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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부친 일생의 6개 기막힌 장면(父亲一生的六个别致场景) -3 : 千岛 1971년 1월 22일. 31세. 꼭두새벽에, 그와 같은 방, 학교 진구는 짐을 꾸리느라 정신없었다. 외투를 입으려니 거치적 거려서, 그는 아예 벗어서, 행여 옷이 찢어져 구멍이라도 뚫릴까 겁내며, 조심조심 회백색 벽의 쇠못에 걸었다. 이 초록색 군복 외투는 그와 더불어 10년을 견뎌왔고, 그의 3년간 군대생활의 상징적 물건이라, 그는 극도로 아꼈다. 비록 이미 낡아빠져서, 서너 군데 헝겊 조각을 대고 기웠지만, 매년 겨울만 되면 그는 언제나 궤짝을 뒤집어 그 옷을 찾아 입었다. 맑은 날에는 햇볕을 충분히 쬐인 후, 껴입었다. 그것을 입으면 따뜻한 온기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은, 갑자기 마음속에 저르르 용맹한 기개가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전에 군인이었다는 생각이 미치자, 기분 좋기도 했고 동시에 .. 더보기
부친 일생의 6개 기막힌 장면(父亲一生的六个别致场景) -2 : 千岛 1958년 2월 21일. 18세. 공기는 차고 땅은 얼어붙었다. 기숙사 안은 으스스하게 추웠다. 그는 가볍게 팔다리를 움직여 2층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는 깊이 잠든 친구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깰까 두려웠다. 오늘, 그는 중학교 생활을 완전히 접으려고 한다. 그는 미련이 남아 아쉬웠고, 얼마간 감상에 젖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흥분된 마음이 되어, 학교 정문을 빠져나갔다. 그는 바로 국가를 방위하는 군인이 되려는 것이다. 하늘은 아직 캄캄한데, 그는 북쪽에 있는 소문로(小門路)를 나갔다. 그는 지나치게 감동이 컸던 탓인지, 하마터면 문턱에 걸려 넘어질 뻔하였다. 학교가 있는 천년 고도, 메이청(梅城: 광동성 동북부 지역 소재 옛 도시)은 진작부터 전략 요충지였다. 또 주부(州府 오래.. 더보기
부친 일생의 6개 기막힌 장면(父亲一生的六个别致场景) -1: 千岛 부친이 76세가 되었다. 나는 그와 도시에서 함께 생활해 본 적은 없고,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차례 본다. 하지만, 매일 보고 싶기는 하다. 내가 쓴 산문은 만자문(万字文 :글자 만개 분량의 글)으로, 허구 아닌, 허구 방법을 이용, 시험 삼아 썼다. 부친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6일을 채택하여,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부친의 일생을 되살려 보려 한다. 1942년 7월 18일. 두살. 그는 세워놓은 통 안에 있었고, 통구멍에는 반달 모양의 보호판이 있어 그의 몸이 빠져나가지 않게 해 주었다. 그는 이제 두 돌이 지났으나, 아직 걷는 것은 배우지 못했고, 어른들은 농사일과 집안일에 바빠서 그와 놀아 줄 시간이 없었다. 기껏 그에게 이런 식으로 혼자 알아서 놀게 내버려 두었다. 통을 가로막은 판때기 위에.. 더보기
물방울의 사랑: 나의 노신(鲁迅)문학원 꿈.(끝); 赵凯 노신문학원 본관 앞 탁 트인 안채 뜰은 대단히 이채로워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정면에 강철 와이어에 매달린 노신의 상이 있고, 양쪽 툇마루에는 현대문학 명저에 이름을 남긴 거장들의 초상화와 이름이 줄지어 있어, 참으로 장관이고, 놀랍다. 또 현대문학관에는 현대 문학 명저에 나오는 인물 삽화를 전시한 화랑이 있다. 기숙사 내방 창가에서는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데, 매화나무 숲에는 큰 걸음으로 전진하는 형체가 있다.처음에 나는 그것이 살아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야 그것이 조각상임을 알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둘러보면 추도분(邹韬奋 중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기자)이 보이고, 정원에는 선배 대가들의 조각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수강생마다 모두 자기도 미래의 조각상이 되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 .. 더보기
