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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1,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우리가 인간 세상에 올 때, 사람은 저마다 인과(因果)라는 걸 가지고 온다.

이 때문에 저절로 우리가 서로 만나게 되는 사람과의 관계가 생겨나는 것이다.

매번 내 일생의 인과관계를 생각할 때 머다, 바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나의 장모님이다.

내 생각에 우리는 원래부터 서로 만나기를 바란 적도 없는데 이번 세상에 서로 같이 살게 된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 사이의 만남이란 당연히 빙산의 수면 아래 있던 인과가 결정한 것이리라.

나는 자주 느끼는데, 내 일생의 인과 중에서 이 인과야말로 제일 일상적이고 지속적이며 또한 제일 심각하고 제일 예민한 것이다. 이런 인과에 이르기까지 나는 충분히 인과를 직접 겪었고 수보리(불교에서 부처의 제자)의 함의를 깨달았다.

 

나는 아천(琊川:구이저우 성의 작은 도시)으로 떠난 그 해부터 장모 집에 살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나는 이일에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특히 시골 사람들은 모두 데릴사위가 되는 것(上門)을 한사코 꺼려했다.

이것의 핵심은 문(門)이란 글자인데, 즉 문은 집(家)이란 말이다. 데릴사위를 上門女婿(사위)라고  쓰는데 上門은 문을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남의 집에 들어가 산다는 뜻이다. 우리들은 집(家)은 자기가 사는 직은 집이고 사회란 큰 집이라고 계속 말해오지 않았던가? 역사, 문화서적은 엄청나게 많다. 역사, 문화란 결국 집이란 글자에서 기원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천년 동안의 생활을 이루어 온 것은 계속된 전통적 농경생활이었다. 따라서 역사와 문화는 다시 이런 향토 생활 가운데로 응결된다. 나와 장모가 여러 해 같이 살면서 겪었던 오랫동안의 농촌생활은 내가 체득한 역사 문화와 개인의 인과 사이의 연계가 어떤 것인가를 체득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내가 아천에 간 그 해의 아천 광경은 현실의 광경이며 또한 역사의 광경이다.
벌써 얼마나 오래도록 지나왔던가? 일천 년? 2천 년? 그곳의 기와지붕과 밥 짓는 연기, 소로 밭을 갈던 철제 기구들, 꾀꼬리가 지저귀던 서늘한 나무 그늘, 그밖에 백로가 날아가던 막막한 논과 밭, 이런 것들은 계속 바뀌지 않았다.

여가서 말하는 것은 산천과 풍물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옛날부터 이어져 온 깊은 내면을 보기로 하자.

그러자면 당연히 사람 사는 정취를 말하게 된다. 논 부근, 대나무 숲 뒤, 곳곳의  처마 밑에 바로 한채 한 채씩 사람 사는 집이 있고  잡 집마다 주인이 있다. 거기다 집에 딸린 토지가 있고, 돼지도 있고, 소와 닭과 오리도 있다.

그러면 집이란 무엇인가? 집이란 바로 주인이 사는 곳이며 혈연이고 재산이다.

 

우리의 토지란 옛사람이 거듭 말해 온 보천지하 막 비 왕토(普天之下,莫非王土 : 천하에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다)이기도 하지만 한 집안에서 저마다 가져온 토지이다. 토지란 서로 다른 국가의 통치행위 중, 각각의 가장이 서로 다른 방법으로 주거와 경작을 했었던 토지를 말한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상전이 벽해가 되는 변화가 무수히 되풀이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집을 가지려 조급해했다. 그게 안되면, 다른 집 가장에 의지하거나, 다른 집에 들어가 가장이 되려고 했으며 나아가 기왕이면 더 큰 집 가장이 되려고 했다. 

그 당시 장모의 집은 작은 거리 후면에 있는 지붕 아래 있었다. 그 집은 청(淸)이 망하고 이어진 중화민국 시대에 양 씨 성의 구청장이 지은 집으로 그리 잘 지은 집은 아니었고 제 때 들어가 살지도 않은 집이었다. 그 당시에도 이미 당(堂)은 전연 시대부터 이미 평범한 백성들의 집이 되어 있었다. 장모는 그중 한 칸에 살고 있었는데 집에는 낡은 회랑이 있고, 얼마 남지 않은 돌계단도 있었다. 거기에 퇴락한 청석판으로 꾸며진 정원도 있었다. 정원의 전면에는 논이 펼 쳐져 있었다. 논 맞은편에는 구릉지가 있고 거기에 장모의 자경지가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 편단산(扁担山)이 있고 회백색 구름 사이로 때때로 큰 산의 검푸른 산등성이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