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우편배달부(绿色邮差): - 5 (끝) 柳宗宣
하루는, 내가 글로 썼던 일은 더 이상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오래된 중요한 일로 정리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 마당에, 계속 습관적으로 우편함을 설치했고, 집배원은 우편물을 직접 집으로 가져오게 되었다. 나는 창작생활을 준비하면서, 속도가 느린 우정과의 관계를 회복했다. 끊임없이 독촉하니, 우정국 사람이 내가 우편함 설치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매우 적은 양의 편지들이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우체국도 시대의 영향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창조를 통한 사회 공헌을 도외시하고, 대량 우편과 연계를 가지려하기 때문에, 문화단체나 기업 위주로 거래를 발생시키려 한다. 나 개인의 별로 많지 않은 우편물 왕래는 그들에게 완전히 홀대되었다. 여기에,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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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우편배달부(绿色邮差): - 1 柳宗宣
나는 막 남방의 성청(省城)으로 돌아오면서, 집을 수리하느라 바빴다. 시공 현장에 자재를 들여보내고, 아파트 베란다를 서재로 개조하려고 목수와 교섭하고 있을 때, 아래에서 누가 나를 소리쳐 불렀다. 창밖을 내다보니 우편 집배원이었다. 녹색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나에게 내려와서 서명하고 등기우편물을 받아가라고 했다. 방금 북방에서 와서, 아직 집안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고, 책들, 가구, 일상용품들이 아직 북방의 집에 있어서 탁송을 기다리던 중인데 우편집배원이 때맞춰 뒤따라 온 것이다. 아! 친애하는 우정(邮政: 우편행정), 내가 어디를 가던지 우정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아! 나의 우정(邮政), 왔다갔다 흔들리는 우정이여. 소설 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막 새로운 지방에 이사를 왔을 때, 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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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자의 하늘(流放者的天空) 鹏鸣 (五) - 4/4 끝
1820년, 송균은 서송이 증보, 개편한 28만 자(字)의 을 조정에 보냈다. 이 당시, 황제는 이미 가경의 아들인 도광(道光)이었다. 도광은 이 책을 본 후, 기쁨에 넘쳤다. 그는 이 책에 이름을 하사하여 이라 했고, 직접 서문까지 썼으며, 무영전(武英殿)에 넘겨 간행토록 했다. 서송이 신강 이리에서 고생살이한 세월도 벌써 봄 가을이 열 번 지나갔고, 마침내, 도광은 그를 사면했다. 이리로 유배 온 지방장관, 문인, 묵객은 매우 많다. 서송은 비록 명성이 높았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는 큰 공헌을 함으로써, 역사책에 당당히 이름을 남겼다. 서송 같은 급의 관료와 문인들이 유배자 중,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으나, 이리는 서송에게 직접 몸으로 경험한 경세 학파 지리학자의 지위를 성취하게 해 주었고, 여러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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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자의 하늘(流放者的天空) 鹏鸣 (五) - 2/4
기운사가 카스(喀什) 하곡에 있는 수렵장에 도착했을 때, 찬탄을 금치 못했고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 시구를 남겼다. 무술 연마와 국경이 겹쳐지는 사냥터, 힘차게 날아가는 각궁 소리에 깃발이 번쩍이네. 삼천명이 하는 조련은 구름 비단 같고, 먼 낭산(狼山)에 사냥 갔던 군사들이 돌아오네. 당조(唐朝) 때, 이미 이리 서부 지역에 몽지(濛池) 도호부를 설치했었기 때문에 기운사는 그의 유배 시집을 라고 이름 지었다. 기운사가 이리장군 송균(松筠)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고, 이리 사람들에게도 송균이 집정했다는 것은 지역의 행복이었다. 이리장군 송균은 일개 무부(武夫)였지만, 그는 문인 학자들을 유달리 존중했다. 그는 청렴하고, 솔직 담백했으며, 빈민들에게 여러가지 시혜를 베풀어,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변방을 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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