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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단락과 전체 (片段与完整) (六) : 吴昕孺 (끝) 부친의 뇌 위축증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조기에 고정시키기 위해, 모친과 나는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았다. 민간요법, 양방을 모두 써보았으나, 효과는 모두 시원치 않았다. 부친은 성질이 조급한 것 말고는 거의 도덕적으로 완벽했고, 담배와 술을 안 했으며, 재물을 탐하지도 않았고, 이름을 내세우려고 하지도, 색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가 우수 평가를 받을 순서가 되면, 남에게 기회를 주었고, 보수가 오를 순서가 되어도 남에게 양보했다. 그는 고향에 갇혀 지내느라 비록 자기의 인생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적지 않은 우수 학생을 가르쳐 세상에 내보냈다. 그중 한 명이 황 샤오허(黄晓鹤)로 미국에 정착한 지 여러 해 되었는데도, 부친은 후기에는 기본적으로 그녀가 미국에서 보내주는 약물에 의존하여.. 더보기
단락과 전체 (片段与完整) (五) : 吴昕孺 1964년, 대학 첫여름방학, 나는 샨지엔펑(沈剑峰), 류안화(刘安华), 지롱회(吉荣华) 이렇게 동급생 세 사람과 후난 성 서북지방을 자비를 들여 돌아보기로 계획했다. 부친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나는 모친에게 보내달라고 간청했다. 모친이 돈이 얼마나 드냐고 물어서 나는 장학금 받은 돈 100元이 있다고 했다. 모친은 거기 더해서 50元을 주었고, 은사 다이 하이(戴海)가 장행을 위한 돗자리 삼아 에 단신 보도로 실어 주었다. 우리는 장사에서 기차를 타고 마양(麻阳)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봉황, 왕촌, 영순, 길수, 상식, 천자산, 장가계를 갔다. 한 달 간의 여정은 천여 리(500km)였고 일인당 쓴 돈은 겨우 120元이었다. 특히 영순에서 산을 넘 고물을 건너 인적이 드문 "마풍촌 (문둥이 촌)"에 .. 더보기
단락과 전체 (片段与完整) (四) : 吴昕孺 - 2/2 누나가 사범대학에 들어간 1982년, 나는 장사현 8 중학교, 고1이었다. 그해 섣달 그믐날, 내 이웃이자 소학교 동창이며, 어릴 적 친구인 퉁멍씨웅(童孟雄)이 급성 뇌막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나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매일 새벽, 그의 모친은 걸어가면서 울기도 하고, 그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기도 하였다. 그녀의 슬픔은 공기마저 변하게 해서 공기가 이상하게 짙고 무거웠다. 나는 정신이 멍해져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모친도 반드시 저렇게 상심할까? 머리가 다시 혼미해지면서, 환각이 떠올랐다. 문득 황홀해지면서 죽은 건 바로 나였다. 모친이 걸어가면서 울기도 하고, 내 이름을 소리쳐 부르기도 했다. 나는 갑자기 통곡했고, 모친은 단지 내가 친구를 떠나보낸 슬픔 때문에 그러는 줄 알고,.. 더보기
단락과 전체 (片段与完整) (四) : 吴昕孺 - 1/2 소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중점중학에 가지 못하고, 부친을 따라 루 코우(路口) 중학에 들어갔다. 루 코우는 금강과 루어 링 사이에 있는데 부친은 루 코우 지역 문교행정 주임이었다. 나는 부친과 루 코우 중학 후원에 있는 단칸방에 살았는데 침대가 하나밖에 없어서 같이 썼다. 내 성적은 중학교에 들어간 후 비약적으로 좋아져서 학년 전체 1등이 되었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 쩐창루(阵长孺)는 부친의 제자였고, 지금은 스지아좡(石家庄)에 산다. 그녀는 학생들을 매우 엄하게 대했고 나에게는 더욱 심했다. 수업시간에 그녀는 언제나 눈동자로 나를 압도하여 나는 감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다른 과목 수업 때도 그녀는 자주 창밖에 서서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들여다 보아서 나는 그녀 수업 때와 마찬가지로 꼼짝도 못 했다... 더보기
