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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유배자의 하늘( 流放者的天空) 鹏鸣 (二) - 1/2 유배자는 황성(皇城)에서 부터 전력을 다하여 속죄하면서, 이리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고, 길은 정말 너무 멀었다. 그야말로 "팔 천리 길의 구름과 달"이리고 할만했다. 가는 길 내내 풍찬노숙(風餐露宿:길거리에 나앉았다는 뜻)을 해야 했는데, 의사도 없고 약도 별로 없었으니, 그야말로 생사를 운에 맡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옛날에는 양관( 阳关)을 떠난다는 것은 바로 세상과 떨어진 곤궁하고 황량한 땅으로 진입한다는 의미였고, 천리 고비사막은 사람의 흔적이 없는 "귀문관(鬼门关: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당나라 사람 왕유(王維)는 위하(渭河) 북안에서 술자리를 마련하여, 친구 원이(元二)가 서역에 사신으로 떠나는 것을 환송하며, 탄식했다. "자네 한잔 주욱 들이키게, 양관 서쪽으로 가면 친구도 없을 터이니!" .. 더보기
유배자의 하늘( 流放者的天空) 鹏鸣 (一) - 2/2 유배를 당한 관리 중에는 유능한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죽이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중벌을 안 주면 군주의 위엄을 표현할 방법도 없었다. 관리들이 말을 잘 듣고, 굽신굽신 하게 만들기 위해서, 또 듣는 사람이 경계하도록, 통치자는 유배라는 방식의 중벌로, 불유쾌하게 간언을 하는 자들을 위협했다. 조정은 유배지를 선택하느라 골머리를 썩혔고, 대단히 고심하였다. 서북지방은 단절된 지역이고, 서남지역은 풍토병과 말리아가 창궐하는 곳이고, 동북지방은 엄청 추운 곳이고, 그리고 외딴섬들, 이들이 모두 진작부터 유배지가 된 곳이다. 청조의 유배지는 명대의 유배지를 물려받았는데, 의 기초 위에서 가 수정 완성되었으며, 일부 창의적인 것도 포함하고 있었다. 청나라 초기, 통치자들은 아직 입지가 안정되지 않아서 토착민의.. 더보기
유배자의 하늘( 流放者的天空) 鹏鸣 (一) - 1/2 이리(伊犁)의 봄은 늦게 오고, 가을은 일찍 가버린다. 우리는 차를 몰아 이리의 강과 계곡이 있는 산길과 벌판을 달렸다. 화려한 색채의 아름다운 경치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떼지어 모여있는 소와 양의 대군 말고는 초원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희소했고, 온 천지는 광활하면서 고요했다. 현지인이 말하기를 초원에 놀러 오려면, 제일 좋은 때가 5~6월이다. 짙푸른 초록 대지에 꽃들은 모두 피어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한다. 봄에는 들꽃이 만개하고, 벌,나비가 날아다니며, 초원은 초록빛 양탄자 같고, 유객들은 희희낙락, 좋기는 하지만, 우리로서는 이런 것들이 지나치게 요란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이리의 가을을 좋아한다. 이리의 가을은 편안하고, 조용하다. 하늘은 높고, 멀고, 깨끗하며, 또한 상쾌하다. 도시든 야외.. 더보기
중국지도 측백나무(中国版图柏) : 梁衡 - 5/5 강희 36년(1697년), 강희는 다시 군사들을 독려하여 제3차 친정에 나섰다. 거얼단을 마지막으로 깨끗이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출발전 유시를 내려 산서, 섬서, 감숙 3성을 순무했는데, 일제의 비용을 중앙에서 발부토록 하였다. 이런 기회라도 지방에 비용을 부담시켜 백성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강희는 2월 29일, 부곡의 유가에서 황하를 건넜고, 3월 14일, 고한령에서 일박했다. 둘째 날에는 일찍 잠이 깨었는데, 삭풍에 뼈까지 시렸고, 한기에 으슬으슬 떨렸다. 그는 산정에 올라, 늙은 즉백나무를 손으로 부둥켜 잡고, 북쪽을 멀리 바라보았다. 뭇 산들이 솟고 가라앉은 앉았는 가운데, 온 세상이 백설로 하얗게 덮인 끝없는 벌판이 펼쳐졌다. 강희는 저도 모르게 전방의 군사들이 고향 집.. 더보기
