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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녹색 우편배달부(绿色邮差): - 5 (끝) 柳宗宣 하루는, 내가 글로 썼던 일은 더 이상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오래된 중요한 일로 정리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 마당에, 계속 습관적으로 우편함을 설치했고, 집배원은 우편물을 직접 집으로 가져오게 되었다. 나는 창작생활을 준비하면서, 속도가 느린 우정과의 관계를 회복했다. 끊임없이 독촉하니, 우정국 사람이 내가 우편함 설치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매우 적은 양의 편지들이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우체국도 시대의 영향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창조를 통한 사회 공헌을 도외시하고, 대량 우편과 연계를 가지려하기 때문에, 문화단체나 기업 위주로 거래를 발생시키려 한다. 나 개인의 별로 많지 않은 우편물 왕래는 그들에게 완전히 홀대되었다. 여기에, 택.. 더보기
녹색 우편배달부(绿色邮差): - 4 柳宗宣 삼리둔(三里屯) 우체국. 한 프랑스 아가씨가 항공 속달로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 안에 정박(停泊)해있는 것은 어떤 소리들이었다. 그걸 납득할 때까지, 어떤 모양의 두 손이 기다렸다. 나는 우체국에서 일본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려고 준비하던 중이었다. 오직 시(詩)로 인해서 우리들은 함께 연결되었다. 일본 친구가 어떤 얼굴 표정을 하고 있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나는 그가 쓴 편지를 거리 한복판에서 읽었다. 삐뚤빼뚤한 한자로 쓴 원고 청탁 편지였다. 나는 내가 매우 넓은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사랑스런 우체국 때문에 내가 호흡하는 공간은 넓었다. 북경도 그렇게 작을 수 없다. 지구가 한 촌락이니까. 1999년 4월, 나는 북경 지안문(地安門:자금성의 후문) 거리 40호에 있는 통자루(筒子樓:.. 더보기
녹색 우편배달부(绿色邮差): - 3 柳宗宣 아, 내가 우체국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생활에서 숨 쉬는 것과 개인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는데 마저 영향을 주는구나! 나는 라는 시를 우체국 가는 길 위에서 썼다. 먼곳에 있는 어떤 지인에게 편지를 부치러 가는 길에서였다. 그해, 내가 이 작은 도시를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우쳬국을 향한 길에서 문득 돌아가신 지 꽤 여러 해가 지난 부친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내 몸에 대고 말했다. "너는 떠나는 게 좋겠다. 빨리 팔자대로 먼 곳으로 떠나라." 집배원 왕향청은 내가 Q시 중학교 교직원 숙소 입구에 우편함 설치하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지금 우편함에는 먼지만 잔뜩 쌓여있다. 주인은 벌써 떠났고, 우편함은 편지 받을 사람도 없고 부치는 사람도 없는채, 여전히 거기 있다. 폐기되어 사용하지 않는 우편함, .. 더보기
녹색 우편배달부(绿色邮差): - 2 柳宗宣 나는 집배원 왕향청(王向淸)과 수십 년의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나의 우편행정(邮政)에 대한 느낌은 오롯이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오랜 친구가 되었다. 그는 시골에서 몇 년 동안 집배원으로 있으면서, 음력설 때는 우리 집으로 새해 인사를 하러 왔다. 그 역시 고향 사람들처럼 붉은 종이로 포장한 유빙(油饼 : 중국식 밀가루 부침개)을 들고 왔다. 몇 년 후, 그와 니는 잇따라 현성(縣城)으로 배치받아 갔다. 그는 우체국 분류 배달을 책임지게 되었고, 나는 다른 담장으로 둘러 쳐진 학교에 가서 가르치게 되었다. 그는 나 보다 두해 늦게 가정을 꾸렸는데, 그의 여자 친구는 장모가 중매한 사람이었다. 나는 자주 내가 있는 학교에서 몇리를 걸어서 우체국, 그의 사무실로 갔다. 우편 자전거는.. 더보기
