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국의 고딕 양식 건축물의 풍격을 좋아한다. 유럽 건축은 옥상에서 언제나 나가 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하지만 유럽의 누각은 건축 정신과 풍모에서 중국과 확연히 다르다. 그들 대다수는 벽돌을 쌓아 건물을 지었는데, 기껏 별로 크지 않은 창을 열 수 있을 뿐이며, 건물 밖에는 주랑(走廊: 회랑)이 없다. 건물의 안팎이 서로 상당한 막혀있고, 수직의, 위로 향한 뾰족하고 홀쭉한 셩태이다. 대지(大地)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 사람과 자연의 거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의 누각은 거의 모두가 활짝 열려있다. 누각 안팍의 공간이 서로 통하고 서로 분위기가 스며있다. 각 층, 모두 주랑으로 둘러 싸여 있어, 사람들이 가까이 가서 조망할 수 있다.
수평 방향의 층층마다, 처마, 각층마다 빙들러있는 주랑과 난각이 있고, 크게 약해진 전졔적인 강고함의 맛은 위로 향해 올라가는 힘찬 맛이 있다. 순간순간마다 대지를 돌아보고, 오목한 곡선으로 들어간 집의 전면 모습, 완곡하게 솟은 집 모서리는 만들어진 형태의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을 면하게 해 준다. 마치 대자연 가운데 우아하고 아름다운 상감을 해 놓은 것 같고, 그 자체가 천지(天地)의 일부분이 된 것 같다. 그래서 깃들여 사는 사람 또한 자연을 무한히 그리워할 것 같다.
많은 시와 글이 누각의 이런 인문(人文)정신을 선명히 표현하고 있다.
"해는 산에 기우는데, 황하는 바다로 흘러든다.천리를 보고자, 다시 한층 더 오르네. (白日依山尽,黄河入海流; 欲穷千里目,更上一层楼)" 이 시(詩)는 시인이 누각에 올라 멀리 바라보며, 흉금을 털어놓고, 천지 (天地) 간의 절실한 느낌에 다가가는 것을 표현했다.
정취가 넘치는 여러가지 누각의 이름으로도 그 층의 의미를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망 해투 (望海楼 :바다를 보는 누각), 견산루(见山楼:산을 보누각), 간운루(看云楼:구름을 보는누각), 덕월루(得月楼: 달을 얻는누각), 연우루(烟雨楼:안개비 누각), 청풍루(清风楼:맑은 바람이 부는 누각, 흡강각(吸江阁:강을 숨쉬는 누각), 능운각(凌云阁:구름 너머 누각), 영달각(迎妲阁:미인을 영접하는 누각), 석조각(夕照阁:석양이 비치는 누각) 등 여럿이 있다.
바로 이런 개방성 때문에, 사람들을 누각 꼭대기에 이르게 하고, 무엇보다 사람이 자연에 가까워지게 한다.
"백척 높이의 아슬아슬한 누각, 손으로 별을 딸 수 있을 것 같다. 감히 큰 소리로 말하지 마라. 하늘 사람들이 놀랜다."
높은 누각은 분명히 한가닥, 하늘로 통하는 길이다.
나는 자주 하늘을 향하여 탄식하며, 별이 총총한 하늘에 대고 묻는다.---- 공간은 어느 쪽에 있는가? 시간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누각은 철학 사고(思考)의 중량을 견디고, 즐거이 붓을 날리는 낭만을 허용한다. 군자는 높이 오르면 반드시 시를 써야 하고, 높이 오르려면 낮은 데서 시작해야 한다. 한 발에 한 계단씩 오르다 보면 꼭대기에 닿는다. 그다음에 난간에 기대어 천천히 지난 일을 돌아보고, 대지와 백성들을 내려다 보라. 어찌 가득한 열정이 마음속에 솟구치지 않겠는가?
누각은 문인을 빨아들였고, 문인은 누대를 완성하였다.
몇 천년 동안, 누각은 고대 문인의 하늘에 떠있는 몽환(梦幻:꿈과 환상)이었다. 수많은 시문 중, 누각을 쓴 글들은 쇠 털만큼이나 많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공동으로 꿈꾸었던 유명한 누각을 담을 수 있었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유명 누각과 유명 다락집도 많다. 강변에 높이 솟은 누각이나, 책을 보관해둔 누각이나, 산 부근의 날아갈 듯한 누각이나, 강가의 우명한 건물들이 그러하다. 예를 들어 천일각(天一閣), 황학루, 등왕각 같은 것들인데 천백 년을 지나오면서 하나의 부호(符號), 천지와 인생 운명을 관통하는 부호로서 중국 문인 역사의 벽에 각인되었다. 그것은 또한 강산(江山)이 응고한 기세를 말해주기도 한다.
나는 전에 < 나는 지구를 떠난다 >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썼다. 그 내용은 누각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부부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아래를 향해 뿌리를 내렸고, 한사람은 위를 향해 올라갔다. 결국 양갈래 길을 달 리던 차는, 부인은 번잡한 세상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살았고, 남편은 올라가는 계단이 끊어져 버틴 누각에 유폐되었다.----- 두 발 이 땅에서 떨어져 버린 남편이 일단 누각에 들어가자, 창작의 구상과 영감이 샘처럼 솟아났다. 방대한 문장을 거침없이 써 내려갔으며, 짧은 시간에 많은 말을 쏫아내었다. 그는 명상을 하면서, 골돌히 생각했다. 그러다가 끝내, 누각에서 실종되었고, 그림자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 이야기에, 나의 누각에 대한 환상이 들어있으며, 내가 빚은 누각의 은유가 들어있다.
하나의 나선형 계단이 거실 한구석에 있으며, 위로 올 라간다. 거기에는 목재 혹은 철제 계단이 있는데, 계단 자체가 하나의 미묘한 은유이다. ----- 두 발이 지면에서 떨어진, 담장 밖의 생활을 엿보려 하는; 아가씨의 규방을 노리는 춘몽; 떠나온 시끄러운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다. 그것은 물질에서 정신으로, 객관에서 주관으로 가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하늘로 통하는 길이다. 매 층마다 모두 승화된 우이(寓意)가 있다. 한발작 한 발작의 계단, 하나의 객관적 세계로부터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옛날 죽은 사람과 대화하는 블랙홀 ----- 서재, 차실, 명상실을 의미, 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깨우침이고, 영혼에 대한 반성이며, 집체주의를 배척하고, 의식을 사유하는 것이다. 하나의 개성이며, 한가닥 형이상과 형이하가 연접하는 경계에 있는 계단이며, 바로 하나의 사다리이다. 그것은 두 차원의 세계를 관통하며, 육체와 영혼을 용접하여 강화(講和)시킨 것이다.
누각의 베란다에서는 바람을 호흡할 수도, 비를 호흡할 수도 있으며, 멍하니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또한, 녹색의 식물을 위로 옮겨 심어서, ---- 봄에 싹을 티우고, 여름에 왕성하게 자라게 하고, 가을에 생명의 결실을 보고, 겨울이 오면 황량한 몰락을 볼 수도 있다. 이파리 하나, 세 개의 싹은 당신의 정신을 족히 솟구치게 하고, 영혼이 깃들이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누각이다. 영혼을 놓아 둘 수 있는 곳.
이것이 바로 누각이다. 영혼을 갇힌 구멍에서 나올 수 있게 하는 곳.
原載 < 망종 > 2016. 제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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