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원래 집 문을 들어서면 상관링디와 상관뉘스의 굶어 죽은 시체를 발견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에 벌어진 정경은 우리의 예상과 판이하게 달랐다.
정원 안이 보통 왁자지껄하는 게 아니었다.
머리를 새로 박박 깎은 남자 둘이 안채 벽 앞에 앉아있아서,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옷을 꿰매고 있었다.
그들의 바늘에 실을 꿰는 동작은 대단히 능숙했다.
또 다른 두 명이 옷을 꿰매는 사람 옆에 바싹 붙어 앉아서, 똑같이 새로 번쩍번쩍하게 깎은 머리를 하고, 역시 열심히 까만 소총을 닦고 있었다.
그밖에 또 두 사람이 오동나무 아래에서, 한 명은 서서 손에 한 자루의 서슬이 시퍼런 대검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의자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목에는 하얀 천을 두른 채 비누거품 가득한 머리를 박박 문지르고 있었지.
서 있던 사람이 다리를 구부리고 손에 들고 있는 대검을 비지에 반복해서 쓱쓱 몇 번 문지르더니, 한 손으로 비누거품 투성이인 머리를 꾹 누르고, 한 손에는 대검을 들었는데, 칼을 댈 위치를 가늠해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대검을 비누거품 갈라진 한가운데 대고, 엉덩이를 쑥 내밀더니 팔뚝을 아래로 밀었다. 칼 밑으로 온통 축축한 머리카락이 쓱 베어지더니 하얀 두피가 번뜩였다.
또 다른 한 명이 우리 집, 땅콩을 쌓아두었던 는 곳에서 두 손으로 자루가 긴 큰 도끼를 잡고, 두 다리를 벌리고, 느릅나무 엉킨 뿌리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잘 팬 커다란 장작 무더기가 있었다.
그는 도끼를 높이 쳐들고, 번쩍이는 예리한 무기를 쳐들어 잠깐 공중에 머물렀다가 힘껏 아래로 내리쳤다.
도끼머리가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그의 입에서 '얍'하는 소리가 났고, 도끼날은 나무뿌리 속으로 깊이 박혔다.
그는 한 발로 나무뿌리를 밟고, 두 손으로 도낏자루를 흔들어 힘들게 도끼날을 빼냈다.
그는 이번에는 두발 뒤로 물러나, 자세를 바로하 더니, 손바닥에 침을 몇 번 뱉고는 다시 한차례 도끼를 치켜들고 느릎나무뿌리를 소리 나게 빠갰다.
쪼개진 장작 한 토막이 탄피처럼 날아서, 상관펀디의 가슴에 맞았다.
다섯째 누나는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옷을 꿰매던 사람, 총을 닦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머리를 깎던 사람과 장작을 패던 사람도 고개를 돌렸다.
머리를 깎이던 사람이 고집스럽게 머리를 들려고 하자, 곧바로 머리 깎는 사람이 손으로 내리눌렀다.
"움직이지 마." 그가 말했다.
장작 패던 사람이 말했다. "거지가 왔네. 장형님, 장형님. 거지가 왔으니 이리 나와 보세요!"
흰 앞치마를 두르고, 회색 모자를 쓴 만면에 주름살이 가득한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우리 집 안채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옷소매를 걷어올렸고, 팔에 밀가루가 뭍었는데, 선량하게 말했다.
"아줌마. 다른 집으로 가봐요. 우린 사병이 된 사람들 먹을 정량 밖에 없어요. 이 밥을 아껴서 당신들을 도와줄 수는 없어요."
모친이 냉랭하게 말했다. "여긴 내 집이오!"
정원 안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졌다.
머리에 비누 거품을 뒤집어쓰고 있던 사람이 급히 일어나 옷소매를 올리고 더러운 물로 지저분했던 얼굴을 닦더니 우리를 향해 '왁왁' 괴성을 질렀다.
그는 바로 손씨네 집 큰 벙어리였다.
벙어리가 우리 앞으로 달려와, 입으로 '왁왁'거리며, 두 손으로 뭔가 그림 그리듯 손짓하며,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주름살이 거칠게 난 그의 얼굴을 곤혹스럽게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벙어리는 황갈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커다란 아래턱을 연달아 움직였다. 그는 돌아서더니 동쪽 사랑채로 달려가 이 빠진 청자 사발과 새 그림을 들고 와서 우리에게 과시했다.
머리를 깎아주던 사람이 대검을 들고 우리 앞으로 오더니 벙어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쑨부옌, 너 이 사람들 알아?"
벙어리는 청자 사발을 놓고, 장작 토막을 줏어들더니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여기저기 변이 빠져 불완전한 큰 글자를 삐뚤삐뚤하게 한 줄 썼다.
