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1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그가 퇴직 후, 10여 년 동안 쌓아온 습관이다.
그는 보통 저녁밥을 먹은 후, 언제나 마누라와 함께 강변으로 걸으러 갔다. 사람이 늙으면, 큰 운동량은 견뎌내지 못하는데, 산보는 바로 이럴 때 필요불가결한 건강 유지 수단이다.
속담에도, "식사 후 100보를 걸으면, 99세까지 산다고 하지 않던가?"
그는 건강하게 살기를 바랐다. 그 이유는 첫째, 자기 신체가 고통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고, 둘째, 자녀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강을 따라 한 바퀴 걷는 데는 두 시간 남짓 걸리고, 보통 8시 전에 집으로 돌아온다. 마누라는 벼락이 떨어져도 움직이지 않고, TV 앞에 앉아서 연속극을 본다. 늙은이가 드라마를 보면 생각이 활성화되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다음부터, 마누라는 무슨 성지라도 받은 듯, 지시 대로 확실히 집행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마누라를 따라 같이 TV를 보았다. 하지만, 몇 분을 참지 못하고, 바로 의자에 기대어 우레같이 코 고는 소리를 낸다. 마누라는 그의 이런 우렁찬 반주 소리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서둘러 그를 내쫓아 자러 가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9시 전에 잠에 빠지게 된다.
마누라는 그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그는 새벽 6시 전후에 기상하여 바로 길가, 간이음식점에 가서 아침식사를 해결한다. 그러고 나서 새벽 시장에 가서 얼마만큼의 계절 채소와 과일을 산다. 오전에는 보통 집에서 소소한 집안일을 하고, 신문을 보는데, 오늘도 역시 예외는 없다.
점심을 먹고 나서, 그는 거실 벽에 걸려있는 괘종시계를 쳐다본다. 곧 11시 반이 되니, 나가야 한다. 그는 마누라에게 알리고, 우산을 집어 들고 아래층으로 간다. 매일, 지역 공동체 노인 활동센터에 가서 마작을 한다. 이것은 그가 근년 들어 제일 열중하는, 끈질기게 지켜나가려 하는 오락 활동인데 처음에는 마누라가 결사반대했다. 왜냐하면 마작실은 금연을 하게 할 수가 없어, 언제나 담배연기가 자욱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간접흡연도 몸에 매우 나쁘다고 하고, 그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그도 마누라가 말리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금연하는 마작판에 가서 마작을 하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배짱이 맞는 늙다리 친구들과 떠들고 노는 즐거움이 없어질 것 아닌가! 그는 마누라에게 말했다. "신나게 놀 수 있다면, 간접흡연으로 폐가 좀 상해도 되는 게 아냐?" 마는라는 그의 고견을 말없이 받아들였고, 그다음부터는 더 이상 그의 마작 하는 것( 砌长城:직역: 만리장성을 쌓다로 표현)에 참견하지 않았다.
비가 적지 않게 내렸다. 그는 옷이 젖지 않도록 겨드랑이를 꼭 붙였다. 시 교육국 초대소를 지나자 그는 참지 못하고, 걸음을 천천히 늦췄다. 대문 입구에 두 구루의 오동나무가 눈에 뛰었는데 그때는 작은 나무였지만 지금은 벌써 하늘 높이 솟도록 자랐다. 이곳은 그가 퇴직하기 전에 시에 출장 올 때면 상주하던 곳이다.
과거에는 한 번도, 어느 날엔가 자기집이 시(市) 정부 소재지에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17도(베이징은 16.5도)에 있는 명예로운 도시 신안장(新安江) ----- 1957년 모택동 주석이 몰래 신안강 수력 발전소 건설 현장을 방문했을 때, 감개무량하여, "루산(廬山)은 너무나 높고, 북대하(北戴河)는 너무나 조류가 세니, 여기가 딱 알맞다"라고 했다. 성 정부는 이 때문에 여기에 중앙 요양소를 짓기로 의견을 냈지만, 당시 국가 재정이 곤란하여,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다.
그는 어떤 환경에도 적응하고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퇴직한 후, 일하던 직장이 있는 작은 도시에서 노후를 편안히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누라는 그럴 생각이 없었고, 큰 곳에 사는 것이 작은 지방에서 사는 것보다 언제나 조건이 낫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늙으면 여러 가지 병이 많아지는데, 작은 도시에는 큰 병원이 없어 진짜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속만 타지 않겠는가? 마누라는 확실히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다. 그는 현재 혈압과 혈당이 모두 높아서, 검사하고 약 타먹는 것이 일상의 일이 되었다. 이같은 보통 가정에서 적지 않게 멀리 왔다 갔다 하느라 지쳐 떨어질 노고를 정말로 덜어주었다.
그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가 늦게 도착하면 자리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제가 단오절인데, 아들네가 수도에서 살기로 결정하고, 처남이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북경에서 직장을 잡았으니 설을 쇠는 것 말고도, 보통 명절날도 같은 도시에 사는 딸과 사위도 집에 올 수 있어서, 그들 두 사람과 같이 만났다. 딸, 사위가 오면 몇 가지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야 해서, 어제는 저녁을 준비하느라, 마작하러 갈 틈을 낼 수 없었다. 마작은 하루라도 안 하면, 손도 근질근질하고 마음도 근질근질했다.
오늘은 그의 75세 생일이자, 때마침 아버지 날이기도 했다. 본래 서양에서 들어온 기념일을 매우 하찮게 여기던 그였지만, 요즘 몇 해 동안은 유독 아버지 날 만큼은 개념이 있었다. 매년 이날이 되면, 딸이 문안을 하니 그는 갑자기 부자지간이 되었다는 명예심이 생겼다.
일생을 바쁘게 살다가, 이제 늙어지니, 누가 부모를 기쁘게 해주러고 부모 곁을 지켜주겠는가? 이들 딸이 그럴 리 없다!
만약 자기가 살아온 인생길을 수정할 수가 있다면, 그의 최대의 바람은 바로 일만 하느라 소모했던 시간을 일정 부분 쪼개어 집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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