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령촌(远岭村)
나는 원령촌(圆岭村)에 산 적이 없다. 원령촌은 후티엔(福田)에 있는, 시내에 있는 촌(村)이고, 나는 한 번도 시내에 살아본 적이 없다.
매번 시내에 갈 때마다, 나는 언제나 일종의 시골에서 도시로 가는 것 같은 위축감을 느꼈다. C는 그런 원령촌에 산다.
C는 내가 선전에서 교제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나는 그를 좋아하고, 그도 나를 좋이 한다. 우린 어떤 화제도 말할 수 있는 사이인데, 거기엔 상대방의 제일 치명적인 결점도 포함된다.
C는 이전에는 후용(福永)에 살다가, 나중에 화창베이(华强北)로 갔고, 거기서 다시 원령촌으로 이사했다.
나는 그의 거주지가 바뀔 때마다, 언제나 갔었는데, 매번 그의 거주지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그는 충칭(重庆) 사람으로, 인테리어 기사다. 그는 시(詩), 산문, 소설을 모두 잘 쓴다. 그는 재능 있고, 성질도 있으면서, 키가 작고, 몸이 땅땅하며, 피부는 까무잡잡하다. 그리고 웃을 때, 이와 잇몸을 모두 드러내는 남자다.
내가 원령촌에 간 횟수는 그렇게 많지 않으며, 매번 간 것은 당연히 C를 찾아간 것이다. 내가 원령촌과 갖고 있는 유일한 관련은 바로 C라는 남자다. 만약에 그가 원령촌을 떠난다면, 나는 당연히 다시 이곳에 한발 작도 발을 들여놓을 일이 없을 것이다.
원망스럽게도, 처음 이곳에 오기 시작할 때까지, 나는 이곳 촌 이름을 기억할 방법이 없었거나, 혹은 내가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여간 여기는 나와 인연이 없는 곳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다가, 대극윈 역에 내리니, C는 전화로, 용강선으로 환승하여 홍령 역으로 타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려지공원을 통과해서, 원령촌으로 걸어서 갔다.
C는 신이지아(新一佳) 입구에서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의 걸어오는 자세는 언제나 묵직해서, 한걸음 한 걸음이 마치 대지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한동안, 나는 원령촌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C 같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기질은 원령촌과 서로 의기가 투합했다.
그가 먼저 웃었고, 내가 따라 웃었다. 그런 다음, 그는 다시 나를 안내하여 얼마큼 걸어가더니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 지하실 같은 곳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다시 Z자 모양의 계단을 올라가니 바로 그가 세를 사는 집, 일층이 나왔다.
그의 집은 3층, 칸막이로 막아서 몇 개의 작은방을 만든 큰 원룸이었다. C의 말은, 그 작은방들 전체를 세를 얻어서, 그 안의 작은방들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세를 놓았고, 그래서 자기가 두 번째 작은 집주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실인즉 나는 방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거야."
그는 이렇게 말하며,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분명히 원령촌에서는 집세를 안 내면서, 살 집이 있는 사람은 원주민밖에 없을 것이다. 그곳의 집세는 어찌나 비싼지, 혀를 내두르게 했지만, 방은 상상도 못하게 좋았다.
매번 C의 셋집에 갈 때마다, 나는 일종의 압박감을 느꼈는데, 자세히 보니 지붕이 너무 낮아서, 내 이마 높이밖에 안되었다. 내 키는 165이다.
C도 나보다 별반 나을 것이 없어서, 침대 하나, 컴퓨터를 올려놓은 탁자 하나, 책꽂이 하나만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았다. 거기서 먹고 자고 다 하면서, 느긋하게 시를 썼다.
나는 원령촌이 얼마나 크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본 원령촌은 C가 사는 곳으로 연결된 거리와 골목뿐이어서, 그 촌(村)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모두 C 같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일테면 인테리어 기사, 이따금 글도 쓰고, 또는 쓰레기도 줍는 사람이나 노점상, 작은 백화점, 작은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때때로 인터넷 게임도 하고, QQ 채팅도 하지만, 사실은 아주 외로운, 리지 공원에 가서 여인들을 만나거나, 혹은 아예 캄캄한 골목으로 들어가 벌거벗은 아가씨를 찾는 그런 사람들이다.
마치, 선전의 촌은, 모두 나의 이런 상상에서 벗어날 수 없고, 선전의 촌사람들은 당연히 이 도시의 최저층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 번도 원령촌에서 밤을 보내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날은 광저우(广州)에서 제일 좋은 고속 열차를 타고 루어후(罗湖)기차역에 왔는데, 그때가 밤 12시였다. 지하철도 끊어지고, 버스도 끊어져서, 나는 관외(关外)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때, 행인들이 모두 사라진, 가로등이 환한 거리에 서있자니, 일종의 공황감이 생겼다.
똑같은 선전인데, 내가 관내(关内)에 체류하게 되자, 나는 관내가 내가 살고 있는 도시라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나는 관외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관내와 관외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도시같이 느껴졌다. 내가 광저우(广州)에 서서, 선전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느낌 같았다.
갑자기 C가 생각났고, 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C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나는 너 있는대서 자고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좋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차를 타고 가야 하는지 모른다 하자, 택시를 타고 루어후 기차역에 오면 거기서 멀지 않다고 했다.
그가 멀지 않다고 했다. 나는 "너 있는 데가 무는 촌인데?"라고 물었다. 그는 원령촌이라고 하며, 신이지아(新一佳)에서 내리라고 했다. 나는 바로 이 이름이 기억났고, 오늘날까지, 컴퓨터로 이 "원령촌"이란 세 글자를 이렇게나 많이 쳤다. 내가 보기에, 이 세 글자는 남의 집에서 잔 밤과 더불어 따뜻한, 한 가지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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