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공포감을 품고 있었는지, 기쁜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하여간 우리의 기다림은 천년 같았다.
보석이 번쩍이고, 향수냄새가 코를 찌르는 서양 여자는 손을 다친 청년을 대동하고 결국 우리 식구들 앞에 섰다.
우리 옆에서는 맹인 영감이 대나무 막대기를 휘둘러 사람을 문 여자 아이를 때리려 하고 있었다.
여자 아이는 기민하게 자기 할아버지와 요리조리 숨바꼭질 하면서, 맹인영감의 대나무 막대기가 매번 언제나 땅바닥이나 담벼락을 때리게 했다.
"이런 굶어 죽을 팔자로 태어난 것아!" 맹인 영감이 개탄했다.
나는 탐욕스럽게 서양 여자의 향기를 맡았다.
홰나무 향기 속에 장미 냄새가 감지되었고, 또 장미 냄새 속에 은은한 국화향이 났다. 제일 나를 도취하게 한 것은 이런 향기 속에 섞여있는 노린내였다. 나는 약하게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나는 콧구멍을 최대로 벌리고 빨아들였다.
가릴 손수건이 없어졌으니, 그녀의 입이 완전히 드러났다.
이건 상관라이디 같은 넓은 입, 상관 자오디 같은 두꺼운 입술이었다.
두꺼운 입술에는 빨간 루즈가 칠해져 있었다.
그녀의 코는 우리 상관 집 딸들의 코와 공통된 곳이 있었는데, 그건 코가 높이 솟았다는 점이다.
다른 것은 상관집안 딸들은 코가 뾰족하고 작은 마늘 같은 형상이어서 멍청하고 귀여워 보이는데 반해, 이 서양 여인의 코는 갈고리처럼 굽어져서 그녀의 얼굴이 육식을 하는 맹금류처럼 보이게 했다.
또 그녀의 이마는 매우 짧아서, 그녀가 무언가 쳐다볼 때마다, 이마에 깊은 주름이 나타났다.
나는 모두들 서양 여자를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나같이 세밀한 관찰을 한 사람은 없으며, 어느 누구도 나처럼 많은 걸 알게 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의 시선은 그녀 몸 위의 두꺼운 옷을 뚫고, 그녀의 두 개의 내 모친만 한 크기의 유방도 보았다. 그것들의 아름다움은 나를 배고픔과 추위까지 거의 잊게 해 주었다.
"왜 아이를 팔려는 겁니까?" 청년이 손수건으로 싸맨 손을 쳐들어, 볏짚을 목에 꽂은 누나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모친은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과연 이런 우매한 질문에 대답할 가치가 있을까?
청년은 고개를 돌려 서양 여자에게 뭐라고 쏼라쏼라 했다.
서양 여자는 모친이 안고 있는, 상관라이디의 여자 아기가 휘감고 있는 검은 담비가죽 외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한 손을 뻗어 털을 만져보고, 이어서 바로 그 여자아기의 표범 같고, 맘에 들어하지 않는 어두운 시선을 보았다.
그녀는 여자아기의 시선을 피했다.
나는 모친이 상관라이디의 아이를 그 서양여자에게 팔아버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한 푼도 받지 않고 상관라이디의 검은 가죽 외투까지 그 여자에 세 선물할 수 있다.
나는 이 여자아기를 증오했다. 그 애는 내가 먹어야 할 유즙을 나누어 먹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여덟째 누나 상관위니도 나의 유즙을 나눠 먹을 자격이 없는 판에 뭣 때문에 그 애까지 먹는 건가?!
상관 라이디의 두 개의 젖은 한가하게 놀려서 뭐 하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가오미 동북향의 한 기와집 안에서, 샤우에량은 상관라이디의 유두를 뱉더니, 퉤퉤 피고름을 뱉고 나서, 물로 입을 헹궜다.
그가 말했다. "이걸로 됐어. 젖이 괴어있다가 안에서 곪았나 봐."
라이디는 만면에 눈물범벅이 되어 말했다. "여보,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개에게 쫏기는 토끼처럼 살아야 돼요?"
샤우에량은 담배 늘 꺼내 피우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삐쩍 마른 얼굴에 흉악한 표정이 떠오르더니, 말했다.
