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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촌(村)이었던 선전(作为村的深圳): 2/7 陈再见

바오후이 빌딩의 최근 사진 (百度 -바이두에서 전재)

이화촌(怡华村)

 

 

오래지 않아, 둘째 형과 동생이 함께 눈앞에 나타났다.

둘째 형은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 나는 아직도 그것이 빨간색 스즈끼 오토바이였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둘째 형은 우리를 데리고 이화촌(怡花村)으로 갔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기억하기로는 몇 번 방향을 바꾸더니 내리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도 이화촌을 말한다면, 나는 즉각 바오후이 빌딩이 생각나고, 비록 그것들이 서로 무슨 관련이 없더라도, 내 인상 속에는 오히려 하나 같다.

기억이 남겨놓은 흔적은 때때로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다.

둘째 형네 작은 가게에서, 둘째 형수는 나와 동생에게 곽에 들어있는 라면을 한 개씩 끓여 주었다. 시골에서 본 라면은 모두 비닐봉지에 들어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닭칼국수(鸡切面)라고 불렀다. 한 봉지에 5마오(毛: 1/10 元) 했는데, 사가지고 와 생으로 와작와작 먹었다. 그러다가 그날 뜻밖에 곽에 들어있는 라면을, 그것도 끓는 물을 부어서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거라, 우리 두 형제는 꽤 놀랐다. 우리는 가게 문 앞에서 웅크리고 먹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워, 다 먹을 수 없어서 남은 것을 모두 동생에게 부어 주었다. 그때 나는, 동생은 많이 먹어야 하는 장정이 다 되었구나 하고 느꼈다. 그는 보기에도 나보다 컸고, 튼튼했으며, 나보다 머리도 잘 돌고, 담도 컸다.

나는 심지어, 둘째 형과 형수마저 나보다 동생을 훨씬 좋아한다고 느꼈다. 당연히, 동생은 가게에 온 지 이틀도 되지 않아 바로 가게 일을 도왔다. 물건을 들여오고, 옮기고, 그 애는 둘째 형보다도 힘이 셌고, 의외로 콜라 한 병은 얼마고, 쌍희 표 담배는 몇 가지가 있는지도 알았다.

하지만 나는 훨씬 많은 시간을 한구석에서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으면서, 나도 끼어들어 도와야겠다고 생각만 했다. 선뜻 끼어들지 못하다가 정말 돕겠다고 끼어들면, 도움은커녕 걸리 적 거리기만 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둘째 형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한구석에 그냥 앉아있어." 내가 듣기에 그의 말투는 비록 그렇게 명확하지는 않았어도, 그가 귀찮아한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고분고분 가게 입구에 앉아서, 이화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본 것은 가게 입구, 길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이화촌에서 살면서도 서로 모르는 것 같았고, 서로 만나더라도 누가 가던 길을 멈추고 인사를 하지도 않았다. 이런 사람들의 무리는 아침과 저녁 무렵에 가장 빈번하게 오갔다. 그들 대다수는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고, 게다가 여자애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들이 아침에 이화촌의 툴씩 셋씩 각 골목에서 나와, 한데 모이면 사람의 물결이 되었다. 그들은 둘째 형네 가게를 지나갔는데, 그중 몇몇은 가게에 들어와 빵도 사고, 과자 봉지도 사서, 아침식사 삼아, 걸어가면서 먹었다.

그들이 남쪽을 향해 걸어가다가, 어느 곳에 가면, 가로 질러가는 도로가 나오는데, 도로 끝이 바로 밤 오후 이 빌딩 근처의 입체 고가 차도이었다.

그들은 도로를 건너야 했는데, 도로 중간에 철제 난간으로 된 울타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사람 한 사람, 바짝 붙었다가 타 넘어가고, 타 넘어가고 했는데, 거의 전체 도로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왕래하는 차들은 클랙슨을 크게 울려댔다. 그래도 그들은 늘척늘척 한 명 한 명 타 넘어갔다.

