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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개 이야기 (狗事儿) (一) : 1/2 苏黎 내가 6~7세 때 겪은 일이다. 어느 여름날, 엄마는 나를 데리고 몇십 리 떨어진 양호구(羊虎溝: 양과 호랑이 협곡) 목장에 갔다. 거기 생산대에서 양을 방목하고 있었는 아버지에게 먹고 마실 것을 가져다주려고 가는 길이었다. 그 당시 양호구는 멀고 외진 곳이고, 거주 인구가 아주 적었다. 양호 구에서는 풀이 왕성하게 자라서 거의 사람 키의 절반 정도로 컸다. 생산대에서는 백 마리가 넘는 양을 두 명의 중년 남자를 파견하여 양을 방목하고 있었다. 거기서 양을 키우는 것은 별로 스트레스도 없고, 지나치게 많은 노동도 없었다. 그저 양을 배불리 먹이면 되었으니, 편하다면 편한 일이었다. 하지만, 교통이 불편해서, 집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비록, 지금 교통이 좋아졌다고 해도, 오토바이나 소형차를 타고 가야하.. 더보기
누각(阁楼) 3. 하늘로 통하는 길 (끝) : 乔洪涛 나는 외국의 고딕 양식 건축물의 풍격을 좋아한다. 유럽 건축은 옥상에서 언제나 나가 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하지만 유럽의 누각은 건축 정신과 풍모에서 중국과 확연히 다르다. 그들 대다수는 벽돌을 쌓아 건물을 지었는데, 기껏 별로 크지 않은 창을 열 수 있을 뿐이며, 건물 밖에는 주랑(走廊: 회랑)이 없다. 건물의 안팎이 서로 상당한 막혀있고, 수직의, 위로 향한 뾰족하고 홀쭉한 셩태이다. 대지(大地)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 사람과 자연의 거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의 누각은 거의 모두가 활짝 열려있다. 누각 안팍의 공간이 서로 통하고 서로 분위기가 스며있다. 각 층, 모두 주랑으로 둘러 싸여 있어, 사람들이 가까이 가서 조망할 수 있다. 수평 방향의 층층마다, 처마, .. 더보기
누각(阁楼) 2. 지붕 꼭대기 다락방 : 乔洪涛 나의 소년 시절, 산동성 서쪽, 남평원에 있는 고향, 교신(乔辛) 마을은 모두들 수박을 심느라 신바람이 났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버지와 엄마는 동네 사람들처럼 삼 무(1亩:200평, 3 무는 600평) 가량의 땅을 수박밭으로 만들었다. 수박은 봄철에 줄기가 생장하기 시착한다. 우리 집, 3 무의 밭도 연녹색 수박 줄기가 가득했고, 그 아래, 주먹만 한, 파란 줄이 선명한 수박들이 가득했다. 우리 부모는 하루가 다르게 왕성하게 커가는 수박을 보고, 절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수박밭이 누가 지나갔는지, 혹은 어떤 야생 동물이 지나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넓은 부분이 못쓰게 되어 버렸다. 수박 줄기가 끊어져서 엉망이 되었고, 밭에 가득했던 설익은 수박들이 짓뭉개 져서 하얀 속살을.. 더보기
누각(阁楼) 1.완만한 용마루 - 2/2 : 乔洪涛 초창기의 옛 희곡에서는, 재자가인(才子佳人: 재주 많은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은 서로 바라보면서 정이 싹텄다. 벽이 가로막히면 편지를 보냈고, 세상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나비와 새가 되어 애정을 꽃피웠다. 그런데, 이런 게 다 남방의 정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아가씨의 규방에 재주많은 남자가 창문을 들추고 들어가면, 어두운 밤이지만 부드럽고 하얀 육체가 부르르 떨린다. 이런 일은 남방의 누각 위에서 많이 발생한다. 북방의 영화에서는 비적들이 문짝을 발길로 차서 부수거나, 날카로운 칼로 창문을 쑤시고 쿵 하고 뛰어 들어가 침구를 지긋이 눌러본다. 이런 것은 희곡이나 책에서 노래 부르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춤추고 노래하는 곳은 정자 누각이다. 이런 것들은 정취가 넘치는 가옥으로, 오직 남방에만 있.. 더보기
