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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누각(阁楼) 1.완만한 용마루 - 2/2 : 乔洪涛

 

초창기의 옛 희곡에서는, 재자가인(才子佳人: 재주 많은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은 서로 바라보면서 정이 싹텄다. 벽이 가로막히면 편지를 보냈고, 세상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나비와 새가 되어 애정을 꽃피웠다. 그런데, 이런 게 다 남방의 정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아가씨의 규방에 재주많은 남자가 창문을 들추고 들어가면, 어두운 밤이지만 부드럽고 하얀 육체가 부르르 떨린다. 이런 일은 남방의 누각 위에서 많이 발생한다.
북방의 영화에서는 비적들이 문짝을 발길로 차서 부수거나, 날카로운 칼로 창문을 쑤시고 쿵 하고 뛰어 들어가 침구를 지긋이 눌러본다. 이런 것은 희곡이나 책에서 노래 부르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춤추고 노래하는 곳은 정자 누각이다. 이런 것들은 정취가 넘치는 가옥으로, 오직 남방에만 있다. 오직 강남에서만 솜씨있게 만들어 냈고, 솜씨 있게 지어졌다.
북방인들은 말  많은 것을 싫어하니, 그런 둥글고 뾰족한 지붕을 만드는 재주도 필요 없다. 무엇보다도 누각 꼭대기에 있을 생각이 없고, 일층 누각에서 재기하여 ---- 지방 유력자의 누각에 올라가고, 일율적으로 열쇠로 잠근 총명하고 책을  보고, 시를 읊는 아가씨의 깊은 규방에서 살 생각도 없다.
남방에서는 가난한 사람 집에도 다릭방이 있는데, 설령 쓸모없는 솜 부스러기를 쌓아 놓는다 하더라도 다락방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북방인은 대부분 평면 위에 집 한채를 지으니, 그런 물건을 저장해 놓을 곳을 따로 만들어, 올려다볼 생각을 할 리 없다.
이것이 바로 차이이며, 남과 북이 다른 점이다.

중학교 시절, 고문을 배울 때, < 항척헌지(项脊轩志) >를 읽었다. 그 안에 쓰여있는 "항척헌은 옛 남각자(南阁子.  남방 누각)이다. 방은 겨우 사방 일장의 정방형이며, 한 사람이 기거할 수 있다. 백 년이 넘은 오래된 집으로..." 어쩌고  하는데, 나는 "남 각자"에 대하여 의문이 생겨났다. 나는 북방 평원의 소년인데, 어디서 남방의 고각(高阁 높은 누각)을 보았겠는가?  다시 < 연가행(燕歌行) >을 읽었더니 "고루에서 맞은 그날 밤, 쉴 수 없음을 탄식하였다."라고 쓰여있었다. 두보(杜甫)의 등루(登楼: 누각에 올라)에서, "꽃핀 고루에 서니 나그네 마음 아프고, 만방에 어려움이 많아 이곳에 올라본다( 花近高楼伤心客, 万方多难 此登临)", 바로 이 시에 나오는 생동하는 고각에 대하여 나는 커다란 호기심이 생겼다. "묶어서 시렁에 올려놓다 (束之高阁)"는 얼마나 웃기는 뜻인가?
*고루(高楼)는 누각이라는 뜻과 함께 높은 선반의 뜻도 있음.
누각에 살러 들어간다는 말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누각에 대한 명상은 그때부터 발원지가 생겼으며, 거기서 나온 물은 끊임없이 흘러 오늘까지 이어졌다. 주로 미관과 우아함 때문인데, 용마루가 완만한 그늘지고 시원한 누각을 나는 언제나 가져보게 될까? 그때부터 북방인인 나의 남방 누각에 대한 환상은 하나의 호기심을 넘어 일종의 성격처럼 바뀌었다  ----- 여러해에 걸쳐 재자가인의 시를 읽다 보니  원앙 호접(妴鸯蝴蝶 : 청 말 부박한 염정을 소재로 한 문예사조)의 낭만에 물들게 되고, 중문과 졸업의 고리타분한 문인으로서 누구도 생각지 못한, 고루를 가져야겠다는 몽상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어느 해 겨울, 나는 절강, 복건, 강서, 3개 성이 교차하는 경계에 있는 오랜 도시 니엔빠도우(廿八都)의 언덕에 섰다. 여기에서 삼만의 주민이 사는 고도를 내려다 보며, 사람들이 생각도 못할, 아주 분명히, 나 자신의 고루를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완만한 용마루가 해 질 녘에 아름다운 한 장면을 구성할, 들어가고 나온 곳이 있는 누각. 누각 위, 작고 협소한 창안에서 누가 거울 마주하고 화장을 할 것인가? 누가 창가에 기대어 귀밑 머리를 매만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