녹색 우편배달부(绿色邮差): - 1 柳宗宣 나는 막 남방의 성청(省城)으로 돌아오면서, 집을 수리하느라 바빴다. 시공 현장에 자재를 들여보내고, 아파트 베란다를 서재로 개조하려고 목수와 교섭하고 있을 때, 아래에서 누가 나를 소리쳐 불렀다. 창밖을 내다보니 우편 집배원이었다. 녹색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나에게 내려와서 서명하고 등기우편물을 받아가라고 했다. 방금 북방에서 와서, 아직 집안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고, 책들, 가구, 일상용품들이 아직 북방의 집에 있어서 탁송을 기다리던 중인데 우편집배원이 때맞춰 뒤따라 온 것이다. 아! 친애하는 우정(邮政: 우편행정), 내가 어디를 가던지 우정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아! 나의 우정(邮政), 왔다갔다 흔들리는 우정이여. 소설 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막 새로운 지방에 이사를 왔을 때, 우체국.. 더보기
유배자의 하늘(流放者的天空) 鹏鸣 (五) - 4/4 끝 1820년, 송균은 서송이 증보, 개편한 28만 자(字)의 을 조정에 보냈다. 이 당시, 황제는 이미 가경의 아들인 도광(道光)이었다. 도광은 이 책을 본 후, 기쁨에 넘쳤다. 그는 이 책에 이름을 하사하여 이라 했고, 직접 서문까지 썼으며, 무영전(武英殿)에 넘겨 간행토록 했다. 서송이 신강 이리에서 고생살이한 세월도 벌써 봄 가을이 열 번 지나갔고, 마침내, 도광은 그를 사면했다. 이리로 유배 온 지방장관, 문인, 묵객은 매우 많다. 서송은 비록 명성이 높았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는 큰 공헌을 함으로써, 역사책에 당당히 이름을 남겼다. 서송 같은 급의 관료와 문인들이 유배자 중,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으나, 이리는 서송에게 직접 몸으로 경험한 경세 학파 지리학자의 지위를 성취하게 해 주었고, 여러 학.. 더보기
유배자의 하늘(流放者的天空) 鹏鸣 (五) - 3/4 서송은 당시,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 시험에서 판에 박힌 문장을 반대하는 태도를 견지했고, 부임 초기부터 여러 가지 조치를 시행함으로 고시의 폐단을 개혁하고자 시도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그가 떠벌인 개성(個性)은 당지 관료와 토호들의 미움을 샀다. 어떤 이는 기회를 빌어 가경황제에게 서송의 구대(九大) 죄상을 나열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중에는 "교자를 탄 채 영성문(고대 한족의 중요한 문묘)을 들어갔다", "사서 제목에서 경문을 찢었다"라는 두 가지 죄상도 들어 있었다. 이번에는 서송이 제대로 큰 사고를 친 것이다! 조사가 이리저리 진행되었고, 구대 죄상의 대부분은 허위로 드러났지만, "성현을 우습게 보았다"와 "시험제목에 경문을 찢어서 냈다"는 두 가지 죄명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서송은 학정(學政).. 더보기
유배자의 하늘(流放者的天空) 鹏鸣 (五) - 2/4 기운사가 카스(喀什) 하곡에 있는 수렵장에 도착했을 때, 찬탄을 금치 못했고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 시구를 남겼다. 무술 연마와 국경이 겹쳐지는 사냥터, 힘차게 날아가는 각궁 소리에 깃발이 번쩍이네. 삼천명이 하는 조련은 구름 비단 같고, 먼 낭산(狼山)에 사냥 갔던 군사들이 돌아오네. 당조(唐朝) 때, 이미 이리 서부 지역에 몽지(濛池) 도호부를 설치했었기 때문에 기운사는 그의 유배 시집을 라고 이름 지었다. 기운사가 이리장군 송균(松筠)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고, 이리 사람들에게도 송균이 집정했다는 것은 지역의 행복이었다. 이리장군 송균은 일개 무부(武夫)였지만, 그는 문인 학자들을 유달리 존중했다. 그는 청렴하고, 솔직 담백했으며, 빈민들에게 여러가지 시혜를 베풀어,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변방을 다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