누각(阁楼) 1.완만한 용마루 - 1 : 乔洪涛 탁 트인 북방 평원에서, 누각을 보기는 매우 힘들다. 북방인들은 실용을 중시하기 때문에 조용하고 넓은 땅에 집을 지을 때, 대부분 평평한 지붕으로 지으며, 기와집 마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평지붕 집은 그 온건하고 단정하면서도 장중한 외형과 속성으로 단단하고 거친 대지와 한데 어울려, 사람들에게 안전감, 무거운 느낌, 두터운 느낌을 준다. 이것은 바로 북방 남자들과 궤를 같이하는데, 거친 손과 큰 발, 큰 키와 긴 다리 그리고 일율적으로 넓은 어깨, 넓은 등, 커다란 허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모난 얼굴은 사람을 보아도 경솔하게 말하거나 웃지 않는다. 남방 남자들처럼 잘생기고, 학문이 깊고 의젓하며, 재주 많은 것과는 다르다. 이것이 바로 그지 방의 풍토가 그 지방 사람들을 길러 낸다는 것이다.(본.. 더보기
청명절을 맞아 장인을 추모 함 (清明时节悼岳父) 罗元生 ; 2/2 장인은 예극(豫劇:중국 허난 지방극) 듣는 것 외에는 특별한 취미가 없었으나, 일생동안 서예를 사랑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붓글씨 연습을 해왔고, 군대에 가서도, 부대에서 연습을 놓지 않았다. 제일 뛰어난 것은 음력 설날 집안에 붙이는 대련과 크게 쓴 희(喜) 자였다. 그의 서예는 독특한 점이 많았다. 수수하면서도 힘찼으며, 평온하면서도 총기가 번뜩였다. 지금 내 서재에는 여전히 그의 작품이 걸려있다. 만년에 그는 거의 매일 오전, 붓글씨 쓰는 친구들과 함께 옥연담 공원 정문 앞에서, 자기가 만든 스펀지 붓과 작은 물통으로 "지서(地書: 땅바닥에 쓰는 글씨)를 썼다. 장인으로서는 스스로 즐기고, 서예 친구들과 교제하는 방법이기도 했는데, 북경 지서협회에 가입도 했다. 2007년 가을, 그는 같이 글쓰기를 .. 더보기
청명절을 맞아 장인을 추모 함 (清明时节悼岳父) 罗元生 ; 1/2 북경의 봄은 추웠다 더웠다 하여, 종잡을 수가 없다. 초 봄이 되면,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무거 위지기 시작하고, 특히 청명절이 가까워지면 나는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육친이 그리워진다. 20년 전, 바로 이 계절에 나의 부모 두 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는 장강(長江) 북안의 고향, 봄철이었고 마음을 찌르는 고통을 남겨 주었다. 지금은 북경에서, 오래도록 일하고, 살아오고 있다. 돌아보면, 여기서 나의 장인이 돌아간지도 만 7년이 되었다. 지난 일들이 바로 어제 같다. 청명 시절, 장인의 여러가지 일들이 눈앞에 떠오른다. 2008년, 구정, 긴 휴가가 지나고, 나는 회사 동료 두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장인을 집에서 301 병원 구급차에 실었다. 그때, 장인은 자기가 직접.. 더보기
성장 세월의 상흔 (원제.植满时间的疼痛) : 阵新 ---- 끝 5월의 사천성 북부, 대지는 온통 부드러운 녹색이고, 꽃과 풀, 수목들은 찬연하게 태양 빛과 비와 이슬을 빨아들이며 왕성하게 생장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더 중해졌다. 나중에, 아버지는 또 변비가 심해지면서 대변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전혀 망설임 없이 손을 아버지 항문에 밀어 넣고, 집중해서 이미 단단하게 굳어진 변을 끄집어냈다. 나는 편안하고 섬세하게 이일을 했는데, 아버지는 자책감과 미안함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았다. 상황을 보고, 마음이 아파 비오듯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지만, 겉으로는 오히려 웃으며 아버지를 위로했다. "아버지,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빠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 내가 똥오줌 안 쌌어요? 내가 똥을 쌌을 때 아빠 엄마가 나를 씼겨주었을 거 아니에요? 똥은 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