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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부친 일생의 6개 기막힌 장면(父亲一生的六个别致场景) - 11 (끝) : 千岛 2016년 6월 21일. 76세. (후반부) 큰누나의 몸을 보니 아직 정정해서, 그는 속으로 기뻤다. 마누라가 침대를 정리하고, 큰 누나에게 누워서 한잠 주무시라고 했다. 나이가 많아지면, 흔들리며 오는 길을 견디지 못하니, 적당히 쉬면서 원기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는 부엌으로 가, 앞치마를 걸쳤다. 우선 냉장고를 열고 냉동실에서 춘순(春笋: 봄 죽순)을 꺼냈다. 큰누나는 기름에 푹 익힌 춘순 요리를 좋아했다. 그는 준비된 재료를 급속 해동시켜서, 부드럽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다. 이 춘순(봄 죽순)은 그가 산에 올라가 캐어 온 것이다. 매년 봄이 되면, 밤 비가 자주 내리는데, 다음날 새벽, 그는 언제나 마누라를 30년 된 바다 사자표 28형 자전거에 태우고 강 맞은편 기슭, 산속으로 춘순을 캐러 갔다.. 더보기
부친 일생의 6개 기막힌 장면(父亲一生的六个别致场景) - 10 : 千岛 2016년ㅇ6월 21일. 76세. (중반부) ​ 그는 자기도 모르게 지난 일에 대한 회상에 잠겼다. 그는 두 살 때, 모친에게 떼를 써서 술을 얻어 먹던 그 한여름 날 오후가 떠올랐다. 그는 또 18세 때, 학교를 포기하고, 군대에 갈 때, 선생님과 학생들이 환송해 주던 그 초겨울 이침이 떠올랐다. 그는 31세 때, 공반 교사가 되어 급히 산길을 달려 집으로 와서 아내와 아들딸을 보던 그날, 한겨울 오전이 떠올랐다. 그는 47세 때, 부친과 함께 술을 마시고 산보하던 개천가, 가을 날 밤의 풍경이 떠올랐다. 그는 60세 때, 막 출생한 손자가 오줌을 싸는 바람에 옷이 젖었던 그날 북경의 여름이 떠올랐다. 세월은 정말 매정한 칼 같아서, 그를 손자 또래부터 수십 년 세월을 갈아서 할아버지 연배로 만들었다... 더보기
부친 일생의 6개 기막힌 장면(父亲一生的六个别致场景) - 9 : 千岛 2016년 6월 21일 ​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그가 퇴직 후, 10여 년 동안 쌓아온 습관이다. 그는 보통 저녁밥을 먹은 후, 언제나 마누라와 함께 강변으로 걸으러 갔다. 사람이 늙으면, 큰 운동량은 견뎌내지 못하는데, 산보는 바로 이럴 때 필요불가결한 건강 유지 수단이다. 속담에도, "식사 후 100보를 걸으면, 99세까지 산다고 하지 않던가?" 그는 건강하게 살기를 바랐다. 그 이유는 첫째, 자기 신체가 고통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고, 둘째, 자녀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강을 따라 한 바퀴 걷는 데는 두 시간 남짓 걸리고, 보통 8시 전에 집으로 돌아온다. 마누라는 벼락이 떨어져도 움직이지 않고, TV 앞에 앉아서 연속극을 본다. 늙은이가 드라마를 보면 생각이 활성화되어, 치매에.. 더보기
부친 일생의 6개 기막힌 장면(父亲一生的六个别致场景) - 8: 千岛 2000년 6월 19일. 60세 (후반부) ​ 그는 집 주변도 둘러보고, 진정한 아들네 집을 자세하게 관찰했다. 작년 10월, 부동산 개발 업자가 열쇠를 넘겨주었는데, 해를 넘기기 전에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도, 계속 입주를 미루어 왔다. 아들 내외가 의논하기를, 아이가 출생하기까지 기다렸다가, 아기와 함께 새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더욱 의미 있겠다고,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 나이가 들면서, 그는 운명을 믿기 시작했다. 그는 이 집 소재지의 지명에 "용(龙)"자가 들어가고, 구역 명에도 역시 "용"자가 들어갔으며, 더구나 건설사 판매원의 이름과 인테리어 설계자 이름에도 "용"자가 들어갔을 뿐 아니라, 손자의 출생한 해도 "용"해라는 것을 주목했다. 자연스럽게 여섯 개의 "용"자가 합해졌으니, 이것이야.. 더보기