단락과 전체 (片段与完整) (三) : 吴昕孺 - 2/2 하지만 나는 모친에 대한 인상이 매우 희미하고 또한 모호했다. 어렸을 때, 기껏 아는 사람이라곤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전부였고 그들이 가장 친한 사람이기도 했다. 정작 부모는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세 살 때인지 네 살 때인지 기억은 못하나, 어느 날, 어떤 키 크고 날씬한 여자가 문을 들어섰다. 그녀는 행동거지에 거침이 없었고, 들어오자마자 바로 집안의 중심이 되었다. 그녀는 머리칼이 새까맣고, 두 갈래로 짤막하게 땋았으며, 눈동자는 밤하늘에 떠있는 별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채에 들어와 담장에 걸려있는 목불을 마주하고 앉았다. 나는 장난치느라 나무 사다리에 기어올라 그녀를 마주 보며 씽긋 웃었다. 그녀 역시 나를 보고 웃으며, 외할머니와 큰 소리로 얘기를 나누었다. 갑자기 담벼락에 걸쳐놓은 사다.. 더보기
단락과 전체 (片段与完整) (三) : 吴昕孺 - 1/2 부친의 집, 루어링(罗岭)은 모친 집 금강에서 약 15km 떨어져 있다. 어렸을 때 우리는 자주 외할머니 집을 왕복으로 오갔다. 부친은 키가 156센티였고 선천적인 짝눈이었는데 사범대학시절 정부의 무료 치료를 받아 잘 나았다. 모친 집은 가난하였는데 집안에는 언제나 몇 명씩은 식구가 있었다. 부친 집도 역시 가난했고, 집안에는 두 노인네까지 있었다. 그의 누나와 여동생은 모두 이들을 피하여 늘상 피난을 나갔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시집 간 큰고모와 작은 고모가 친정에 돌아왔다. 그녀들 중, 한 사람은 장사 시내에 살았고 한 사람은 오미(五美) 촌에 살았는데 둘 다 괜찮은 집에 시집을 갔다. 부모가 결혼한 지 두해째, 우리 누나가 태어났고, 그로부터 2년 후 내가 태어났다. 다시 2년 후 여동생이 고.. 더보기
단락과 전체 (片段与完整) (二) : 吴昕孺. - 2/2 1962년, 모친은 일찍부터 그녀 인생 영예의 절정에 달했다. 장사(长沙) 현에서 오직 두 명의 대표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후난 성 첫 번째 귀향 지식청년대표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다른 여자 참가자는 핑지엔(冯建)인데 양돈 노동 모범 대표였다. 핑지엔과 얼마 전 뜻하지 않게 세상을 떠난 레이펑(雷锋)은 좋은 친구였다. 그들과의 밀접한 서신왕래는 조직도 한동안 펑지엔과 레이펑은 친구라고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장사현은 매우 컸고, 현재의 장사현과 왕청(望城) 현을 포함하고 있었다. 테이 퍼과 펑지엔은 실제로 모두 왕청현 사람이었다 펑지엔은 레이펑의 사진을 한 장을 모친에게 보냈다. 나는 소학교 때, 모친의 사진첩에서 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대략 여름철에 찍은 사진인데, 레이펑은 조끼를 입고, 총.. 더보기
단락과 전체 (片段与完整) (二) 吴昕孺. - 1/2 모친이 혼자 그릇 궤짝을 꺼내려고 홍수에 빠졌던 것은 동네 사람들에게 미담으로 전해져, 시골 동네에 돌아다녔다. 기적적인 일로 전해지기도 하고 거기다 보태져서 혼자 어머니를 구했다는 식의 전설로 남기도 했다. 모친은 키가 컸고, 일찍 철이 들었으며 면목이 수려했다. 큰 난리를 당하여 그녀가 보통사람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일을 해냈다는 것을 못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보통이 아닌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인민공사는 전체 사원을 굶게 만들었고, 설상가상 3년 연달아 자연재해가 났다. 키가 크고 좋은 신체를 유지하던 외할아버지는 굶어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었다. 앙상하게 마르고 키가 크다 보니 사람 가죽을 세워놓은 것처럼 보였다. 이 사람 가죽이 결국 꺼져버렸다. 외할아버지는 한번 쓰러지더니 다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