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村)이었던 선전(作为村的深圳): 6/7 陈再见
원령촌(远岭村) 나는 원령촌(圆岭村)에 산 적이 없다. 원령촌은 후티엔(福田)에 있는, 시내에 있는 촌(村)이고, 나는 한 번도 시내에 살아본 적이 없다. 매번 시내에 갈 때마다, 나는 언제나 일종의 시골에서 도시로 가는 것 같은 위축감을 느꼈다. C는 그런 원령촌에 산다. C는 내가 선전에서 교제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나는 그를 좋아하고, 그도 나를 좋이 한다. 우린 어떤 화제도 말할 수 있는 사이인데, 거기엔 상대방의 제일 치명적인 결점도 포함된다. C는 이전에는 후용(福永)에 살다가, 나중에 화창베이(华强北)로 갔고, 거기서 다시 원령촌으로 이사했다. 나는 그의 거주지가 바뀔 때마다, 언제나 갔었는데, 매번 그의 거주지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그는 충칭(重庆) 사람으로, 인테리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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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村)이었던 선전(作为村的深圳): 5/7 陈再见
해빈신촌(海滨新村) 내가 지금 사는 곳은 해빈신촌(海滨新村)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여기는 바다와 접해있지만, 모래사장도 없고, 매우 지저분하다. 부근에 또 하나의, 해빈신촌이라 부르는, 도시 중의 촌이 있는데, 여기는 보원로(宝源路) 변에 있다. 그래서 때때로 택시를 타거나 길옆으로 가는, 자동 이룬 차를 타고 집으로 올 때는, 미리 해변에 있는 해변신촌으로 가자고 설명해야만 한다. 듣기에, 마치 내가 마치 바다와 접한 별장에라도 사는 것 같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실제로 와보면 상당히 혼란스럽고 더러운 곳이다. 처음에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된 데는, 다른 이유가 생각나는 게 없고, 오직 방세가 쌌기 때문이다. 나는 이즈음, 살면 살수록 외진 곳, 일부러 시내에서 먼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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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村)이었던 선전(作为村的深圳): 4/7 陈再见
남창촌(南昌村) 꽤 오랫동안, 나는 10번째 골목, 7호에 살았다. 그때의 진선생은 아직도 거기 살고 있다. 먼젓번 다시 갔을 때, 나는 그 착한 집주인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일부러 아래층에서 한번 올려다보았다. 비교해서 말하자면, 그 집은 정말 낡은 집이었고, 빨간 타일이 붙어 있어서 좌우의 새 집들과 구별되었다. 마치, 당시 우리가 살던 방이 주위의 방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다른 것은 색깔만이 아니었다. 새 집은 방세가 비쌌고, 낡은 집은 방세가 쌌다. 그 당시에 나는 그저 싼 방만을 선택했을 뿐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충이 높으면, 천천히 올라가면 되었고, 출입구의 경비가 시원치 않더라도, 집안에 무슨 귀중품이 있는 것도 아니니 겁날 게 없었다. 골목에는 당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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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村)이었던 선전(作为村的深圳): 3/7 陈再见
남창촌(南昌村) 불과 얼마 전, 나는 일부러 남창촌에 갔다. 나는 거기서 3년 동안 살았었는데, 2007년부터 2010 사이 였다. 나는 그곳의, 와글와글하던 골목, 상점, 채소가게, 백화점, 불법 pc 방, 자전거 수리와 열쇠 수리하던 곳, 아침으로 먹던 간식, 이런 것들, 하나하나에, 정이 많이 들었다. 남창촌에서 보낸 3년, 나는 세 군데 셋집에서 살았다. 8층에서 3층까지 살았는데, 제일 오래 산 곳은 10번 골목 7호 집이다. 나는 이전에 로 제목을 붙인 시가(诗歌) 늘 썼는데, 지금까지도, 그 시를 어떻게 썼는지 기억하고 있다. ---- 나는 베란다에 펼쳐 놓고 원고를 썼다. 나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태양빛이 내리쬐는 것을 보았다. 때마침, 비행기 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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