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필, 단편소설 썸네일형 리스트형 8,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여전히 여름밤에는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우는 소리가 비처럼 쏬아졌다. 이웃들은 다시 돌계단으로 와서 잡담을 나눴는데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벼꽃 향기 속에서 풍년을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장모가 한 말을 일종의 어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한 밤중에 장모가 이렇게 말한 세 마디 말과 말하는 어투에서 장모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장모는 이웃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참시 화제가 끊어지자 첫 번째 말을 꺼냈는데 여전히 "기장쌀이 벌써 익었다는 게 정말이야?"라고 했는데, 이 말이 제일 중요하다. 장모는 한 농가의 가장으로서 이 말 위에 자기의 희망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이때는 내가 듣기에 나를 겨냥한 것 같지는 않았고 장모가 이 말을 이용해서 스스로 위안을 을 삼으려 하는 것 같았.. 더보기 7,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얼마 안 있어 "1977년이 되었고, 문화 대혁명이 끝났다. 폐지된 지 10여 년이 넘은 대학입시가 회복되었고 나는 아내의 대학에 가고자 하는 열망을 도와주느라 훨씬 바빠졌다. 그해에 아내는 이과(理科) 시험을 쳤는데 합격하지 못했다. 두번째 해에 아내는 내 조언을 받아들여 문과(文科)에 응시했다. 당시 아천 중학에도 고급중학반이 생겨서 "승급 고급중학"이라 불렸다. 학교 측의 요구로 나는 아예 졸업반의 정치, 어문, 역사, 지리의 전 과정을 담당했다. 내가 이렇게 한 속셈은 아내와 학생들을 위해 시험문제를 출제해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내에게 이 시험을 이용해서 대학입시를 쳐보라고 했다. 시험에 합격하면 그녀 실력이고 불합격하면 남편인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대입 고시는 현성에서 치게 되었다. 우리가 .. 더보기 6,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서쪽으로 기우는 햇볕이 정면으로 돌계단을 비췄다. 마당에는 장작과 건초 태우는 연기가 날려 흩어졌다. 나는 조용히 걸어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껏 장모가 내 욕을 한 것을 못 들은 척하고 거기다 아무 표시도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변명이라도 했다가는 장모 마음속의 원망과 분노가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더욱 격하게 타오를 것이다. 만약 그랬다가는 장모는 다른 집 사위를 모범으로 치켜 새우는데 그치지 않고, 나를 쥐구멍이라도 찾게 만들 것이다. 거기다 수저라도 큰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가는 나를 마땅치 않게 보고 고개를 돌려버리고, 이어서 며칠간은 지속될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나를 낭비하면 안된다. 나는 이미 시간이 긴박함을 느꼈다. 장모는 경사진 땅을 팔 때처럼 혹은 한바탕 가정의 "문화 대혁.. 더보기 5,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나는 나도 모르게 글 쓰는 것을 멈추었고, 덩달아 잠깐 쉬었다. 호롱불 불꽃 속에 장모의 말이 그대로 들어와 불꽃과 함께 너울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말한 기장쌀이 익었다는 말은 내가 하는 일이 쓸모없다는 것이다. 또 먹고 마시는 것, 모두 그녀가 집으로 가져온 것이라는 말은 이 집 식구들은 모두 그녀가 먹여 살린다는 말이다. 나는 세심하게 장모의 마음을 헤아려보았고, 한층 더 깊은 속 마음을 알았다. 그것은 바로 내가 그녀에게 불복종한다는 것, 그녀에게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녀에게 공손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어투에서, 그리고 그녀의 냉랭하고 나를 하찮게 보는 시선에서 내가 눈에 거슬리고 불만스러우며 나아가 일정 부분 멸시와 꼴불견으로 보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장모의 마음을 체.. 더보기 4,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우리 집 살림을 꾸려 가는 것은 당연히 장모가 주관했다. 이른 봄 나는 처음으로 농사일을 하게 되었다. 처와 함께였는데 나중에는 딸까지 데려왔다. 장모를 따라 자경지로 가서 땅을 판 다음 옥수수를 심었다. 그 땅은 이미 온통 봄 풀이 돋아난 경사진 곳인데 나는 장모의 강인함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당시 동네 사람들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농촌은 넓은 천지인데 그런 땅을 뭐에 쓰느냐고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그런 광활한 땅이 없었고, 그런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땅에 일일이 괭이질을 해나가면서 흙을 북돋웠다. 하루 해가 지고 닭이 둥지에 들고, 소와 양이 산에서 내려올 때쯤, 나는 꽤 넓은 땅을 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둠이 사방에 깔리는 가운.. 더보기 3,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여러 해가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처음 장모를 보았을 때, 창살을 통해 들어오는 어두운 광선 사이로 장모가 나를 바라보던 시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으나 장모의 시선은 날카롭고도 확고했다. 거기 더해서 그 시선 깊은 곳은 차갑고 흉폭하며 또한 매서웠다. 그 반쯤은 그녀의 고집스런 개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그녀는 어려웠던 삶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당연히 장모는 역사적으로, 또한 압박 속에서 가장이 되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남자같이 하면서 자신을 가장으로 만들어 갔다. 그녀는 멜대를 불끈 쥐고 욕을 했는데 이런 일은 한두 번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장모는 아래층 방에 살았고 인적이 없는 깊은 밤, 문지방으로 가서 아무 소리도 내지.. 더보기 2,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한여름 밤, 무더운 열기가 대지를 덮었다. 짙은 밤의 색감과 장작불을 사르고 난 후의 숨결은 묘하게 잘도 어우러졌고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웃 사람들이 돌계단으로 와서 더위를 식혔는데 한편으로 자기네가 재배한 담뱃잎을 태우기도 하고 한편으론 해묵은 옛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장모 집의 이웃으로 처자가 있는 세 사람의 사촌 오빠가 있고, 한 사람의 마차꾼, 시골 장마당에서 좌판을 벌이는 부부, 그리고 그 해에 중경에서 낙향해 돌아온 천(陈)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때 나는 이층 방에서 호롱불 아래 책을 읽거나 글을 썼는데,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이웃 사람들이 지나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여름밤의 모기처럼 들쭉날쭉하거나 박쥐처럼 획을 그으며 날아들기도 하고 또 개똥벌레처럼 조용히 떨어지기.. 더보기 1,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우리가 인간 세상에 올 때, 사람은 저마다 인과(因果)라는 걸 가지고 온다. 이 때문에 저절로 우리가 서로 만나게 되는 사람과의 관계가 생겨나는 것이다. 매번 내 일생의 인과관계를 생각할 때 머다, 바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나의 장모님이다. 내 생각에 우리는 원래부터 서로 만나기를 바란 적도 없는데 이번 세상에 서로 같이 살게 된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 사이의 만남이란 당연히 빙산의 수면 아래 있던 인과가 결정한 것이리라. 나는 자주 느끼는데, 내 일생의 인과 중에서 이 인과야말로 제일 일상적이고 지속적이며 또한 제일 심각하고 제일 예민한 것이다. 이런 인과에 이르기까지 나는 충분히 인과를 직접 겪었고 수보리(불교에서 부처의 제자)의 함의를 깨달았다. 나는 아천(琊川:구이저우 성의 작은 도시)으로.. 더보기 이전 1 ··· 23 24 25 26 27 28 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