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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때늦은 각성 ; 迟到的觉醒 (一) : 1/3 向迅 이건, 정말 형편없이 엉망이 된 달이다. 5월의 찬미할만한 새벽 (그건 아마 먼 데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편안했던 깊은 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한 무리의 오랫동안 매복해있던 떼강도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나를 인질로 잡았다. 나는 무슨 일인지 몰랐고, 뒤늦게 반항해 보았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직전까지, 어떤 조짐이나 징조도 없었다. 대략 2~3년 전 또는 훨씬 이른 시절에 납치범들은 경고를 한번 했었다. "두고 봐, 너 한번 된통 당할 거야!" 이런 서술이 어쩌면, 사건의 진상에 훨씬 가까울 것이다. 나는 진작부터, 이런 위기가 곳곳에 숨어있는 나날이 올 줄 알았다. 이건 내가 처한 현실의 환경이 만들어 낸 것이라.. 더보기
대하가 (大河家 : 감숙, 청해성 경계, 황하 강변의 작은 鎭) - 張承志 대하가(大河家)는 황하 나루터 중 하나다. 해마다, 넓은 서북의 황토 고원을 방랑하는 중에, 대하가는 점점 나의 필수 경유 코스가 되었다. 그곳은 지리 교사들은 이해 못 할 것 같지만, 숨겨진 지리(地理)의 중추라고 할만하다. 비록 한쪽에 치우쳐 있고 빈궁하지만, (이걸 알리려는 게 아니다), 대하가는 교통의 대동맥에 있는 명소, 무엇보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원시를 품고 있는 곳이며 중국과 소통힌 흔적도 드러나지 않았다. 일단, 이곳을 많이 알고, 친숙해지게 되면, 사람들은 이곳을 그리워하게 된다. 반년, 일년 오랫동안 떨어져서 못 보게 되면, 특히 나처럼 이번에 조국을 떠난 지 이년이나 지나게 되면, 귀국하는 순간부터, 바로 그들이 나를 소리쳐 부르는 것 같다. 실제 소리쳐 부르는 소리를 듣지는 못.. 더보기
긴 골(条子沟) - 3/3 끝. 贾平凹 그가 준비한 것은 나무 몽둥이 하나, 멘소래담 한곽, 뱀 약 몇 개 거기다 벌에 쏘이는데 대비한 망사모자 하나였다. 이튿날, 태양은 쨍쨍 내리쬐었고, 구름 층은 두터웠다. 나는 몇 명의 아이들과 골짜기에 들어섰는데, 바로 골짜기 안을 흐르는 강이 크다는 걸 알았다. 예전에 갔던 길은 이쪽 절벽 밑동에서 저쪽 절벽 밑동으로 이어졌고, 강 안에는 돌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물이 무릎까지 밖에 안 와서, 물을 헤치고 건너갔다. 이때 나무 몽둥이를 정말 요긴하게 써먹었다. 강 양쪽 경사진 언덕 꼭대기는 전부 나무였는데, 나무가 그렇게 굵진 않았다. 하지만 빽빡한 나무의 초록 혹은 연초록 빛이 바람이 불면 움실움실 움직였다. 그 때문에 골짜기가 전보다 많이 좁아진 것 같았다. 골짜기 안으로 계속 깊.. 더보기
긴 골(条子沟) - 2/3 贾平凹 긴 골의 나무들은 연이어 앞다투어 베어져서 몰래 반출되었다. 산등성이는 일 년 다시 일 년, 깊은 곳까지 헐벗어져 갔다. 5년이 지나자 허씨촌은 이미 철저히 벌거숭이가 되었고 나무라곤 세 집의 집 앞, 집 뒤에 있는 몇 구루 밖에 남지 않았다. 4월 초, 어느날 저녁, 지진이 발생했다. 진 시내에서도 세명이 죽었고, 7~8채의 집이 무너졌다. 다음 날 아침, 긴 골에서 산사태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산사태라니, 그건 산이 움직였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골짜기에 갔다. 골짜기에 들어서서 5리 정도 가니 벌써 골짜기 양쪽 산등성이가 진흙과 돌이 흘러내렸거나, 무너져 있었다. 참상은 뜻밖에 허 씨 촌까지 이어져 있었다. 우리가 나무를 했던 그집, 그집이 완전히 매몰되었다. 집주인과 늙은 부인,.. 더보기
