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 대한 이름 짓기는 언어 자체처럼 풍부하고 다채롭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언어를 촉각과 안경에 비유했다. 우리는 그것들을 빌어 사물을 만져보고 생활을 관찰하며 존재를 확실하고 견실한 관계로 구축한다. 세상은 언어 가운데서 드러나 보이는데, 태양이 아침 햇살 가운데 내려오는 것과 같고, 폭풍우가 구름 사이에서 축적되는 것과 같고, 한 방울의 먹물이 화선지에 천천히 번져나가면서 한 마리의 올챙이도 되고, 한 조각의 꽃잎도 되고, 하나의 돌도 되는 것과 같다.
언어는 당연히, 맨 먼저 표현과 교류를 위한 것이지만 이런 수단 성격의 기능 위에 훨씬 특별한 하나의 자족적이고, 풍부하고, 방대하면서도 정교하고 오묘한 아름다음이 있다.
이런 아름다움을 깊이 느끼고 정확하게 감상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의 언어에 깊게 오랫동안 스며들어, 그 내부에 있을 자격이 있고, 그것의 여러 가지 미묘하고 심오함을 감지하는, 그러한 깃털 위의 빛과 같은 파동, 청자 위의 유약 같은 정취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거의 모어(母语)만 갖고 있고, 우리가 옹알이하며 말을 배울 때부터 입속에 들어있는 친숙한 언어이다 보니 우리가 이루어 낸 이런 점을 겨우 인정하게 되었다.
모어에 관한, 영어 표현은, 제일 정감 있는 온도, 제일 정확하고 가까운 본질 ; mother tongue, 직역하면 "엄마의 혀"라고 한다. 엄마의 혀에서 나오는 소리는 생명이 강림할 때, 들은 최초의 소리이며 사랑이 배어있는 소리이다. 얼마나 깊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시의(詩意)인가! 모어로 부르거나, 큰 소리로 읊고 통독을 하면서,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만물을 바라보고, 생활을 이해하며, 생명을 인식한다.
시작(詩作)은 언어를 농축 제련하는 것으로, 언어의 극치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하나의 언어에 대한 숙달과 이해의 정도를 가늠하고 크기를 잴 수 있게 한다.
"그가 누각에 오르는 것을 본다. 그가 연회를 여는 것을 본다. 그가 누각에 깔리는 것을 본다." 여기서 말한 것은 세상일 의 변화무쌍함, 인생무상이다.
"오늘 나는 걱정이 사라지고 재미를 느낀다, 말을 하려다 만다. 말을 하려다 만다. 오히려 날씨가 시원하고 좋은 가을이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생각은 떠돌아다니고, 어제는 까마득하다. 역사와 문화가 없으니 그로 인해 마음이 평온하다. 인생 경력을 바탕으로 깔고 있지 않으니, 그동안의 침통과 과 애상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 어려워 어쩔 도리도 없고 막연하다. 그것들을 마음속으로 깨달을 수는 있으나 말로 전하기는 어렵다.
모어(母语)가 다른 타향 사람들에 대하여 어디서든 자주 둘러쳐진 장벽을 만나게 된다. 한 프랑스인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중국어를 유창하게 말했고, 계속 스스로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한차례 자기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상성(相声: 두 사람이 하는 중국식 만담) 자리였는데, 두 사람 중 한 주인공이 다른 상대를 놀리느라, 그의 처 이름이 "반금련(潘金莲: 금병매에 나오는 여주인공)이라 했다. 이름 하나 말한 걸 가지고 왜 폭소가 터지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중국 고대 문학 명저 중 금병매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휴대폰 문자로 돌아다니는 문자에, 소위 외국인의 중국어 검정시험 6급 시험 문제에,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 문제) 나이 많은 미혼녀가 된 원인, "开始喜欢一个人, 后来喜欢一个人"에서 앞 , 뒤 구절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 번역 : 처음에는 한 사람을 사랑했고, 나중에는 나를 사랑했다)"
이것이 억지로 만든 말이든 아니든, 확실한 것은 앞 뒤에 서로 완전히 같은 글자 "喜欢一个人"이지만 , 뜻은 크게 다르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점을 발견하려면, 구두점과 리듬에서 섬세하고 치밀한 이해를 얻어야 한다. 답을 푸는데 필요한 것은 문화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감화시킨 가르침이다.
이런 세밀하고 섬세한 부분은 확실하게 다른 언어로 바꿀 방법이 없다. 그래서, 작가 장승지(张承志)는 아주 오래전에 이렇게 말했다 " 아름다운 글을 번역할 수 없구나!"
분명히 이런 종류의 간격은 이미 언어 자체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문화 간의 차이와 분야에 속한다.
어떤 언어든 모두 하나의 문화와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공동의 기억과 통한다.
문화는 자기의 유전자를 갖고 있고, 저장 수단과 표기로 특유의 언어 가운데 압류된 존재이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알리바바가 산속 동굴 안에 진기한 보물을 감춰 놓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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