"이 사람은 내 장모님입니다."
"알고 보니 주인아주머니께서 돌아오셨군요." 머리를 깎아주던 사람이 공손히 말했다.
"우리는 철로 폭파대대 1소대 5분대, 나는 욍(王) 분대장입니다.
우리 대대는 이곳에 와서 휴식 정비 중입니다. 아주머니 집을 무단 점용해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아주머니 사위는 우리 부대 정치위원이 쑨부옌(孙不言: 말을 안 하는 손 씨라는 뜻, 벙어리를 높이 말함)이라고 이름 지어줘서 모두 그렇게들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훌륭한 전사(战士)입니다. 전투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특, 용맹하여 우리가 배울만한 모범입니다.
아주머니, 우리가 바로 안채 방을 치우겠습니다.
야, 라오뤼, 샤오두, 차우따니우, 쑨부옌, 친샤오치 모두 빨리 짐을 옮기고, 아주머니께 온돌을 비워드려라."
사병들은 하던 일을 놔두고 안채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반듯반듯하게 포개진 이불을 단단히 매어 등에 지고, 각반을 찼다. 그리고 천중창 신발을 신고, 어깨를 구부려 총을 메고 나서, 목에 지뢰를 걸고, 질서 정연하게 정원에 집합했다.
분대장이 모친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방으로 들어가세요."
"모두 여기서 기다려라. 내가 정치위원에게 가서 지시받고 오겠다."
사병들은 모두 열을 지어 기다렸다. 지금은 쑨부옌이라고 부르는 큰 벙어리 역시 꿋꿋하게 서있었는데, 마치 소나무 같았다.
분대장은 총을 들고 뛰어갔다.
우리는 안채 방으로 들어갔다. 솥에는 두 개의 삿자리와 대나무로 만든 찜통이 들어 있었고, 아궁이에는 장작이 타고 있었다. 불길이 맹렬해서, 솥 속에서 물 끓는 소리가 요란했고 증기가 찜통 틈에서 뿜어져 나왔다.
우리는 만토우(馒头: 소가 들어있지 않은 찐빵) 향기를 맡았다.
취사병은 미안한 듯이 모친에게 고개를 숙였는데, 그는 매우 자상했다.
그는 아궁이에 장작을 넣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허락도 받지 않고 아주머니네 부뚜막을 개조했어요."
그는 부뚜막 아래쪽으로 연결된 깊은 고랑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십몇개의 풍구 갖다 놔도 이 고랑만 못할걸요."
불꽃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타올라서, 솥 밑바닥이 녹아내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얼굴색이 불그레한 상관링디가 문턱에 앉아서 눈을 가늘게 뜨고 찜통 틈에서 뭉게뭉게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를 주시하고 있었다.
수증기가 모락모락 날아 흩어지며 순식간여 여러 모양으로 변하면서 볼수록 보기 좋았다.
"링디!"
모친이 그녀가 어떤 상태인가 시험해 보려고 불렀다.
"언니, 셋째 언니." 다섯째 누나, 여섯째 누나가 불렀다.
상관링디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얼핏 한번 보았는데, 마치 우리와 전혀 모르는 사람 같기도 하고, 우리와 그녀가 서로 떨어진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모친은 깨끗하게 치워진 방을 보고 곳곳이 다 어색해서 안절부절하다가, 우리를 데리고 다시 정원으로 나왔다.
벙어리는 대열 한가운데서 우리를 보고 놀리느라 귀신 얼굴을 흉내 내었다.
쓰마 집안 꼬마 녀석은 대담하게 단단하게 각반을 묶은 그들의 다리를 만져보았다.
분대장이 한 안경을 쓴 중년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가 말했다. "아주머니, 이분이 우리 장(蒋) 정치위원이십니다."
장 정치위원은 희고 깨끗한 얼굴에, 입 위에 수염이 없는 보통 키의 남자였다.
그는 허리에 폭이 넓은 가죽 혁대를 매고 있었다.
앞가슴 주머니에는 만년필이 꽂혀있었다.
그는 예의 바르게 우리에게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하더니, 허리 뒤에 있는 소가죽 주머니에서 알록달록한 것을 한 줌 꺼냈다.
그가 말했다. "꼬마 친구들 사탕 먹어봐."
그는 손에 쥔 사탕을 우리들에게 똑같이 나눠주었다.
담비가죽 외투에 싸여있는 여자아기에게도 사탕을 두 개 줘서 모친이 대신 받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사탕 맛을 보았다.
정치위원이 말했다. "아주머니, 동의해 주신다면, 이 분대에서 동쪽 서쪽 사랑채를 빌려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친은 무표정히 고개를 끄떡였다.
