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일생의 6개 기막힌 장면(父亲一生的六个别致场景) -3 : 千岛
1971년 1월 22일. 31세. 꼭두새벽에, 그와 같은 방, 학교 진구는 짐을 꾸리느라 정신없었다. 외투를 입으려니 거치적 거려서, 그는 아예 벗어서, 행여 옷이 찢어져 구멍이라도 뚫릴까 겁내며, 조심조심 회백색 벽의 쇠못에 걸었다. 이 초록색 군복 외투는 그와 더불어 10년을 견뎌왔고, 그의 3년간 군대생활의 상징적 물건이라, 그는 극도로 아꼈다. 비록 이미 낡아빠져서, 서너 군데 헝겊 조각을 대고 기웠지만, 매년 겨울만 되면 그는 언제나 궤짝을 뒤집어 그 옷을 찾아 입었다. 맑은 날에는 햇볕을 충분히 쬐인 후, 껴입었다. 그것을 입으면 따뜻한 온기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은, 갑자기 마음속에 저르르 용맹한 기개가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전에 군인이었다는 생각이 미치자, 기분 좋기도 했고 동시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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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의 사랑: 나의 노신(鲁迅)문학원 꿈.(6); 赵凯
(三) 나는 인터넷에 들어가, 그 중학교 여자 동창생에게, '언약을 실현시켰다. 노신문학원에 왔는데, 전에 내가 편지로 너에게 말했지 않냐' 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벌써 그 일을 잊었다. 노신문학원, 나는 잊지 못한다! 사실, 전에 인터넷 여러 곳에 접속하여, 노신(鲁迅)으로 명명된 문학 마당을 검색해 보았다. 이곳은 신중국 초에 최고 지도자 모택동 주석의 배려로 대 작가 정령(丁玲) 등, 선배들이 창안하여, 중앙 문학 연구소에서 중국작가협회 문학 강습소에 이르기 까지, 계속 개혁 시기를 거쳐오다가 "노신문학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소련의 명예로운, 세계적 고리키문학원은 내가 소련 문학작품을 읽을 때 보니, 여러 차례 작가 소개 중에 고리키 문학원이 나왔다. 예를 들면 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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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의 사랑: 나의 노신(鲁迅)문학원 꿈.(5); 赵凯
북경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모친이 갑자가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모친은 임종 전에, 마지막 힘을 다하여, 쉴 새 없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애썼다. 모친이 이미 말했던 한마디를 나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살아서, 눈물 젖은 밥이라도 꼭 삼켜라." 모친의 젊었을 때 흑백 사진을 보면, 하느님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들의 병고로 시달렸지만, 이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 모친의 미모였다. 소녀 때, 모친은 대단한 문학소녀였다. 그 시절, 국민당 장교가 모친에게 홀딱 반했다. 이른 봄, 추운 밤에, 소녀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갓 녹은 유빙들이 서로 부딪혀 포효하는 강물에 뛰어들었고, 달빛 속을 달려가, 부친의 품 안에 안겼다. 나의 일상생활은 네째형과 넷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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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의 사랑: 나의 노신(鲁迅)문학원 꿈.(3); 赵凯
(二) 중풍에 걸린 지 8년 후, 한바탕 천재지변이 있었고, 설상가상 대홍수가 나서 우리 집이 무너졌다. 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는데, 나 스스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친지들의 도움 덕분에 나는 살아났다. 막 폐허 앞에 돌아와, 모두들 집과 정원을 다시 지으려는데, 나는 하나도 힘을 쓸 수 없었다. 층층이 쌓인 진흙 속에서 파낸, 물에 오래 잠겨 썩어버린 책과 원고를 마주하자, 결국 나는 고집 세고, 건방졌던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내가 완전한 폐물이라는 것은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남아있는 것은 내키지 않는 몽상뿐이었다. 나는 내 분수를 모르고, 운명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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