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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설은 완전하지 않다 (年不圓) : 晶达 - 1/4

설은 괴물이다. 나한테 있어서는 점점 더 그렇다.
나는 2년 동안 내 고향, 모리다와(내몽고의 한 지역)에 설을 쇠러가지 않았다. 이 2년 중, 한 번은 청뚜(成都: 사천성 성도)에서 맞았고, 한 번은 북경에서 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얼렁뚱땅 보냈다.

청뚜 사람들의 설은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껏 섯달 그믐부터 대보름까지 장기 두는 소리가 집집마다 놀랄 만큼 크게 울렸을 뿐이다. 그해는 내가 빨리 시집을 가려던 첫 해였고, 또한 모친과 같이 보내지 않은 첫 번째 해이기도 했다. 나는 키가 일 미터 구십이나 되는 "남편감" 집에 가서 가족이 번성하다는 것을 경험했는데 일백여 제곱미터의 집이 십몇명이나 되는 식구로 꽉 차 있었다. 이 숫자는 나에게는 상당히 많게 느껴졌다. 나는 밤새 액정 TV로 판토마임 극을 보았는데, 결국 자정 12시에 일 미터 구십짜리와 함께 폭죽 소리가 쾅쾅 터지는 가운데, 작은 소리로 말싸움을 벌였다.

지금까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잘 안된다. 그들 집의 다들 행복한 "시끌벅쩍하 소리"는 나를 내몰았고, 결국, 나는 그와 인연이 없었다. 나는, 내가 일 년에 한 번씩 겪어야만 하는 소음의 향연과 멀리 있는 엄마가 혼자 고독하게 지낼 것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릴 때, 설날의 의미는 나에게는 새옷과 폭죽이었다. 하나는 잔뜩 기대했고, 하나는 몹시 무서워했다. 이 두 가지는 내 인상에 남아있는 설날의 절대로 변치 않는 표상이다. 거기에 교자만두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교자만두에 대하여는 거의 무감각한 태도를 보인다.
그때 나는 여전히 밥만 축내는 식충이가 아니었고, 식충이에서 옛것을 싫어하고 새 것만 좋아하는 계집애로 변해있었다. 대충 초등학교 2학년  때 광경인데, 새옷이라는 설날의 표상을 엄마는 무정하게 없애버렸다. 엄마가 없애버린 방식은 결코 어떤 형식---- 예를 들어 말로 하거나 글로 쓴 선고가 아니었고, "침묵의 부작위(당연히 해야 할 것을 안 하는)" 방식이었다. 그 당시 막내 이모가 아직 시집가기 전이라 우리 셋은 설에 쓸 물건들을 사려고 추위를 무릅쓰고 눈과 얼음 위를 걸어, 뻔질나케 사장을 돌아나 닐 때였다. 닭, 오리, 생선, 고기, 음료, 맥주 같은 것들과 더불어 새 옷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새 옷은 너무나 당연했고, 새 옷이  없다는 것은 이윽고 올 그해 제야에서 나의 과정이 생략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진정 의식했다. 나로서는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건 크림 없는 크림 케이크요, 얼음 없는 아이스케키였다. 나는 먼저 놀랍고 당황스러웠고, 그러고 나서,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엄마가  '전에 해마다 설빔으로 새옷을 사준 건 네가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였는데, 지금은 속도가 다소 더뎌졌으니, 너보다  열 살 많은 사촌 언니의 헌 옷을 얻어 입어도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나의 설날에 대한 기대는 얼마나 컷을 때 까지였나? 그때, 나는 엄마의 얼마 안되는 월급으로는 일기족이 살아가기 힘들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때 나는 매일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저녁때 집으로 돌아오는 초등학생이었고, 결코 단원(团圆: 중국인들의 명절날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풍습) 이란 두 글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헤어져보아야만, 다시 만나는 기쁨을 알게 되고, 그것을 갈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