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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7,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얼마 안 있어 "1977년이 되었고, 문화 대혁명이 끝났다.

폐지된 지 10여 년이 넘은 대학입시가 회복되었고 나는 아내의 대학에 가고자 하는 열망을 도와주느라 훨씬 바빠졌다.
그해에 아내는 이과(理科) 시험을 쳤는데 합격하지 못했다. 두번째 해에 아내는 내 조언을 받아들여 문과(文科)에 응시했다. 당시 아천 중학에도 고급중학반이 생겨서 "승급 고급중학"이라 불렸다. 학교 측의 요구로 나는 아예 졸업반의 정치, 어문, 역사, 지리의 전 과정을 담당했다. 내가 이렇게 한 속셈은 아내와 학생들을 위해 시험문제를 출제해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내에게 이 시험을 이용해서 대학입시를 쳐보라고 했다. 시험에 합격하면 그녀 실력이고 불합격하면 남편인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대입 고시는 현성에서 치게 되었다.

 

우리가 현성에 갔을 때, 현성에는 벌써 드믄드문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조용하고 거대한 저녁놀 속에서 어슴프레하고 처량하게 빛나는  등불은  우리를 가슴 뭉클하게 했다.

우리는 어떤 친척집을 빌렸는데 오전에 아내가 시험을 치러 갔을 때, 나는 그녀의 오후 예상 시험문제를 준비해주려고 남아있었다.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점심을 먹을 때, 그녀는 밥을 먹으면서 내가 그녀에게 예상문제를 설명해 주는 것을 들었다. 부득이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는데, 어떤 사람은 관(官)을 사직하고 고향에 가지만 , 어떤 사람은 별이 총총한 밤에 과거장에 나가지 않는가? 이런 것들은 옛날이나 지금까지 똑같다. 아내가 고사장에 들어가 시험문제지를 받고, 어떻게 답을 써야 할지  알았을까, 제목을 보고 제대로 쓰고는 있을까, 이런 모든 것들이 어쩐 일인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해 아내는 이미 서른살이고 딸아이도 벌써 여덟 살 이 되었다. 우리가 바라는 건 오직 전문대학에 가는 것뿐,  다행히 우리는 합격했다.

아천의 작은 거리는 겉모양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다. 햇볕이 따사롭게 비칠 때는 먼곳에 있는 높은 산은 횡으로 누워있고, 들판은 적막하고 쓸쓸했으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는 기와지붕이 촉촉이 젖어들었고 길은 온통 진흙탕이 되어 질척거렸다. 하지만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점점 변화되기 시작했다. 아내가 준의(遵义)에 있는 대학에 다니게 되자 나는 훨씬 바빠졌다. 낮에 학교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딸을 돌보고 자경지에서 일해야 했고 겨우 밤이 되어서야  호롱불 아래서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나는 1973년부터 문학작품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때 나는 <이화둔 객잔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첫 번째 단편소설을 썼다. 74년 나는 중편소설 <푸르름>을 탈고했고, 75년 장편소설 <어떤 시의 기록>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런 원고들은 당시에는 모두 감춰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원고들이 후일 꼭 출판될 것을 알고있었다. 77년 <귀주일보>에 첫 번의 수필 <날아라, 기러기야>를 기고하기 시작했다. 발표 작품의 심사를 피하려고 그 수필은 아내 이름으로 발표했다. 그 후 나는 잡지에 한 편의 소설을 보냈는데 그도 여전히 아내의 이름으로 보냈다. 하지만 잡지사에서 아내에게 소설 전개에 대해 직접 외서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여, 아내가 갈 수는 없고, 할 수 없이 내가 갔다. 그날 이후 나는 내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출판하고 있다.

세월은 결국 흘러가기 마련이지만, 나와 장모 간의 충돌은 여전히 운명적으로 계속되었다. 세월이 가면서 발생하는 변화를 내가 장모에게 받아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장모는 무슨 이유가 있기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2년 후, 1980년 아내는 학교를 졸업하고 아천에 돌아와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원래 이중 호적제도에서는 나를 제외하고 우리 식구 모두 농업 호적에 있었지만 현재 장모를 제외한 식구들 모두 거민(居民) 호적으로 바뀌어 올라있다. 나는 장모가 알지 못하는 경제 수입이 있고 자주 외지에 나가 회의에 참가했는데, 말하자면 북경 뿐 아니라 외국까지 나갔다. 

이런 것은 모두 장모가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장모의 심리 속에도 자연히 이런 나날이 일어나는 변화를 추측했을 것이다.  장모의 사회 이상(理想)과 심미(審美) 이상은 그녀가 가장으로서 일가족을 인솔하고 경사진 땅으로 가서 옥수수를 심는 것이 아닐까? 지금은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세월이 이렇게 바뀌어 가니 장모의 염원은 점점 아득히 멀리 사라졌다. 이웃이 부자가 되면 우리가 가난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여전히 장모가 한밤중 잎담배에 불을 붙였을 때 그 불똥을 떠올리고, 장모의 고요하고 외로운 그림자를 떠올리면서도, 장모의 표정 속에 원래는 없었던 일종의 암담함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