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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촌(村)이었던 선전(作为村的深圳): 3/7 陈再见

선전 야경 (바이두에서 전재)

 

 

 

남창촌(南昌村)

불과 얼마 전, 나는 일부러 남창촌에 갔다.

나는 거기서 3년 동안 살았었는데, 2007년부터 2010  사이 였다. 나는 그곳의, 와글와글하던 골목, 상점, 채소가게, 백화점, 불법 pc 방, 자전거 수리와 열쇠 수리하던 곳, 아침으로 먹던 간식, 이런 것들, 하나하나에, 정이 많이 들었다.

남창촌에서 보낸 3년, 나는 세 군데 셋집에서 살았다. 8층에서 3층까지 살았는데, 제일 오래 산 곳은 10번 골목 7호 집이다.

나는 이전에  < 남창촌 10번 골목, 7호 >로 제목을 붙인 시가(诗歌) 늘 썼는데, 지금까지도, 그 시를 어떻게 썼는지 기억하고 있다. ---- 나는 베란다에 펼쳐 놓고 원고를 썼다.

나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태양빛이 내리쬐는 것을 보았다. 때마침, 비행기 한 대가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대나무 빗자루를 끌고 옥상 위에서 냅다 뛰는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당시의 그 느낌을 쓰고 싶었다.

내가 만약 비행기가 날아가는 고도에서 서서 내려다본다면, 모든 셋집 사는 사람들, 그렇게나 많은 노무자들이, 모두, 사실 우물 안 개구리로 보일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개구리 떼가 한꺼번에 뛰어올랐다가, 또 한꺼번에 뛰어내린다면, 그건 얼마나 대단한 장관일까, 혹은 얼마나 기괴한 모양일까?

어쩌면,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아름답거나, 공포스러울 것이다.

남창촌에 이사 오기 전, 나는 이미 전자 공장에서 수년  동안 일했다.

내가 처음 이회촌에서 전자 공장 종업원들을 보고, 그들이 몸에 걸친 푸른색 작업복을 보았을 때부터, 내가 스스로 한 명의 전자 공장 종업원이 될 때까지의 기간이 대충 10년 정도 된다.

10년이란 시간 동안에, 나는 큰 변화가 없었던 것 같다 ---- 단지 키가 커지고, 몸이 커진 것뿐이고, 나는 오히려 선전이 낯설게 느껴졌다.

남창촌으로 이사 온 것는 절대로 내가 원해서가 아니다. 그곳에 있던 전자 공장이 공장부지가 훨씬 싼 이곳으로 이사 왔기 때문이다. 전자 공장은 보안대로 변의 화풍 공업구역으로 이사 왔는데, 당시 보안대로가 아직 건설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처에, 먼지가 높이 날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정말 사람이 걸어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퇴근을 하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지 몰라, 하루 종일 공업지역에 안에 남아있거나, 기숙사 안에 있거나 했다.

공업구역 밖은 온통  들판이었던 것이 인상에 남는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알려주어서, 겨우 도로변에 남창촌이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 거기엔 백화점도 있고,  pc방도 있고, 양복점까지 있었다. 당연히, 셋집도 아주 많았다.

그 1~2년 사이에 나는 많은 일을 겪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결혼이었다. 지금도 그 당시 내가 어쩌자고, 무턱대고 결혼했는지 알 수 없다. 그때, 일찍 가정을 갖게 되면, 새로운 인생이 열릴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지극히 실망했고, 앞으로 나아 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결혼이 좋은 방법을 가져다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또 주거 문제가 나를 곤혹스럽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더 이상 기숙사에 살 수 없게 되었고, 나가서 셋방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바로 매달 수백 원(元) 이상을 집세로 써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역시 남창촌에서 방을 찾아보았고, 비싸지 않게, 단칸 방을 매월 200원씩 내기로 했다. 나는 약간 흥분하여, 첫 번째로 아내를 데리고  보러 갔다. 젊은 부부 둘이서 확실하게 감동한 나머지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도 이제 집이 생겼어!"

내가 남창촌으로 이사 갈 때, 남창촌은 온통 적막했다. 항성 대로는 여전히 울퉁불퉁했고, 남창공원은 온통 낮은 단층집 투성이였으며, 쓰레기 줍는 사람과 구걸하는 사람이 떼를 지어 살았다. 내가 이사를 떠날 때쯤 되어서야 그곳이 평평하게 깎아졌지만, 오랜 기간 동안 온통 잡초가 무성한 봉쇄된 황무지였다.

당시 공원 맞은편 가성(佳盛) 백화점은 아직 없었다. 백화점의 전신은 사실 전일(全一) 전자 공장의 작업장이었다. 나는 매번 그곳을 지날 때마다, 한 무리의 전일 전자 공장 종업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일은 큰 공장이었고, 나는 큰 공장 종업원만 보면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속으로 나도 거기 종업원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몇 년 후, 나는 문우(文友) L을  알게 되었는데, 그에게 사는 곳을 물어보니, 대뜸 전일 전자라고 대답했다. 나는 L에게 금세 친밀감이 생겼다. 어쩌면 우리는 전에 본적도 있고,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나는 심지어 그의 작업복까지 부러웠다.

수년 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같이 전일 옛 공장부지 이야기를 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생활의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