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민들이 돌아간 후, 이번에는 고귀해 보이는 손님이 왔다.
그녀는 칠흑같이 까만 반짝이는 미국산 시보레 승용차에 앉아 있었고, 승용차 양쪽 발판에는 두 명의 손에 모제르 총을 든 우람하고 건장한 남자가 서있었다.
시골 흙길은 두터운 먼지를 일으키며 귀빈을 환영했다. 그러다 보니 재수 없는 그 거한은 흙속 에서 뒹굴다 나온, 두 필의 회색 당나귀 같았다.
우리 집 대문 밖에 승용차가 멈추었다.
경호원이 차문을 열자, 먼저 곧장 진주와 비취가 튀어나왔고, 그다음 목이 튀어나왔고, 그런 다음 뚱뚱한 몸이 튀어나왔다.
이 여인은 체형이나 표정이 어찌 되었든, 깨끗하게 씻은 암컷 거위 같았다.
엄격하게 말해서, 거위도 하나의 새다.
비록 그녀의 신세가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새의 신을 알현하러 왔을 때는 반드시 겸손하고 공손해야 한다.
새의 신은 점을 치지 않고도 장래를 다 알고, 미세한 것까지 살펴볼 테니, 그녀는 조금도 거짓을 말하거나, 거드름을 부릴 수 없었다.
그녀는 창 앞에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낮은 목소리로 기도했다.
그녀의 얼굴색은 장미꽃 같았으니 병을 물으러 왔을 리 없다.
그녀는 온몸이 보석으로 번쩍였으니, 절대 재물을 구하러 왔을 리도 없다.
그녀가 이런 사람인데, 새의 신에게 무엇을 기도해서 얻으려 할까?
잠시 후, 창문 구멍으로 한 장의 백지가 흘러나오자, 그 여인은 종이를 펼쳐보았고, 얼굴이 수탉 벼슬처럼 새빨개졌다.
그녀는 일 원짜리 은화 몇 개를 던지고, 몸을 돌려 바로 갔다.
새의 신이 그 종이에 뭐라고 썼을까?
오직, 새의 신과 그 여인만 안다.
차와 말이 줄을 잇던 시절은 빨리도 지나가 버렸고, 한 지루의 건어물은 이미 먹어치운 지 오래였다.
혹한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모친의 유즙은 온통 풀뿌리와 나무껍질 맛만 났다.
음력 섣달 칠일, 기독교 교회 우리 현 최대 파벌인 "신조회(神召会: 하나님의 성회)에서 음력 섣달 초파일 새벽에 북관 대교당에서 죽을 나눠주는 자선행사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모친은 바로 우리들을 데리고, 죽 사발괴 젓가락을 들고 굶주린 군중들을 따라 그 전날 밤 현성을 향해 출발했다.
집에는 오직 셋째 누나와 상관뉘스두 사람만 남겨졌는데, 남겨진 이유는 하나는 반은 인간, 반은 신선(半人半仙)이고,, 하나는 반은 인간, 반은 귀신(半人半鬼)이라 우리들에 비해 굶주림에 잘 견디기 때문이었다.
모친은 상관뉘스에게 건초 묶음을 던져주며 말했다.
"시어매, 죽을 수 있으면 빨리 죽으세요. 괜히 우리 따라 고생할 게 뮈 있어요?!
이번이 우리들이 처음 밟아보는 현성"(县城: 현 정부 소재지) 가는 길이었다. 소위 길이란 모두, 사람들의 발과 가축들의 발굽에 의해 조성되는 회백색의 작은 오솔길이다.
그 화려하고 고귀한 여인이 타고 온 차는 어떻게 왔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우리는 하늘에 가득한 겨울밤의 별을 머리에 이고 힘들게 걸었다.
나는 모친의 등에 서있었고, 쓰마 집안꼬마는 넷째 누나의 등에, 다섯째 누나 등에는 여덟째 누나, 여섯째 누나, 일곱째 누나는 혼자 걸어갔다.
한 밤중에, 벌판에서는 아이들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곱째, 여덟째 누나와 쓰마 집안의 꼬마도 울기 시작했다.
모친은 큰 소리로 그녀들에게 야단을 쳤으나, 모친 역시 울었고, 넷째, 다섯째, 여섯째 누나 역시 울었다.
그녀들은 흔들흔들하다가 쓰러졌다.
모친이 이 애를 끌어 잡아당기면, 저 애가 쓰러졌고, 저 애를 끌어 잡아당기면, 다른 애가 쓰러졌다.
나중에는 모친도 얼어붙은 땅 위에 주저앉았다.
우리들은 한 군데로 모며, 서로의 신체로 자기 몸을 따뜻하게 했다.
모친은 나를 등에서 가슴 앞으로 돌려 안고는 차가운 손가락으로 내 콧김이 나오나 시험해 보았다. 그녀는 분명 내가 벌써 춥고 배고파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나는 미약한 호흡으로, 그녀에게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렸다.
