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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촌(村)이었던 선전(作为村的深圳): 7/7 (끝) 陈再见 이 글은 마치, 하나의 시(詩)에서, 두 가지 가장 아름다운 시적 안목(詩眼)이 누락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나는 촌(村)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 또 하나는 살면서 내 친구를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다. ​ 심야의 원령촌을 나는 처음 들어가 보았다. 택시가 문이 닫힌, 신이지아(新一街) 입구에 섰다. 길모퉁이에 있는 한군데 구이 전문점(烧烤档)에서 조용히 맥주와 음식을 먹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원령촌이 정말 잠이 들었다. 나는 길가에 서있었는데, 아무도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 나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 돌아가는 젊은이 정도로 보는 것 같았다. 조금 있다가, 반바지를 입은 C가 거리의 어두운 골목에서 나왔다. 나는 처음에는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보지 못했으나, 그가 걸.. 더보기
촌(村)이었던 선전(作为村的深圳): 6/7 陈再见 원령촌(远岭村) 나는 원령촌(圆岭村)에 산 적이 없다. 원령촌은 후티엔(福田)에 있는, 시내에 있는 촌(村)이고, 나는 한 번도 시내에 살아본 적이 없다. 매번 시내에 갈 때마다, 나는 언제나 일종의 시골에서 도시로 가는 것 같은 위축감을 느꼈다. C는 그런 원령촌에 산다. C는 내가 선전에서 교제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나는 그를 좋아하고, 그도 나를 좋이 한다. 우린 어떤 화제도 말할 수 있는 사이인데, 거기엔 상대방의 제일 치명적인 결점도 포함된다. C는 이전에는 후용(福永)에 살다가, 나중에 화창베이(华强北)로 갔고, 거기서 다시 원령촌으로 이사했다. 나는 그의 거주지가 바뀔 때마다, 언제나 갔었는데, 매번 그의 거주지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그는 충칭(重庆) 사람으로, 인테리어 기사.. 더보기
촌(村)이었던 선전(作为村的深圳): 5/7 陈再见 해빈신촌(海滨新村) 내가 지금 사는 곳은 해빈신촌(海滨新村)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여기는 바다와 접해있지만, 모래사장도 없고, 매우 지저분하다. 부근에 또 하나의, 해빈신촌이라 부르는, 도시 중의 촌이 있는데, 여기는 보원로(宝源路) 변에 있다. 그래서 때때로 택시를 타거나 길옆으로 가는, 자동 이룬 차를 타고 집으로 올 때는, 미리 해변에 있는 해변신촌으로 가자고 설명해야만 한다. 듣기에, 마치 내가 마치 바다와 접한 별장에라도 사는 것 같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실제로 와보면 상당히 혼란스럽고 더러운 곳이다. 처음에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된 데는, 다른 이유가 생각나는 게 없고, 오직 방세가 쌌기 때문이다. 나는 이즈음, 살면 살수록 외진 곳, 일부러 시내에서 먼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보기
촌(村)이었던 선전(作为村的深圳): 4/7 陈再见 남창촌(南昌村) 꽤 오랫동안, 나는 10번째 골목, 7호에 살았다. 그때의 진선생은 아직도 거기 살고 있다. 먼젓번 다시 갔을 때, 나는 그 착한 집주인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일부러 아래층에서 한번 올려다보았다. 비교해서 말하자면, 그 집은 정말 낡은 집이었고, 빨간 타일이 붙어 있어서 좌우의 새 집들과 구별되었다. 마치, 당시 우리가 살던 방이 주위의 방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다른 것은 색깔만이 아니었다. 새 집은 방세가 비쌌고, 낡은 집은 방세가 쌌다. 그 당시에 나는 그저 싼 방만을 선택했을 뿐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충이 높으면, 천천히 올라가면 되었고, 출입구의 경비가 시원치 않더라도, 집안에 무슨 귀중품이 있는 것도 아니니 겁날 게 없었다. ​ 골목에는 당구장.. 더보기