부친 일생의 6개 기막힌 장면(父亲一生的六个别致场景) - 7: 千岛 매미가 맴맴맴맴 요란스럽게 울어댄다. 수도 북경에 있지만 꼭 고향 집에 있는 것 같다. 대자연의 소리는 그의 귓가를 에워쌌다. 이건 그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문을 나서면 산이 보이고, 문을 열면 물이 보였다. 그는 항상 자기 일생은 언제나 산수(山水)를 떠나 본 적이 없다고 농담을 했는데 그건 일생동안 자연 속에 노닐었다는 것과 같다. 나이가 지긋해지니 그는 더욱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요즘 유행하는 퇴직하고 나서, 국내 나아가 외국 여러 곳을 다니며 구경하는 소위 여행에 대하여, 그는 대단히 배척했다. 외면의 세계가 아무리 커도 자기를 길러준 땅은 그의 마음속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손자가 태어나서, 아들 내외가 급히 도음을 청하지만 않았어도, 그는 이렇게 고향을 떠나 멀리 오지 않았.. 더보기
부친 일생의 6개 기막힌 장면(父亲一生的六个别致场景) - 6: 千岛 1987년 9월 10일. 47세 (후반부) 퇴근 시간이 되었다. 그는 부친을 모시고 집으로 왔다. 집 건물 문을 들어와 통로를 따라 들어서면 바로 그의 집 마당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긴 후, 10여 년 동안을 전 가족은 그를 따라 돌아다니며 살았다. 그가 어느 학교로 발령 나면, 집이 그리로 이사 갔다. 전에는 계단 통에도 살았고, 간이 주택에서도 살았었다. 여기 이사 오기 전에는 매일같이 학교 식당에서 가져온 밥과 반찬을 먹었는데, 지금은 단층집에 살면서 바깥으로 통하는 방도 있고 독립된 부엌도 있다. 집 문을 들어서자, 식탁 위에 음식그릇과 젓가락이 벌써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내는 그의 생활 패턴에 익숙해져 있는데, 그는 출장을 가지 않을 때는 때가 되면, 집에 와서 점심과 저녁을 .. 더보기
부친 일생의 6개 기막힌 장면(父亲一生的六个别致场景) -5 : 千岛 1987년 9월 10일. 47세. 오늘은 제3회 스승의 날이다. 다른 동료들 모두 각 학교 일선 교직원들 위문을 갔고, 오직 그 혼자만 자리를 지켰다. 그는 한 뭉치의 재무보고서 더미를 들여다보며, 그가 여러 해 가지고 다니는 주판을, 재깍재깍 소리 내며, 오른쪽 손가락으로 빠르게 튕겨댔다.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가 휘휘 돌아가며, 약한 바람을 일으켰고, 거기 매달아 놓은 종이 조각이 펄럭거렸다. 그는 실내 정적을 깨는 이 두 가지 소리를 편안히 즐겼다. 그에게는 이소리가 마치 절묘한 교향곡 소리같이 느껴졌다. 현재 그는 구(区) 교육청 회계 책임자다. 한 칸의 방과 여섯 개의 사무용 책상, 전화기 한대, 몇 개의 서류함 정도, 설비를 갖추어 빈약해 보이긴 했지만, 담당하고 있는 책무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더보기
부친 일생의 6개 기막힌 장면(父亲一生的六个别致场景) -4 : 千岛 1971년 1월 22일. 31세 (아랫부분) 그는 양웨이부(羊尾埠) 부두에서 배를 내렸다. 그는 힘껏 군복 외투를 털었는데, 1월의 차기운 한기를 털어내고, 심신의 위풍을 드러내고 싶어서였다. 그는 치핑산(棋坪山)을 바라보았다. 명조(明朝) 개국공신 류백원이 남긴 절벽에 새긴 글씨 "석벽(石壁)" 두 글자가 분명하게 보였다. 그는 매번 이곳 부두에 올 때마다, 항상 이렇게 잠깐 응시하며, 이 고아하고 힘 있는 글자를 감상했다. 그는 파란만장했던 지난 날을 회고하며, 오늘 새롭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니, 더욱 각별해 보였다. 오늘부터 그는 공출미를 먹을 수 있다. 아직도 얼떨떨한 가운데, 그는 가슴속에 백만 대병이 진을 선 듯 든든했고, '랄랄랄라' 마음속으로 진작부터 노래가 나왔다. 이십 리나 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