"씨발, 젖이 나오면 그게 애 엄마인 거야. 먼저 일본에 투항부터 하자. 좋은 게 좋은 거야. 이제 어 더 이상 사람들을 끌어낼 수도 없어."
서양 여자는 우리 누나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먼저 목에 볏짚을 꽂은 다섯째 누나, 여섯째 누나를 보았고, 다시 볏짚을 꽂지 않은 넷째, 일곱째, 여덟째 누나를 보았다. 그들은 쓰마 집안의 꼬마 깡패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나에 대해서는 상당히 흥미를 표시했다. 나는 내가 우세했던 것은 내 머리 위의 부드러운 노란 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누나들을 관찰하는 방식은 매우 특이했다.
그 청년은 이런 미리 짜인 명령을 누나들에게 내렸다.
"머리 숙여. 허리 굽혀. 다리로 차. 두 손을 한데 모아. 어깨를 앞뒤로 흔들어. 입을 크게 벌리고 '아' 하고 소리쳐. 웃어. 몇 발작 걸어. 몇 발작 뛰어."
누나들은 온순하게 청년의 명령에 따랐다.
서양여자가 집중해서 관찰했다.
그녀는 어떤 때는 고개를 끄떡였고, 어떤 때는 고개를 저었다.
끝에 가서 그녀는 일곱째 누나를 가리켰고, 그 청년에 몇 마디 했다.
청년이 모친에게 말했다. ---- 그는 서양 여자를 가리키며 ---- 이분은 로스토프 백작 부인이요. 그녀는 대 자선가인데, 예쁜 중국 여자애를 데려다 양녀로 키우려고 하는 거요. 그녀가 당신 집 이 애를 맘에 들어하네요. 이건 당신네 집 행운이요."
모친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는 안고 있던 상관라이디의 여자아기를 넷째 누나에게 맡기고, 품을 비우더니 일곱째 누나의 머리를 껴안았다.
"치우디, 착한 아이. 너에게 복이 굴러왔구나...."
모친의 눈물이 어지러이 일곱째 누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일곱째 누나가 흐느껴 울며 말했다. "엄마, 나 저 사람들 따라가기 싫어요. 저 아줌마 몸에서 나는 냄새가 맡기 싫어...."
모친이 말했다. "바보같이...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냄새야."
청년이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됐어요. 아주머니. 돈이나 흥정합시다."
모친이 말했다. "선생님, 기왕 저분이.... 부인이 양녀로 삼는다면, 아이한테는 행복한 곳으로 가는 셈인데, 우린 돈 필요 없어요.... 그저 우리 애를 잘 대해주시기만 해도...."
청년이 모친의 말을 서양 여자가 알아듣도록 통역했다.
그녀가 생경한 중국어로 말했다. "안 돼요. 돈은 꼭 주어야 해요."
모친이 말했다. "선생님, 부인에게 물어 봐 주세요. 혹시 한 명 더 필요하지는 않은지? 그 애들 자매가 서로 의지하게요."
청년이 모친의 말을 통역했다.
로스토프 백작 부인은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청년은 열몇 장의 붉은 지폐를 억지로 모친에게 주었다.
그런 다음 말 옆에 서있던 마부를 손짓해 불렀다.
마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청년에게 꾸뻑 머리를 숙였다.
마부는 일곱째 누나를 안고 마차 옆으로 갔다.
이때가 돼서야, 그녀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가느다란 한쪽 손을 내밀었다.
누나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울자, 쓰마 집 불쌍한 녀석도 입을 벌리고 '왁'소리 내어 울더니, 잠깐 멈췄다가 다시 '왁' 울고, 다시 잠깐 멈추고.
마부는 일곱째 누나를 마차에 집어넣었다. 그 서양 여자도 따라서 마차에 들어갔다.
청년이 곧 마차에 오르려 할 때, 모친이 쫓아가 그의 팔을 잡고, 다급히 물었다. "선생님, 부인은 어디 사세요?"
청년이 냉랭하게 대답했다. "하얼빈."
*참고 : 이야기의 무대인 산동성 동북향에서 현재 흑룡강성의 성도인 하얼빈은 대단히 먼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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