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에 가서 섣달 초파일 죽을 먹고 돌아오는데, 배고픈 느낌은 훨씬 심해졌다.
사람들은 벌판, 작은 길 옆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매장할 힘도 없었고, 심지어 가서 그들이 누구인가 들여다볼 힘도 없었다.
하지만 환씨 셋째 아저씨의 시신만은 예외였다.
제일 위급한 상황에서, 평소 언제나 궂은일에 사람을 모으던, 이 사람이 자기 옷을 벗어 불을 붙여서 그 불빛과 고함으로 우리들을 얼어 죽지 않고 정신 차리도록 깨우쳐주지 않았던가?!
생명을 구해 준 은혜를 잊으면 안 된다.
모친은 사람들을 이끌고, 이 장작깨비같이 삐쩍 마른 영감을 길기로 끌어다 푸석한 흙에 매장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새의 신이 검은 담비 가죽 외투로 둘둘 감은 보따리를 안고, 정원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모친은 손으로 문틀을 부여잡고, 거의 쓰러질 뻔했다.
셋째 누나가 다가와 검은 담비가죽 보따리를 모친에게 넘겨주었다.
모친이 말했다. "이게 뭐냐?"
셋째 누나가 이때는 비교적 순수한 사람의 목소리로 말했다. "아기예요."
모친이 거의 알고 있다는 듯 물었다. "누구의?"
셋째 누나가 말했다. "뻔하지, 누구 애겠어요?"
상관라이디의 검은 담비가죽 외투니까, 당연히 보따리에 싸어 있는 것은 상관라이디의 아이일 수밖에 없다.
피부가 까매서 마치 석탄 덩어리 같은 여자 아이였다.
그녀는 싸움닭 같이 새까만 두 개의 눈, 두 조각의 예리하고 얇은 입술, 까만 얼굴색에 대해 비협조적인 두 개의 하얗고 커다란 귀가 있었고, 이런 것들은 우리 가문에 대한 그녀의 신분을 확실히 증명했다.
이 애는 큰 누나와 샤우에량이 만들어준 우리 상관 집안의 첫 번째 외손녀였다.
모친은 대단한 혐오감을 드러냈으나, 그 애는 고양이 같은 미소로 답했다.
모친은 너무 화가 나서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새의 신의 넓은 신통력도 잊고, 한쪽 발을 날려 셋째 누나의 다리를 걷어찼다.
셋째 누나는 '왁'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몇 발작 비틀거리며 나가더니, 고개를 돌렸는데 얼굴에 완벽한 새의 분노가 떠올랐다. 그녀는 단단한 입을 높이 삐쭉거렸는데, 마치 사람을 쪼을 것 같았고, 두 팔을 높이 들었는데 곧 날아갈 것 같았다.
모친은 그녀가 새든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고 마구 욕을 했다.
" 이런 멍청한 것아. 누가 너보고 애를 받아놓으랬어?"
셋째 누나는 머리를 돌렸는데, 마치 나무 구멍 속에 있는 벌레를 찾는 것 같이 보였다.
모친은 허공에 대고 욕을 했다.
"라이디, 너 이 뻔뻔스러운 망할 년아! 샤우에량, 이 음흉한 마적 놈아!
네놈들이 싸질러 놓기만 하고 기르는 건 나몰라라 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길러줄 줄 아냐? 네놈들 꿈 깨라!
난 네놈들 새끼를 강에 던져 자라 밥이 되게 할 거야! 길거리에 던져 개 밥이 되게 할 거야! 늪에 던져 까마귀 밥이 되게 할 거야!
기다려 봐, 이 나쁜 것들아!"
모친은 여자애를 안고, 계속해서 자라 밥이니, 개 밥이니, 까마귀 밥이니 악담을 하면서 골목 안을 걸어 다녔다.
그러다가 강둑으로 걸어갔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거리를 향해 걸어갔다가, 거리에서 다시 고개를 돌려 강둑으로 걸어갔다가....
그녀의 걸어가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욕하는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마치 연료가 떨어진 트랙터 같았다.
그녀는 걸어 다니다가, 말로야 목사가 떨어져 죽은 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얼굴을 들고 폐허가 된 종루를 쳐다보며 입속으로 되풀이해 말했다. "당신은 죽어서, 도망쳐 버리고, 나 혼자만 내던져 놓으면 난 어떻게 살라는 거예요? 입만 벌리고 있으면 먹을 것이 알아서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오 주여, 하나님, 말씀 좀 해주세요.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해요?"