중국지도 측백나무(中国版图柏) : 梁衡 - 4/5 일반인들은 기껏 양자강 남쪽 물의 고향, 동정호 호반, 어부들의 뱃노래 가운데 저녁 무렵 악양루 정도를 알고 있다. 그런데 어찌 저 요새 밖 고한령을 일찍이 생각해 내었을까? 그건 아마 범, 구, 등 세 사람의 우정과 일단의 역사적 증거 때문일 것이다. 악양루는 벽돌과 나무로 지은 인공적인 건축물이고 경력 개혁의 동지들의 남방 좌표이다. 그리고, 고한령 위의 지도즉백나무는 그들의 북방 좌표이다. 더욱 진귀한 것은 그것이 살아있는 생명이며, 하나의 살아있는 좌표라는 것이다. 악양루는 하나의 문물인 반면, 지도즉백나무는 한그루의 고목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문자, 문물이지만, 이에 더해서 고목나무로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수목(樹木)은 가장 충실하고 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살아있어서, 푸른 가지와 녹.. 더보기
중국지도 측백나무(中国版图柏) : 梁衡 - 3/5 범중엄은 당시 지금의 연안에서 간쑤 성 일대에 이르는 서쪽 국경선에서 군사를 이끌고 작전을 펼쳤다. 송 인종은 경력(송대 연호) 4년 범중엄을 하동, 섬서 선무관에 임명하고, 황금 백 량을 하사했으며, 그에게 지금의 산시 성에서 산시 성 신목, 부곡 일대에 가서 동쪽 전선을 시찰토록 했다. 원래 당시의 송(宋)의 하(夏), 요(辽)에 대항하는 대본영은 하동에 있었고, 그곳은 지금의 산시 성에 있다. 고한령 동쪽의 인주 요새는 황하 서편 고립된 지역에 있으며, 매년 하동에서 양곡 60만 석, 건초 120만 수레를 공급받아야 해서 송으로서는 부담이 컸다. 이 때문에 조정에서, 어떤 사람은 인주를 지키는 것을 포기하자고 주장했다. 황제는 범중엄에게 직접 가서 현지 조사를 해서 생각을 보고하라고 했다. 범중엄은.. 더보기
중국지도 측백나무(中国版图柏) : 梁衡 - 2/5 이곳의 연역이 제일 처음 등장한 것은 북송 시기 경극에 나오는 국가 영역에서였다. 당시의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결국 범중엄과 구양수 등 이름난 인사도 관련되었는데, 나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조광윤 (宋 태조:927~976)은 5대에 걸친 분쟁을 종결짓고 천하를 통일한 후, 송 왕조의 북부 국경을 이곳까지 넓혔다. 하지만 변경의 장벽 뒤에는 두 이민족 정권이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바로 당항족이 건립한 서하(西夏)와 거란족이 건립한 요(辽)였다. 하, 요, 송은 다시 한 편의 "삼국지연의"를 엮었다. 서하는 그들의 수령, 이원호의 영도 아래 대단히 강하고 흉폭했다. 서하는 끊임없이 남하하여 송에 소요를 일으켰으며, 송은 여러 성(城)과 땅을 잃는 등 손해가 막심하였다. 조광윤은 무장 출 싱이었기 .. 더보기
중국지도 측백나무(中国版图柏) : 梁衡 - 1/5 진(晋:산시 성), 섬(陕:산시 성), 몽(蒙:내몽고) 3개 성(省)의 경계에 고한령(高寒领)이라는 산이 있다. 그 산은 성(省) 안팎을 구분하는 분할선이기도 하고 만리 황하 구곡만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산하가 역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하나의 행운이다. 공자는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다고 말했는데, 애석하게도 그것은 그가 있는 곳 너머에 또 다른 훨씬 큰 천하가 있다는 것을 몰라서 한 말이다. 고한령의 고(高)는 해발 1426m로 주변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북쪽을 향하여 계속 가면 외몽고의 일마평천(一马平川)에 닿는다. 또 이름에 있는 한(寒)은 겨울 가장 기온이 내려가면 영하 31도에 이르고, 빙설이 들판을 덮고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환경에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