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暂坐>는 아마 나의 칠십 세 전에 쓴 마지막 소설이 될 것이다.
무더위가 겨우 지나가자, 막 원고가 완성되었다.
글자 수는 21만이고 꽉 찬 2년에 걸쳐 썼다.
이것은 이전의 어떤 책보다 늦게 쓴 것이다.
이전의 책 원고는 많아봐야 두 번 고쳐 썼는데, 이것은 네 번이나 고쳐 썼다.
나이가 많아질 수록, 잘 못을 들추기 좋아하게 되는데, 남의 잘 못도 들추지만, 무엇보다 자기 잘 못을 들추게 된다.
나는 언제니 생각한다. 이렇게 쓰면 안 되고, 저렇게 쓰면 적절하지 않고...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수록 시간 낭비는 점점 더 심해진다.
<잔주오>는 도시에서의 일을 썼는데, 그 중 성루 이름과 거리, 골목 명칭은 모두 시안(西安)에 있다.
나는 시안에서 생활한지 벌써 40여 년이 되었고, 익숙하기가 꼭 우리 집 같다.
거실에서 부엌에 가는 것처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가고, 모퉁이와 문과 창문이 아무리 많아도, 한밤중에라도 자유록게 출입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를 무대로 쓴 소설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시골을 주제로 쓰는 작가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 현재의 소설에서 도시가 아닌 시골만 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금 세기 이래, 도시와 시골은 씨줄 날줄로 함께 짜였으며, 사람도 어느 한쪽 사람이 아니다. 도시와 시골은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 신분을 만들고 있다.
나는 갑자기 <잔주오>가 쓰고 싶어 졌다. 그건 우리 집 건물 아래에 있던 그 찻집이 이사를 가버린 데 연유한다.
찻집이 있던 그 몇년 동안, 나는 매일 거기에서 두 번 차를 마셨다.
한 번은 점심 식사 전, 한 번은 저녁 식사 후였다.
차를 마시고 나면, 그저 좋기만 했다. 불만족스럽지만 그냥 참은 적은 없다.
나는 이미 차 마시는 귀족으로 길러졌는데, 그때, 찻집이 이사 간 것이다.
사람이 몸이 건강할 때는 자기가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하지만 일단 병이 들면, 비로소 호흡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한번 들이쉬고, 한번 내쉬는 것이 그렇게 긴박하고,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그 찻집에서는 시에 제일 좋은 차를 팔았고, 사장은 뜻밖에 여성이었다.
그녀는 예쁘게 생겼지만 화장을 하지 않았으며, 옷차림과 꾸미고 다니는 것이 꼭 중성(中性) 같았다.
나는 그때부터 자웅동체 같은 인간이 때로 최고의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한떼의 규밀(闺蜜:여성 절친을 일컫는 말)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유유자족하고 자긍심이 강했으며, 몸가짐이 고상했다.
나는 전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남자들에게는 없는데, 여성들에게만 규밀이 있을까? 게다가 그녀는 규밀이 왜 그렇게 많을까?
나는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여성은 남자에 비해 훨씬 많은 생각을 한다. 그래서 대단한 여성이든 아니든 여성들은 이것저것 말해야 하고, 여기서 규밀이 생겨난다.
그 규밀들은 사나흘이 멀다 하고 찻집에 모였고, 그것은 대단히 흥청거리는 화려한 장면이었다.
멋진 모델이 한 명 거리를 걸어가도 사람이 돌아보게 되는데, 여기서는 십여 명의 모델들이 거리 전체의 주목을 받으면서 떼 지어 거리를 걸어가는 것이나 같았다.
내가 보기에도 그녀와 그녀의 규밀들, 그녀들의 뛰어난 아름다움은 스파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당신들은 가까이 가기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가까이 간다고 해도, 그녀들의 웃음소리와 이어지는 재치 있는 말에 당신은 대꾸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녀들은 활력으로 충만해 있고, 유행을 즐기며, 굴레를 싫어하고, 영원한 자아를 추구한다.
그야말로, 당신이 아주 높은 산이라면, 그녀들은 바로 아주 깊은 협곡이다.
당신이 구름이라면, 구름 안에는 새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바로 물이고, 물속에는 많은 작은 물고기가 있을 것이다.
그녀들은 하나의 세계이다.
현재 찻집은 이사 갔다.
경제가 곤두박질쳐서 인지는 알 수 없다.
반부패가 강력한 힘을 발휘함에 따라 사치품인 고급차를 점점 더 팔기 힘들어지고, 집세가 너무 오르고, 종업원들의 임금도 자꾸 올라서 계속 영업을 할 수 없어서였을까?
어쨌든 나에게 탄식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찻잔을 보면 목이 마르고, 촛불을 보면 금세 타 죽을 것 같다.
그녀들에게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 이야기들은 결코 <잔주오>의 본문이 아니다.
<잔주오>에서는, 병들어 입원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시아즈화를 소설의 실마리로 해서, 십여 여자들의 관계가 바탕에 깔려있다.
그녀들 각자의 관계, 그녀들과 타인과의 관계, 상호 간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이런 관계의 맥락 안에서 자기의 신분과 위치를 찾는 것은 바로 이런 옛글에 쓰여있다.
墙东一隙地,可二亩许 (담장 동쪽의 빈 땅은 이 무(亩) 정도 되려나)
诛茅夷险,燎以土垣 (띠를 뽑고 평평하게 고르고, 토담으로 둘렀네)
垣外杂种榆柳,夹桃花其中 (담 밖에는 느릅나무, 버드나무가 심어져, 복숭아꽃 속에 섞여 있네)
이것은 그녀들의 생존상태이며, 정신 상태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들이 소나무 겨울나기 같은 기생식물과 엉켜 자라며, 햇볕이 새어 들어가면 잎이 유리처럼 반짝이고, 공기의 흐름 같이 퍼져나가고, 구조적으로 응집한다고 서술하였다.
그중에는 특히 루이커처럼 아버지가 다시 살아나 나타나는 기이함도 있고, 핑잉의 유령이 감돌고 있는 매혹적인 아름 다움도 있다.
여기서 이 세상 사람들이 분명 두 종류가 있게 한다.
사람 같은 것과 사람이 아닌 것.
시공(时空)이 전환되면서, 떠오르고 가라앉고, 흑백이 수시로 바뀌면, 일체 모든 상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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