내가 울자, 눈물이 모친의 목 위로 떨어졌다.
여자 아기도 울었다. 아기 눈물이 귓구멍 속으로 흘렀다.
모친이 나를 달랬다. "진통(金童)아. 넌 엄마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애야. 울지 말아라."
모친은 여자 아기도 달랬다. "불쌍한 것. 넌 오지 말았어야 해. 외할미의 젖은 네 삼촌 혼자 먹기에도 모자라. 너까지 먹으면 둘 다 굶어 죽어. 이 외할미도 마음이 모진 사람이 아니야. 외할미가 방법이 없어서 그러는 거지...."
모친은 검은 수달가죽 외투에 싸여있는 여자 아기를 교회당 문 앞에 놓고는, 필사적으로 집을 향해 걸었다.
하지만 열 발자국 못 가서,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여자 아기가 돼지를 잡는 것처럼 큰소리로 울자, 소리는 마치 보이지 않는 밧줄같이 모친을 얽어매었고....
삼일이 지나서, 우리 집 아홉 식구는 현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인신매매 시장에 갔다.
모친은 나를 등에 업고, 샤씨 성(姓)의 작은 짐승을 안았다.
넷째 누나는 등에 쓰마 성(姓)의 꼬마 깡패를 업었다.
다섯째 누나는 등에 여덟째 누나를 업고, 여섯째, 일곱째 누나는 스스로 걸어갔다.
우리는 쓰레기 더미에서 허드레 채소 잎을 주워 먹으며 인신매매 시장을 계속 걸어 다녔다.
모친은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누나의 목에 볏짚을 꽂아주고 그들을 사갈 사람을 기다렸다.
우리들 앞에는 나무판자로 지은 간이 주택이 줄지어 있었다.
집 벽과 집의 지붕은 모두 석회 칠이 되어있는, 눈부신 백색이었다.
벽에 뻗어 나온 양철 굴뚝에서 뭉게뭉게 검은색 매연이 뿜어져 나왔다.
이 매연들은 공중으로 올라가 우리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가물가물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했다.
갑자기 머리가 헝클어지고, 눈같이 하얀 가슴을 드러낸, 입술이 선홍색인, 졸음이 채 가시지 않아 게슴츠레 눈을 뜬 기녀(妓女. 창기)들이 판자 집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들은 대야를 받쳐들 거나, 통을 들고, 지붕 없는 우물로 물을 뜨러 왔다.
우물 위에는 밧줄에 달린 두레박 도르래가 있었고, 우물 입구에서는미약하나마 따뜻한 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녀들이 부드럽고 약한 힘없는 하얀 손으로 무거운 도르네를 흔들자, 도르래 위의 밧줄은 삐걱삐걱하며 메마른 소리를 냈다.
굵고 큰 나무통이 우물 입구로 모습을 드러내면, 그녀들을 일본 게다를 신은 발을 뻗어, 나꿔째서 물통을 물이 쏟아지지 않게 우물 둔덕에 놓았다.
우물 둔덕에는 두껍게 얼음이 얼어있었는데, 얼음은 만토우(馒头 만두라고 읽으나, 소가 없는 찐빵을 뜻함) 형상이거나 젖꼭지 모양으로 얼어있었다.
물을 두 손으로 받쳐 든 여인들이 계속 오고 갔다.
물을 밭쳐 들고 걸어오고, 걸어가는 여인들의 발아래에서, 일본 게다의 낭랑한 소리가 울렸고, 그녀들의 가슴 앞에는 차디차게 언 유방이 유황냄새를 발산하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모친의 어깨 너머, 멀리 그 기괴한 여인들을 주시했는데, 내가 본 것은 오직, 어지럽게 날리는 유방들 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양귀비꽃봉오리가 나비처럼 훨훨 나는 산골짜기 같았다.
그녀들은 누나들의 시선도 사로잡았다.
나는 넷째 누나가 모친에게 작은 소리로 무언가 묻는 것을 들었는데, 모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륙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륙의 여인 <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15장 (4/5) (0) | 2025.04.09 |
---|---|
대륙의 여인 <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15장 (2~3/5) (1) | 2025.04.07 |
대륙의 여인 <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14장 (6/6) (0) | 2025.04.02 |
대륙의 여인 <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14장 (5/6) (3) | 2025.03.31 |
대륙의 여인 <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14장 (4/6) (1) | 2025.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