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중점중학에 가지 못하고, 부친을 따라 루 코우(路口) 중학에 들어갔다. 루 코우는 금강과 루어 링 사이에 있는데 부친은 루 코우 지역 문교행정 주임이었다. 나는 부친과 루 코우 중학 후원에 있는 단칸방에 살았는데 침대가 하나밖에 없어서 같이 썼다. 내 성적은 중학교에 들어간 후 비약적으로 좋아져서 학년 전체 1등이 되었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 쩐창루(阵长孺)는 부친의 제자였고, 지금은 스지아좡(石家庄)에 산다. 그녀는 학생들을 매우 엄하게 대했고 나에게는 더욱 심했다. 수업시간에 그녀는 언제나 눈동자로 나를 압도하여 나는 감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다른 과목 수업 때도 그녀는 자주 창밖에 서서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들여다 보아서 나는 그녀 수업 때와 마찬가지로 꼼짝도 못 했다. 내 성적은 수직으로 상승하였고, 거기다 노는 것도 배웠다.
나는 몸이 약하여 소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 모친은 덧문을 떼어내서 나에게 탁구를 가르쳐주었고, 이른 아침부터 나에게 나가서 뛰고 오라고 명령했었다. 중학교에 가서도 나는 여전히 새벽 달리기를 했고, 탁구와 농구에 있어서 내 위치는 루어 링 소학교 때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탁구 시합에서 2등을 했고, 반 농구팀의 주전 선수였다. 공을 드리블하면서 돌파하거나 세발 뛰어 점프 슛하기는 나의 절묘한 특기였다. 하지만 공을 드리블하면서 돌파하고 나면, 공을 뺏겨버렸고, 세발 뛰어 점프슛 한 것은 림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도로 튀어나왔다. 나는 동작의 잘못을 연구해보았다. 3점 라인에서 점프슛 할 때는 두발이 한데 합쳐지고, 발끝이 아래를 향하게 해서 마치 발레 하는 것 같이 해야 한다. 만약 내가 그렇게 못했다면 다음에 내가 공을 잡을 때는 반드시 다시 한번 그렇게 했다. 2학년 때는 매우 신통치 않았는데 내 시력은 1.5에서 0.2로 급격히 떨어졌고 그 원인은 알 수 없다. 나는 검은 테 안경을 써야 한다고 압박받았고, 그때 농구팀을 탈퇴했다. 체육 전공은 탁구만 하게 되었다.
나는 계속 소년선봉대의 대대장이 되었다. 거기다, 노래하고, 춤추고, 합창대 지휘까지 해서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넘버원이었다. 나는 2학년 때, "호남성우수소년"칭호를 받는 영예를 얻었고, 모친에게 적지 않은 기쁨을 안겨주었다. 모친은 그때 루 코우 중학교에서 업무연수를 받고 있었는데 나의 잘 나가는 상황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나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우연찮게 모친이 연수 기간 중, 쓴 한편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이렇게 말했다. "매번 아들의 대단한 성취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마치 꿀단지에 빠진 것처럼 달콤하다". 이 말은 나에게 더할 수 없는 자극이 되었고, 나는 그 후 더욱 분발하여, 연이어 승전보를 보내서 모친이 꿀단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모친이 나에 대하여 자랑스러워 할 때, 동시에 누나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누나는 총명하고, 준수하며, 성적도 좋았지만 여러 차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예를 들면, 그녀가 대학 일 학년 여름방학 때, 부친은 우리 삼 남매에게 수영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부친이 제일 좋아했던 누나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우리 집 앞에는 400평이 채 못되는 저수지가 있었다. 마침 부친이 저수지에서 나에게 수영 요령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눈을 등잔만 하게 크게 떴다. 알고 보니 누나가 도시에서 가져온 삼점식 수영복을 입고 하늘하늘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감히 내기를 걸었다. 5분 이내에 저수지 아래 십 수 명의 시골 청소년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격분한 부친이 죄를 물으려고 벼르다가 문득, 자기도 상반신을 벌겋게 드러내고 물속에 서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부친은 허둥지둥하면서 화를 참느라 얼굴이 뻘게졌다. 그러고 나서 적어도 3일 동안은 누나에게 일체 알은체도 하지 않았다.
이건 작은 해프닝이었다. 누나는 귀신이 곡할 정도로 기묘하게 연애에 빠졌다. 먼저 우리 중학교의 정치교사를 사랑했는데 수능시험이 임박해서도 여전히 연애소설을 썼고, 1981년 대학시험에 낙방했다. 모친은 그해에 사립교원에서 공립교원으로 바뀌었고 나와 누이동생도 그에 따라 국가양곡배급대상이되었다. 누나는 나이가 15세를 초과했기 때문에 농촌 호구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대학에 붙지 못했다는 의미는 바로 농사짓는 농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녀는 정신 차리고 잠시 노력하며, 둘째 해에 때맞춰 호남 사범대학에 커트라인 근처 아슬아슬한 점수로 겨우 턱걸이해 붙었다. 그녀가 학교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학교 보도원과 한바탕 요란한 연애를 시작하였다. 이일로 일평생 싸움이라곤 모르고 잘았던 부모가 한차례 대판 싸움을 했다. 술 한 방울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부친이 바이주 반 병을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침대에 누워 큰소리로 모친의 이름을 소리쳤다.
당시 나는 상당히 여러번 누나와 공모했고, 누나의 총명함과 용기에 감탄했다. 모친도 누나의 연애 사건들을 그다지 많이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부친의 시선은 맹수같아서, 사납게 몇 차례 억지로 연애를 끊어 놓았다.(棒打鸳鸯散) 사실, 부친은 사납기만 했지, 때리지 않았으면서도 헤어지게 했다. 누나에게는 그런 일 쯤이야 살아가면서 늘 일어나는 에피소드 같은 흔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부친이 소리치며 화를 내면 공포 분위기가 더해졌을 뿐이다.
* 중국에는 중점중학(重点中学)이 있는데, 우수한 아이들이 가는 일류학교라고 이해하면 된다.
* 중국의 高考는 대학 수학 능력 시험으로 이 시함 때가 되면 교육열이 높은 중국은 전국이 들썩들썩 한다. 어설픈 우리나라 운동권 이상주의자들이 자사고를 없애네, 외고, 과학고를 없애네 하지만 정작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영재교육을 중학교 때부터 시킨다.
* 棒打鸳鸯散 : 억지로 연애를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성어로, 직역하면 몽둥이를 휘둘러 원앙을 헤어지게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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