모친은 가슴 앞 가림막을 들어 올리고, 차가운 젖꼭지를 굳이 내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것은 마치 얼음덩이를 내 입안에 넣어 녹이는 것 같았고, 내 입에서 감각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모친의 유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내가 빠니까 몇 가닥 거미줄같이 가느다란 핏발이 섰다.
추웠다. 정말 추웠다.
강추위 속에서 굶주린 사람들 눈앞에 온갖 아름다운 광경이 나타났다.
활활 타오르는 화로, 닭과 오리를 찌는, 열기가 솟구치는 솥, 고기만두가 가득 가 득 담긴 접시, 싱싱한 꽃, 그리고 파란 초원.
내 눈앞에는 오직 두 개의 요술 호리병처럼 풍족하고 반질반질하고, 작은 비둘기처럼 팔팔하고 풍만하며, 도자기 꽃병처럼 윤택하고 밝고 깨끗한 유방만 있었다. 그녀들은 향기롭고, 그녀들은 아름답고, 그녀들은 저절로 하늘섁 감미로운 즙을 분사하여 내 뱃속을 가득 채우고, 내 전신을 담그기 시작한다. 나는 유방을 끄러 안고 유즙 속에서 헤엄치며....
머리 위에는 수백만, 수천억, 수억조 개의 빠르게 선회하는 별들이, 소리 내며 돌다가 모두 유방이 된다.
천랑성의 유방, 북두칠성의 유방, 사냥꾼 별의 유방, 직녀의 유방, 견우의 유방, 달에 있는 상아의 유방, 모친의 유방....
나는 모친의 유방을 뱉고, 눈앞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사람이 찢어진 양가죽을 둘둘 감아서 만든 횃불을 높이 들고, 망아지처럼 펄떡펄떡 뛰는 것을 보았다.
환씨네 셋째 아저씨, 그는 등을 드러내고, 코를 찌르는 양가죽 타는 냄새 속에서 눈 부시게 환한 가운데서 목이 쉬도록 고함쳤다.
"고향 사람들 ---- 절대 앉으면 안 돼요 ---- 절대 앉지 말아 ---- 앉으면 바로 얼어 죽어 ----고향 사람들 일어나요 ---- 앞으로 걸어 가 --- -앞으로 걸어가야 살아, 앉으면 바로 죽어----"
환씨 셋째 아저씨의 폐부를 찌르는 호소로, 많은 사람들이 허위의 따뜻함에서 발버둥 치고 나와, 생존의 진실 속, 차가움을 향해 걸어갔다.
모친은 일어서서 나를 등 뒤로 돌리고, 쓰마 집안의 가련한 벌레를 가슴 앞에 안고, 여덟째 누나의 팔을 끌어당기고, 미친 말처럼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누나를 발로 차서 그녀들이 일어나도록 다그쳤다.
우리는 지기의 불타는 가죽 옷을 쳐들고 우리에게 환하게 길을 비춰주는 환씨셋째 아저씨를 따라갔다.
그건 다리로 간 것이 아니라, 의식으로 간 것이고, 마음으로 간 것이다.
우리는 헌성을 향하여, 북관 대교당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향하여, 섣달 초파일 죽 사발을 향하여, 출발했다.
이번의 비장한 행군 중, 길가에는 수십구의 시체가 남겨졌다.
어떤 시체는 옷깃을 추켜들고 만면에 행복이 넘쳤는데, 마치 불로 자기 가슴을 굽고 있는 것 같았다.
* 동사하는 경우 감각이 차츰 없어져서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되며, 행복해진다고 함. - 본문 아님.
환씨 셋째 아저씨는 빨간 이침 햇살 속에서 죽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섣달 초파일 죽을 먹었고, 나는 유방 안에서 먹었다.
죽을 먹던 정경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교회당은 우뚝 서 있었다.
십자가 위에는 까치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기차가 철로에서 헐떡 거렸다.
두 개의 소고기를 끓이는 큰 솥에서는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검은 도포를 입은 목사가 큰 솥 옆에서 기도했다.
수백 명의 굶주린 백성들이 줄을 서 있었다.
"신소회" 회원이 긴 자루가 달린 큰 국자로 죽을 나누어 주었는데, 들고 온 사발이 작던 크던 한 사람에 한 국자씩 퍼주었다.
맛있는 죽을 소리 내어 먹는다.
얼마나 많은 눈물이 국 사발 안으로 떨어졌는지 모른다.
수백 개의 빨간 혀가 사발을 깨끗이 핥는다.
한 사발 먹고 나서 다시 줄을 선다.
큰 솥에 다시 몇 자루의 깨진 쌀알과 물 몇 통이 부어진다.
이때 나는 유즙을 통해 알았다.
자비(慈蕜)의 죽은 깨진 쌀, 곰팡이 핀 수수쌀, 변질된 콩, 겨가 섞인 보리 알갱이를 오래 끓여 만들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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