 없다.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거나 힘들어하는 친구가 찾아오면 어쩔텐가? 어쩔 수 없이최선을 다해 접대해야지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는 집에서술을 마시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좋은 술을 꽤 많이 가지고 있다. 전국 각지,세계 각국의 술이 모두 있다. 한 때 집에서 술을 마실 때는, 위스키나 럼주 마시기를 좋아했다. 얼음을 넣지 않고 작은 잔으로 미국 서.. 더보기
风中的稻草人(바람 속의 허수아비) - 2/2 (收脚印的人) - 田鑫 어렸을 때 나는 워낙 단것을 좋아해서 사탕이 하나 생기면 우선 먹고 싶은 것을 참고 가지고 놀았다. 참지 못하고 사탕 종이를 찢으면 바로 그것을 핥고 또 핥았다. 사탕을 입에 넣고니서는 혀끝으로 굴리거나 이로 깨뜨리지도 않았다. 그것을 침 속에 담그고 천천히 녹게 했고 다 먹고 나서도 손가락 끝을 빨았다. 이런 기회란 일 년에 서너 번 밖에 생기지 않았다. 사탕무가 나타나자 나의 사탕에 대한 크나큰 갈망은 어느 정도 사탕무와 대체되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부친의 눈에는 사탕무는 곡식을 생산하는 것과는 견줄 수 없었다. 집에서 가지고 있던 몇 묘밖에 안 되는 토지에는 보리, 기장, 옥수수, 감자를 심기에도 빡빡해서 사탕무는 자연히 심을 곳이 없었다. 소출을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부친은 한가한 틈만 나면 삽을.. 더보기
风中的稻草人(바람 속의 허수아비) - 1/2 (收脚印的人) - 田鑫 그는 밭 한가운데 서있는데, 그의 몸에 걸친 조잡하고 찢어진 낡은 옷과 밀짚모자는 이미 그의 위장을 가려줄 수 없었다. 외다리로 우아하게 서서 양팔을 직선으로 뻗고 오가는 바람을 감싸 안으려는 듯하지만 사실은 자기마저 안을 수 없고 그저 바람결에 설설 떨고 있을 뿐이다. 내가 산에서 내려올 때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사람이 바로 이 허수아비였다. 그는 마치 내가 내려올 것은 알고 있기나 했던 것처럼 계속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껏 멀리서 바라보는 것밖에 없었고 나를 영접할 어떤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이런 순간을 만나면 그것은 나를 과거로 데려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허수아비는 은유되었다. 마을 누군가가 괴질에 걸려 오래 치료해도 낫지 않.. 더보기
人一死事情就堆下了 (사람이 즉으면 일이 쌓인다) :(收脚印的人) - 田鑫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일단 떠나게 되면 당연히 그가 끝냈어야 할 일들이 쌓이게 된다. 그때는 황혼 녘이었고 모친은 지프차에 실려 마을로 되돌아왔다. 그전에 모친은 뒤집힌 감자 수레 아래 깔렸고 부친이 얼른 감자와 수레를 해치고 모친을 끌어안았으니 모친은 축 늘어져서 마치 마람을 품에 안은 것 같았다. 병원에 실려간 후 입, 코구멍, 가슴... 도처에 관이 꽂히고 한병 한병 액체가 주입되었지만, 힘없는 그녀의 신체를 다시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의사 말이, 이렇게 되었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도 보고 일찍 돌아가시게 하는 편이 고통도 덜할 것이라 했다. 마을에는 자주 지프차가 지나다녔으나 마을 안에 정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밥만 먹고 할일 없는 어른들이나 아이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보느라고 왁.. 더보기
人总有一天会空缺 (사람은 반드시 어느날에는 빈자리가 될 것이다) - 2/2 (收脚印的人) - 田鑫 이런 날들은 내가 부친을 모시고 도시로 갈 때까지 지속되었다. 부친이 도시로 가자 시골 마을에는 바로 부친 위치에 해당하는 빈 틈이 생겨났다. 사합원에 드나들던 마르고 왜소한 그림자가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부친이 삽을 어깨에 메고 밭에 나가 거름을 쌓고 도닥거려 단단하고 둥글게 만들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또 매점의 온돌방에서 트럼프를 하던 사람들도 부친이 서툴게 힘주어 양손으로 카드를 쥐고 있던 모습을 더 이상은 볼 수 없었다. 또 오리 밖의 시장에서도 부친이 작은 음식점에 숨어 술친구들과 맥주를 한 병 한병 마셔대며 왁자지껄 떠들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너무나 많아졌다. 나는 나무를 옮기는 것 처럼, 억지로 부친의 뿌리까.. 더보기
人总有一天会空缺 (사람은 반드시 어느날에는 빈자리가 될 것이다) - 1/2 (收脚印的人) - 田鑫 옥수수 모종을 심을 때, 소가 발로 밟은 후, 소가 섰던 자리가 쑥 들어가면 그 자리에 생긴 틈이 옥수수 모종 심을 위치가 된다. 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구멍을 보고 있었는데, 한 옥수수 모종은 너무 지면에 바짝붙어 서있어, 거기 서있을 의미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어찌 그렇 수가 있나 도 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나의 옥수수 모종이라 해서 어찌 죽을 테면 죽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언제나 손톱이 자라서 깎아주면 또 자라고, 부추도 베고나면 며칠 후에 다시 그 자리에 생겨나고, 나뭇잎이 노래졌다 다시 파래지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빈자리가 되면 다시는 채워지지 않는다. 생각하면 할 수록 상실감만 더 커지고 일종의 큰 깨달음이 생긴다. 그때가 되어서야 새상에는 정말 많..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