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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중국 차(茶) : 편안해지니까, 깨달았다(因宁静而清醒) 1/3 : 徐晓村

중국 차 문화 관련 삽화 복사했습니다.

 

 

내가 차(茶)에 대한 글을 쓴 것은 참으로 우연이었다.

1990년대 말, 옛 동료 하나가 나를 찾아와서, 한 TV 방송국의 차 문화 칼럼 각본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별로 망설이지 않고 동의했다.

이 각본은 내가 차 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가 아니라, 이 일이 매우 재미있겠다 싶어서 쓰겠다고 한 것이다.

나의 차 마시는 습관은 1970년대, 내가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할 때 시작되었다. 매번 여름만 되면, 공장 안에서 뜨거운 차를 내리게 하여 전 직원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대략 일 인당 한 근(500g) 정도였다.

차는 당연히 좋은 차가 아니었고, 아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하면, 마음대로 커다란 쇠 주전자에 차를 한 줌 던져 넣고 급수실에 가서 끓는 물을 부어 가지고 와서, 전체 조원이 모두 따라 마셨다.

나중에, 내가 공장을 떠나서도,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나의 차 마시는 습관은 그대로 남았다. 하지만 그냥 습관이었을 뿐이지, 내가 차에 대해서 무슨 특별한 의미를 느껴서가 아니었다.

한동안, 대충 십몇 년 정도, 나는 어렵게 살았다. 가난했을 뿐 아니라, 어찌나 바쁜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가할 틈이 없었다. 기분도 자연히 좋을 리 없었다.

비록 이지경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차 마시는 습관을 지키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물을 끓여, 차를 우리는 일이었다. 이상한 것은, 아침에 차를 한잔 마실 때면, 평소의 긴장과 스트레스, 초조한 기분이 영문도 모르게 사라지고, 여유 있고 평온함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차가 어떻게 이렇게 신기한 작용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은 내가 차 문화의 각본을 쓰겠다고 승낙한 이유 중 하나이다.

각본 쓰는 일에 착수하고 나니, 나는 그제야 차 문화라는 것이 대단히 방대한 제목이고, 관련되는 문헌 자료도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았다. 예부터 지금까지, 뜻밖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차에 관해서 글을 썼고, 연구했다. 차는 고고학, 식물학, 경제학, 문화, 민속 등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내가 각본을 쓰는 과정은 공부하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일 년이 넘게 걸려서, 나는 52집의 TV 영화의 각본을 썼다. 이 정도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료를 보았는지 나도 확실치 않다. 서점에서 관련된 서적을 발견하면, 나는 거의 모두 읽었다.

영화가 방영되자, 반응이 꽤 괜찮아서, TV 방송국의 그해의 장르 별 1등 상도 탔다. 하지만, 내가 공부한 것들을 써먹을 데가 없어서, 스스로 조금 아쉽게 생각되어, 대학에 "중국의 차 문화"를 선택 과목으로 개설했다. 사실 내가 이 과목을 개설한 데는, 다른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바로 대학생들도 긴장과 초조 속에 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차 문화를 알게 하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 과목을 선택한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날 나는 학생을 하나 만났다. 그는 이 과목 이야기를 꺼내더니, 다시 이 괴목은 점수를 높게 주지 않다고 했다.

나는 당시에는 그 학생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택과목을 선택할 때는 학생들이 어느 교수의 어느 과목이 높은 점수를 주나 따져보지, 내용과는 큰 관계가 없다고 한다. 나는 그제야 내가 헛물을 켰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당연히 노력을 했다..

강의와 TV 극을 쓰는 것은 다르다. 강의를 위해서는 체계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비교적 체계적으로 차 문화의 문헌들을 읽었다. 읽은 책이 많아지자, 스스로 어느 정도 체험적인 깨달음이 생겨났고, 이런 내용은 내가 주관하여 편집한 대학교재 < 중국차 문화 >안에 써놓았다.

이 밖에도, 신문사 요청에 응하거나, 잡지사와 원고 약속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차를 주제로 한 산문(散文)을 썼다. 어떤 때는 원고 약속이 급하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럴 때, 나는 TV 극 해설을 산문(散文)으로 다시 써서 이런 글 빚들을 갚았다.

이런 글들은 금방 알아낼 수 있는데, TV 해설을 쓸 때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단어를 쓰지 않으면 안 되지만, 사람들이 보는 글을 쓸 때는 이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나날이 오래 지속되자, 글이 어느 정도 모였다. 하지만 책 한 권을 만들, 글자 수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또 몇 편의 독후감을 썼다. 이것이 이 책의 내력이다.

※중국 책은 대부분 글자 수를 표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