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촌(南昌村)
꽤 오랫동안, 나는 10번째 골목, 7호에 살았다. 그때의 진선생은 아직도 거기 살고 있다. 먼젓번 다시 갔을 때, 나는 그 착한 집주인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일부러 아래층에서 한번 올려다보았다.
비교해서 말하자면, 그 집은 정말 낡은 집이었고, 빨간 타일이 붙어 있어서 좌우의 새 집들과 구별되었다. 마치, 당시 우리가 살던 방이 주위의 방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다른 것은 색깔만이 아니었다. 새 집은 방세가 비쌌고, 낡은 집은 방세가 쌌다. 그 당시에 나는 그저 싼 방만을 선택했을 뿐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충이 높으면, 천천히 올라가면 되었고, 출입구의 경비가 시원치 않더라도, 집안에 무슨 귀중품이 있는 것도 아니니 겁날 게 없었다.
골목에는 당구장과 이발소가 있었다. 건물 다른 쪽에는 자전거 수리하는 노인이 좌판을 펴고 있었는데, 그는 습관적으로 거기 웅크리리고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자전거 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렁뱅이 같아 보였다. 그 당시, 나는 자주 자전거 타이어를 수선했는데, 한번 할 때 3元씩 주었다. 그 자전거는 세월이 갈수록, 거의 며칠에 한 번씩, 납작해져서, 나는 왕짜증이 났다. 하지만, 어느 날 좀도둑이 그걸 메고 가서, 보이지 않게 되자, 나는 마치 가까운 사람이 없어진 것처럼 견디기 어려웠다.
그 당시 나는 자전거에 의존해서, 화풍 공업지구에 출근도 하고, 그보다 훨씬 먼 곳으로 신문, 잡지를 사러 가기도 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맞은편에 이발소가 있었는데, 문 입구에는 늘 몇 명씩 아줌마들이 앉아있었다. 그녀들은 저마다 손에 작은 상자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그건 부근 공장에서 받아온 손으로 하는 작업물이었다.
그녀들은 누가 골목을 지나가는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다시 남창촌에 갔을 때, 그녀들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나는 그녀들이 나를 한번 보아주거나, 심지어는 아는 척이라도 해주기 바랐다. 내가 그래도 맞은편 건물에서, 몇 달에 한 번씩은 머리를 깎으러 갔던 젊은이였으니 말이다. 비록 나중에는 안 보였겠지만.
하지만 나는 실망했다. 어찌 되었거나, 나는 언제나 그녀들과 똑같은 지나가는 과객이었을 뿐이다. 비록, 내가 방문자의 신분으로 다시 돌아왔어도, 나는 여전히 조금도 우월감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남창촌에 살았다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내가 방안의 벽에 남겨 놓은 필적을 제외하면, 나는 어떤 증거도 남긴 것이 없었다.
선전(深圳)의 시골도, 똑같은 시골이다. 고향 마을처럼, 돼지 키우고 양 키우는 것이 전부인 그런 시골이다.
남창촌을 오는 사람이나, 가는 사람이나, 누구도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따져 묻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내가 남창촌에 다시 간 것은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 있어서다.
작가에게 이런 작은 정(情)은 당연히 무시당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몇 년 전에 있었던 곳, 예를 들어 내가 앉았던 풀밭, 밥을 먹었던 식당, 늘 잡지를 사던 가판대.... 그것들은 내가 이 도시에 남겨놓은 시간을 제외한 그 밖의 공간이란 의미의 기억이다. 어느 때 보았거나, 가까이 갔거나, 하여간 모두 시간을 되돌려 놓는 것 같고, 다시 그때의 정감을 느끼게 한다.
나는 남창촌에 대한 정이 아주 깊다. 다른 이유는 없고, 오로지 나의 문학의 길이 거기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008년, 북경 올림픽 때, 나는 아내와 경기를 보다가 갑자기 말했다."다음 올림픽 때는, 나는 작가가 되어있을 거야."
아내는 보나 마나 나의 이 엉뚱하고 기고만장한 예언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금년은 런던 올림픽, 나는 일부러 말을 꺼내어 아내의 질문을 끌어냈다.
10번째 골목 7호의 옆집은 야시장이라고 해야 맞다.
나는 그 당시 창문으로 야시장의 소란스러운 열기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항성대로의 강줄기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오는 오수(汚水) 냄새가 야시장의 닭 날개 구이, 찹쌀 볶음, 쓰란 볶음 할 때, 눌어붙은 기름냄새와 뒤섞여 우리 집 베란다로 확확 불어오던 것을.
그런 상황은, 지금 생각해 보니, 문학 환경과 분위기였고, 거의 운명적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깊은 밤, 아래층으로 내려가, 여러 골목을 가로질러, 꼭꼭 숨어있는 불법 pc방을 찾아갔다. 다른 사람은 은 pc 방에 가서, 컴퓨터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QQ 채팅도 하는데, 나는?
나는 공책 한 권을 들고 가서, 한 글자, 한 문장, 글 원고를 입력해서 파일을 만들었다. 나의 이런 괴이한 거동은 적지 않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어떤 pc방 주인은 내가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하는 줄 알고, 인터넷에 계속 접속하는 것을 거절했다. 그래서 나는 가져간 공책을 안고, 캄캄한 골목을 지나, 다른 불법 pc방을 찾아가야 했다. 남창촌에는, 참을성 있게, 공책에 있는 엉성한 글을 다 찍을 수 있게 해주는 물법 pc방이 언제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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