정치위원은 옷소매를 걷고 손목시계를 보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
"장 씨, 만토우 다 쪘어?"
장 씨가 달려 나와 말했다. "다 쪘습니다."
정치위원이 말했다. "너는 아이들이 실컷 먹도록 배식해라. 내가 올 때, 사무장에게 말해서 부족분만큼 채워주라 하겠다."
장 씨는 연거푸 대답했다.
정치위원이 모친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우리 대대장이 뵙고 싶다는데, 나하고 같이 가시죠."
모친이 품에 안고 있던 여자아기를 다섯째 누나에게 넘겨주고 가려고 하자 정치위원이 한 손을 내뻗으며 말했다. "안 돼요. 그 애도 안고 가요."
우리는 정치위원을 따라 ---- 사실은 모친이 정치위원을 따라 간 거지만 ---- 내가 모친의 등에 업혀있고, 여자아기가 모친의 품 안에 있었으니까 ---- 골목을 빠져나가, 거리를 통과해서 복생당 대문 입구에 도착했다.
두 명의 총을 든 병사가 근엄하게 발꿈치를 붙이고 서 있다가, 왼손은 총을 짚고, 오른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더니 시퍼런 총검 날 위에 대면서, 우리들에게 총을 든 자세의 목례를 했다
우리는 작은 골목을 하나하나 통과하여 대청까지 들어갔다.
대청 정 중앙에는 자색 팔각 교자식탁이 놓여있었는데, 식탁 위에는 열기가 솟구치는 큰 접시가 두 개 있었다.
한 접시에는 꿩, 한 접시에는 산토끼였다.
그밖에 소쿠리가 하나 있었는데, 어찌 흰지 푸른빛이 나도는 만토우가 담겨 있었다.
한 구레나룻 남자가 웃으며 영접하는 말을 했다. "환영합니다.."
정치위원이 말했다. "아주머니, 이분이 루(鲁) 대대장이십니다."
루 대대장이 말했다. " 아주머니께서도 성이 루(鲁)씨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오백 년 전에는 우린 한집안이었네요."
모친이 말했다. "대장님, 우리가 무슨 잘 못 한 게 있습니까?"
루대대장이 어리둥절해하며, 명랑하게 웃다가, 웃음을 그치고 말했다.
"오해십니다. 오시라고 청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나는 아주머니의 큰 사위, 샤우에량과 십 년 전부터 같이 술잔을 나누던 친구입니다. 아주머니께서 돌아오신 걸 알고 일부러 술을 준비해 대접하려고 모신 겁니다."
모친이 말했다. "그 사람은 내 사위가 아니에요."
정치 위원이 말했다. "구태여 숨길게 뭐 있습니까? 품에 안고 있는 애가 샤우에량의 딸 아닌가요?"
모친이 말했다. "얘는 내 손녀예요."
루 대대장이 말했다. "먼저 식사부터 하시죠. 내가 알기로는 여러분들은 분명 배가 고프실 겁니다."
모친이 말했다. "대장님, 우리 갈게요."
루 대대장이 말했다. "천천히 가세요. 샤우에량이 나에게 소식을 보냈는데, 자기 딸을 기르는 걸 도와달라 했어요. 그도 아주머니 생활이 곤궁하다는 걸 알아요. 샤오 탕(小唐)!"
한 아름다운 여자 병사가 문밖에서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루 대대장이 말했다. "아주머니를 도와 아이를 좀 안고 있어. 식사하시도록."
여 병사가 모친 앞으로 와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뻗었다.
모친은 결연히 말했다. "얘는 샤우에량의 딸이 아니에요. 얘는 내 손녀예요."
우리는 작은 골목을 하나하나 통과해서, 큰 거리를 지나, 동네 골목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부터, 샤오 탕이라고 부르던 예쁜 여자 병사가 끊임없이 우리 집으로 식품과 의복을 가져왔다.
그녀가 가져온 식품 중에는 철통에 들어있는 작은 개, 작은 고양이, 작은 호랑이 형상의 비스킷도 있었고, 유리병에 담은 하얀색 가루우유도 있었고, 항아리에 담긴 투명한 꿀도 있었다.
그녀가 가져온 의복 중에는 비단을 꿰매 만든 레이스가 달린 솜 저고리, 솜바지가 있었고, 토끼 가죽으로 된 두 귀가 높게솟은 솜 모자도 있었다.
"이 물건들은" 그녀가 말했다. "모두 루 대대장과 장 정치위원이 애한테 선물 보낸 거예요."
그녀는 모친 품에 안긴 아기를 가리키며 말했다."당연히 이 동생이 먹어도 돼요."
그녀는 이번에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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