촌(村)이었던 선전(作为村的深圳): 3/7 陈再见 남창촌(南昌村) ​ 불과 얼마 전, 나는 일부러 남창촌에 갔다. 나는 거기서 3년 동안 살았었는데, 2007년부터 2010 사이 였다. 나는 그곳의, 와글와글하던 골목, 상점, 채소가게, 백화점, 불법 pc 방, 자전거 수리와 열쇠 수리하던 곳, 아침으로 먹던 간식, 이런 것들, 하나하나에, 정이 많이 들었다. ​ 남창촌에서 보낸 3년, 나는 세 군데 셋집에서 살았다. 8층에서 3층까지 살았는데, 제일 오래 산 곳은 10번 골목 7호 집이다. 나는 이전에 로 제목을 붙인 시가(诗歌) 늘 썼는데, 지금까지도, 그 시를 어떻게 썼는지 기억하고 있다. ---- 나는 베란다에 펼쳐 놓고 원고를 썼다. 나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태양빛이 내리쬐는 것을 보았다. 때마침, 비행기 한 대.. 더보기
촌(村)이었던 선전(作为村的深圳): 2/7 陈再见 이화촌(怡华村) 오래지 않아, 둘째 형과 동생이 함께 눈앞에 나타났다. 둘째 형은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 나는 아직도 그것이 빨간색 스즈끼 오토바이였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둘째 형은 우리를 데리고 이화촌(怡花村)으로 갔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기억하기로는 몇 번 방향을 바꾸더니 내리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도 이화촌을 말한다면, 나는 즉각 바오후이 빌딩이 생각나고, 비록 그것들이 서로 무슨 관련이 없더라도, 내 인상 속에는 오히려 하나 같다. 기억이 남겨놓은 흔적은 때때로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다. ​ 둘째 형네 작은 가게에서, 둘째 형수는 나와 동생에게 곽에 들어있는 라면을 한 개씩 끓여 주었다. 시골에서 본 라면은 모두 비닐봉지에 들어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닭칼국수(鸡切面)라고 불렀다.. 더보기
촌(村)이었던 선전(作为村的深圳) : 1/7 陈再见 * 중국 선전(深圳 : 심천) : 광동성 중심부의 인구 1,300만의 도시. 중국 기술의 허브로 불리며, 첨단 반도체 기업이 밀집해 있다. ​ ​ ​ 이화촌(怡华村) ​ 둘째 형이 이화촌에서 작은 가게를 연지는 벌써 여러 해 전이다. 구체적으로 몇 년이나 지났을 때인지는, 현재 나는 물론 둘째 형도 확실히는 모른다. "새까맣게 오래전"이라는 말로 묘사하는 게 맞다.----- 새까맣게 오래전, 여름 방학 때, 나는 동생과 함께 선전(深圳)으로 가는 장거리 여객 버스를 탔다. 그때는 선산(深汕) 고속도로도 없을 때라, 느림보 버스는 구불구불, 덜컹덜컹, 그것도 지루하게 달렸다. 대충 하루 걸렸는데, 우리는 땅거미가 질 때쯤 불빛을 보았다. 우리는 그 불빛들이 선전의 불빛인지는 알지 못했다. 동생은 눈치 빠른.. 더보기
남해에 가서 나무 한 구루를 심다.(去南海栽一棵树 ) 5/5 (끝) : 刘醒龙 2009년 11월 6일, 진충실이 뜻밖에 전화를 걸어와, 나에게 한 권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는 책에 쓰여있는 그 당시, 자기가 민반교사(民办教师: 시골 사립학교 교사: 생계 보장이 안되었다)를 할 때라고 했다. 의 속표지에 이런 말이 쓰여있다. "중국의 대지 위에서 묵묵히 고행의 길을 걷는 민간 영웅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이 말은 진충실 같은 사람에게 써도 나무랄 데 없다. ​ 2016년 4월 7일, 오후, 강서성 위도우현(于都县) 홍군 장정 기념비 앞에서, 나는 장정(长征: 중국 공신군이 장개석 군에 쫓겨, 변방으로 만 km 이상 도망 다녔던 험난한 여정) 길을 다시 걷는 작가들을 대표해서 말했다. 서두의 말은 진충실에게 보내는 말로 시작했다. "10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