긴 골(条子沟) - 1/3 贾平凹 진(鎭)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5리(1리는 500 m, 2.5km)를 가면, 바로 긴 골이 나온다. 골짜기의 길이는 30리(15km), 4개의 마을이 있다. 마을마다 모두 같은 성씨인데, 많으면 25~6 가구, 적으면 단지 3가구였다. 골짜기 입구에 돌 사자상이 하나 있는데, 머리가 몸통의 절반 크기이고, 눈은 머리의 절반, 갈기털은 얼룩덜룩해서 어디까지 갈기 털인지 분명치 않다. 돌 사자는 어수선한 풀밭에 벌렁 누워 있다가, 날이 가물면 사람들은 그걸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바로 비가 내렸다. 시내 거리에서는, 오래 전부터 긴 골 사람들을 무시해왔다. 그 이유는 골짜기 안에 논도 없고, 면화도 심을 수 없으며, 그들은 369일 장에 나와, 장작을 져다 팔거나, 나무를 어깨에 지고 나와 팔.. 더보기
설은 완전하지 않다 (年不圓) : 晶达 - 끝 큰 이모 집 식구들은 모두 5명이다. 큰 이모 부부와 나의 사촌들(오빠와 동생들) 셋인데, 거기다 우리 모녀 둘이 더해져, 일곱 명이 년야반(年夜飯 : 섣달 그믐날 자저녁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먹는 야식)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매년 섣달 그믐날, 음력 12윌 30일만 되면, 엄마와 나는 언제나 설을 보내러고, 큰 이모네 집에 갔는데, 휑하니 넓은 거리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갔다. "설(年)"이란 개념은 나에게 있어서는 보다 "서둘러야 하는" 조급한 밥 한끼로 바뀌었다. 큰 이모네 그믐밤 야식은 어제나, 오후 세시 전후에 시작했다. 비록 엄마는 언제나 "조수 노릇하러 간다"라고 생각했지만 우리에게 세시 전에 그들 집에 먼저 가서 "폐를 끼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모든 가족들이 대개 조용한 것.. 더보기
설은 완전하지 않다 (年不圓) : 晶达 - 2/4 내가 일곱 살 되기 전, 아버지가 아직 있었을 때, 설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많이 기억나지 않는다. 더구나 다섯 살 전, 아직 외할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설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더욱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는 분명히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설을 같이 보냈고, 그것도 우리가 사는 마당 한구석에 앵두나무와 주리자 나무를 심은 단층집에서 설을 지냈다고 했다. 사람들은, 한족인 아버지가 우리의 생활과 융합되지 못함을 항상 느껴서 결국 멋대로 떠나버렸다고 했다. 내가 일곱 살이 되던 바로 그해에, 무책임하게 나와 엄마에게서 떠나 버린 것이다. 그래서, "설(年)"이란 말이 나오면, 나로서는, 모든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그중 하나의 구성 요소가 전혀 아니다. 어쩌면, 그가 떠나기 전의 7년에 이어 그가 떠난 후의 매번.. 더보기
설은 완전하지 않다 (年不圓) : 晶达 - 1/4 설은 괴물이다. 나한테 있어서는 점점 더 그렇다. 나는 2년 동안 내 고향, 모리다와(내몽고의 한 지역)에 설을 쇠러가지 않았다. 이 2년 중, 한 번은 청뚜(成都: 사천성 성도)에서 맞았고, 한 번은 북경에서 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얼렁뚱땅 보냈다. 청뚜 사람들의 설은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껏 섯달 그믐부터 대보름까지 장기 두는 소리가 집집마다 놀랄 만큼 크게 울렸을 뿐이다. 그해는 내가 빨리 시집을 가려던 첫 해였고, 또한 모친과 같이 보내지 않은 첫 번째 해이기도 했다. 나는 키가 일 미터 구십이나 되는 "남편감" 집에 가서 가족이 번성하다는 것을 경험했는데 일백여 제곱미터의 집이 십몇명이나 되는 식구로 꽉 차 있었다. 이 숫자는 나에게는 상당히 많게 느껴졌다. 나는 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