물방울의 사랑: 나의 노신(鲁迅)문학원 꿈.(6); 赵凯 (三) 나는 인터넷에 들어가, 그 중학교 여자 동창생에게, '언약을 실현시켰다. 노신문학원에 왔는데, 전에 내가 편지로 너에게 말했지 않냐' 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벌써 그 일을 잊었다. 노신문학원, 나는 잊지 못한다! 사실, 전에 인터넷 여러 곳에 접속하여, 노신(鲁迅)으로 명명된 문학 마당을 검색해 보았다. 이곳은 신중국 초에 최고 지도자 모택동 주석의 배려로 대 작가 정령(丁玲) 등, 선배들이 창안하여, 중앙 문학 연구소에서 중국작가협회 문학 강습소에 이르기 까지, 계속 개혁 시기를 거쳐오다가 "노신문학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소련의 명예로운, 세계적 고리키문학원은 내가 소련 문학작품을 읽을 때 보니, 여러 차례 작가 소개 중에 고리키 문학원이 나왔다. 예를 들면 의 .. 더보기
물방울의 사랑: 나의 노신(鲁迅)문학원 꿈.(5); 赵凯 북경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모친이 갑자가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모친은 임종 전에, 마지막 힘을 다하여, 쉴 새 없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애썼다. 모친이 이미 말했던 한마디를 나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살아서, 눈물 젖은 밥이라도 꼭 삼켜라." 모친의 젊었을 때 흑백 사진을 보면, 하느님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들의 병고로 시달렸지만, 이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 모친의 미모였다. 소녀 때, 모친은 대단한 문학소녀였다. 그 시절, 국민당 장교가 모친에게 홀딱 반했다. 이른 봄, 추운 밤에, 소녀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갓 녹은 유빙들이 서로 부딪혀 포효하는 강물에 뛰어들었고, 달빛 속을 달려가, 부친의 품 안에 안겼다. 나의 일상생활은 네째형과 넷째 .. 더보기
물방울의 사랑: 나의 노신(鲁迅)문학원 꿈.(4); 赵凯 그해에 나는 노신문학원에 통신교육을 신청했다. 이 역시, 에서 읽은 학생 모집 정보를 보고 나서였다. 통신 교육원의 간행물을 정성껏 챙겨 놓으니 내 마음속으로, 노신문학원이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2004년 겨울, 부친은 눈송이 처럼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렇게 글을 썼다. 만년에 소뇌위축증으로 병상에 누웠던 부친은, 내가 산(山)처럼 의지했던 분이다. 부친은 아들들의 질병을 마주하고서는, 어찌해볼 방법이 없었지만 부친 자신의 업무를 할 때는 분명한 소리와 색갈이 있었다. 신중국(新中國 : 중화인민 공화국 설립 이후의 중국)에서, 부친은 조직의 파견 명령을 받고 요하(辽河) 양안을 두루 다니며, 여러 초중고교를 설립했고, 마지막으로 고향에 1968년에 초등학교부터.. 더보기
물방울의 사랑: 나의 노신(鲁迅)문학원 꿈.(3); 赵凯 (二) 중풍에 걸린 지 8년 후, 한바탕 천재지변이 있었고, 설상가상 대홍수가 나서 우리 집이 무너졌다. 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는데, 나 스스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친지들의 도움 덕분에 나는 살아났다. 막 폐허 앞에 돌아와, 모두들 집과 정원을 다시 지으려는데, 나는 하나도 힘을 쓸 수 없었다. 층층이 쌓인 진흙 속에서 파낸, 물에 오래 잠겨 썩어버린 책과 원고를 마주하자, 결국 나는 고집 세고, 건방졌던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내가 완전한 폐물이라는 것은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남아있는 것은 내키지 않는 몽상뿐이었다. 나는 내 분수를 모르고, 운명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내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