자세히 보니, 흰 칠을 한 난간이, 그들의 신체와 오랫동안 마찰이 되어 칠이 벗겨져 있었다.

그들은 가서 무얼 할까? 당시 나는 잘 몰랐다. 나는 아직 일(打工), 이런 개념도 몰랐다. 나중에 내가 비로소 안 것은, 그들은 모두 도로 건너편 천홍(天虹: 하늘 무지개) 백화점의 종업원이었다.

나중에 모두 알게 되었는데, 이화촌에서 셋방살이하는 사람은 거의 전부 천홍 백화점 종업원이었다.

그들이 왜 도로 중앙분리대를 타고 넘어가야 했느냐 하면, 이화촌의 방세가 한 가지 원인이었다. 의회촌은 방세가 비교적 쌌다.

천홍 백화점 종업원 말고도, 나에게 인상을 남겨준 사람들이 있었다.

둘째 형의 가게 맞은편에 전자 공장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작은 공장이었다. 종업원도 많지 않았고, 그들이 입은 복장도 천홍 백화점 사람들처럼 멋있지도 않았다. 그보다 훨씬 떨어졌지만, 그들은 기꺼이 둘째 형의 장사를 도와주었다. 퇴근만 하면 거의 모두 가게로 몰려와, 별의별 것을 다 샀다.

남자는 담배를 샀고, 여자는 봉지 봉지 맵고 얼얼한 먹거리(麻辣东西) 를 샀다. 그러고는 가게 입구에 있는 걸상에 질펀히 앉아, 먹으면서 담소했다. 그들은 거의 나를 가운데 놓고 둘러쌌는데, 그들은 내가 가게 주인의 동생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심지어 나를 그들 가운데 한 명으로 알았다. 오직 이상하게 여겼던 것은 내가 왜 작업복을 입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막 들어왔어?" 어느 누가 이렇게 물었다.

당연히, 그들은 나를 겁먹게 하지 않았고, 나는 그저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몇 사람은 내가 보기만 해도 겁났다. 그들이 오면 언제나 지저분했고, 큰 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여기 칭다오 한 병."

그들 돈을 모두 비닐봉지 안에 싸갖고 왔는데, 끄집어 내면, 축축했다. 그걸 한 겹 한 겹 풀어내면, 최후로 드러난 돈은 뽀송뽀송했다.

그들은 술을 탁자 위에 정리하고, 땅콩을 까놓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반쯤 마시다가, 내가 그들 주변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자, 그들은 즉시 불쾌감을 표시하고, 나에게 꺼지라고 했다.

둘째 형은 그들 모두 건축 공사장 사람이며, 그때 보안 체육관 공사 중이라고 했다. 이화촌에는 그들의 진흙탕을 뒤집어쓴 그림자가 많았다.

여러 해가 지나고, 나는 선전에 일하러 갔는데, 둘째 형은 여전히 가게를 하고 있었다. 둘째 형은 이렇게 오래 가게를 하고 있지만, 계속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가게가 전보다 조금 물건이 꽉 차있는 것 말고는 결코 많은 돈을 벌지 못했다. 둘째 형은 나중에 무슨 욕심도 없고, 계속 이화촌에서 살아갈 거라면서, 이렇게 장사로 가족을 부양하는 게 뭐가 문제냐라고 했다.

요즘에, 이화촌은 거의 변화가 없다. 지하철 환중선이 개통되고, 그밖에 가게 앞 공장이 이사 간 것, 국영 호텔이 들어선 것 말고는, 다른 것들은 모두 그대로다.

나는 여러 날 후에, 둘째 형 가게에 가서, 잠시 앉아, 밖을 볼 수 있었다.

가게 앞 도로에는 여전히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첫째는, 공장이 없어졌기 때문이고, 둘째는 천홍 백화점 종업원이 더 이상 이회촌에 세를 살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형 말에 의하면, 현재 이화촌은 방세가 너무 비싸져서, 특히 지하철이 개통되고 나서는 백화점 종업원이 세를 살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둘째 형도 너무 힘겹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