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살림을 꾸려 가는 것은 당연히 장모가 주관했다.
이른 봄 나는 처음으로 농사일을 하게 되었다. 처와 함께였는데 나중에는 딸까지 데려왔다.
장모를 따라 자경지로 가서 땅을 판 다음 옥수수를 심었다. 그 땅은 이미 온통 봄 풀이 돋아난 경사진 곳인데 나는 장모의 강인함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당시 동네 사람들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농촌은 넓은 천지인데 그런 땅을 뭐에 쓰느냐고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그런 광활한 땅이 없었고, 그런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땅에 일일이 괭이질을 해나가면서 흙을 북돋웠다. 하루 해가 지고 닭이 둥지에 들고, 소와 양이 산에서 내려올 때쯤, 나는 꽤 넓은 땅을 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둠이 사방에 깔리는 가운데 허리를 펴고 보니 내가 판 땅은 기껏 짧은 고랑 몇 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가서야 나는 설령 이렇게 경사지고 작은 땅이라도 실제로 일을 해보면 대단히 넓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장모는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괭이질을 계속했다. 서두르지도 않았고 멈추지도 않았다. 장모는 연이어 꽤 여러 날을 일하여 결국 그 경사진 땅을 완전히 일구었다.
나는 나중에 <옥수수와 노인>에서 작열하는 태양 아래 묘를 심으며, 살이 익어가는 정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묘를 심는 것이 기러기 떼가 날아온 것과 같다면, 그들은 바로 짙은 나무 그늘로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그들이 원래 땅한군데에 머물거나, 완전히 익어버리거나 , 자신의 종자를 얻지 못하면 앞으로 생명이 연속될 수 없다."
내가 이 구절을 쓸 때, 마음속으로는 장모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또 농사꾼의 옷을 묘사할 때, 땀에 젖은 것을 "은회색의 짠맛 덩어리가 만들어진 피 맺힌 상흔"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역시 바로 장모의 옷을 말한 것이다.
나의 처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남편은 일찍이 제자들과 각자의 인생 포부를 토론한 적이 있다.
그가 찬동한 제자의 인생은 봄날 새로 잘 지은 옷을 입고 여럿이 어울려 강변에 나가 멱을 감고 노래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이런 포부는 조금 의외였는데 그는 계속 내가 의지할만한 가장의 길을 찾고있지 않았던가? 농사꾼의 포부는 매우 현질적이어서 바로 자기가 가장이 되는 것이니까.
봄날 장모가 일가족을 인솔하여 언덕으로 가서 옥수수를 심는 것은 이웃 시골 사람들에게 자기가 이 집안을 관리하고 잘 통솔하고 있으며 자녀 모두 그녀에게 공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사회적인 이상(理想) 일뿐만 아니라 감상적 이상이기도 했다. 석판이 깔린 소로는 제방 근처 논을 완연히 관통하고 있는데 우리 집 언덕배기 땅은 소로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봄볓이 화사하게 비추고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가운데 이웃사람들이 소로를 걸어오면서 장모가 소리를 길게 뽑으며 큰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으면 설령 그것이 집에서 늘 있는 일일지라도 장모에 대하여 일종의 존경과 영광이 생겼다. 하지만 장모는 그런 가운데서도 내가 눈에 거슬리고 나에게 불만이 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전히 밤은 왔고 들판에는 개구리와 풀벌레 우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웃 사람들은 다시 돌계단에 와서 잡담을 나누었고.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는 상당히 크게 들려왔다. 그것은 우리 학교 학급 토론회같이 자기 생각을 혼자 떠드는 것이다. 한 사람이 말을 하더라도 모두가 자세히 듣지는 않는다. 한 사람이 말을 엮어 갔는데 이야기 맥이 끊길 때쯤 어떤 사람이 화제를 빼앗아 역시 자기 집안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내가 들은 것은 장모가 말하는 소리였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기장쌀이 정말 익었다고? " 이건 밤마다 들리는 장모의 말이었다.
"이 집의 장작 한묶음, 쌀 한 줌, 어느 거 하나라도 내가 손발 움직여 집에 들여놓지 않은 게 뭐가 있어?"
처음에는 내가 별로 주의 깊게 듣지 않았으나, 점점 더 실감 나게 들려왔다. 장모의 이 말은 이웃사람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한밤중에 언제나 내가 이층 방에서 무언가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장모가 나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중국 수필,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1.30 |
---|---|
5,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1.26 |
3,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1.19 |
2,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1.16 |
1,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