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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우주의 중심(宇宙的中心) - 2 : 东君

 

그때, 내 눈에는, 마을 안 작은 둔덕에 서있는, 마을에서 제일 높은 나무가 하늘과 제일 가까운 것 같았다.

그 나무에는 새 둥지가 하나 있었는데 아무도 감히 새알을 꺼내러 올라갈 생각을 못 했다. 그 원인을 말하자면, 새 둥지와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나무와 관련이 있었고, 또 나무와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나무 아래 작은 둔덕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이 맞다. 어른들 말에 의하면, 그 작은 둔덕 안에는 연대가 아주 오래된 이름 없는 유골이 매장되어 있다고 했다. 나무의 한쪽 끝은 죽은 사람이고, 다른 한쪽 끝은 살이 있는 생물이니, 그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신비한 것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경외심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나무를 경외했고, 나무 위에 있는 새 둥지도 경외했다. 이 때문에 새는 그 안에서 잠을 자고, 알을 품고, 살아갔고 우리는 한 번도 새를 괴롭히지 얺았다.

하지만, 어느 때, 나무 아래에서 갓 태어난 새 새끼가 짹짹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흘끗 쳐다보았다. (새 새끼의 고귀한 기질은 하늘이 부여해 준 것 같았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았으니 말이다)

만약 흥미가 있었다면, 우리는 입을 오므리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따라 해 보았을 것이다.

한동안의 기나긴 세월 안에서, 신성한 새의 가족들은 계속 우리 마을 하늘에서 퍼져 나갔고, 우리처럼 조용히 시골 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현재, 그 작은 둔덕은 이미 사라졌고, 나무들과 나무에 있던 새 둥지들도 같이 사라졌다.

그밖에 또 다른 새 둥지가 있었는데, 집의 처마 밑에 지어진 집이다.(우리 지역에서는 사람이 사는 곳을 "보금자리"라고 한다)

사람과 새가 같은 보금자리에 사는 것은 농경시대의 정겨운 풍경이다. 1990년 대에 도시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는 많은 고옥들을 허물고 다시 지은 것이었다. 그래서 새의 둥지는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오직 시골에만 여전히 옛 습속을 따라 하고 있는데, 설령 새집을 짓는다 해도 처마 밑에 대나무 같은 것을 몇 개 튀어나오게 하여 거기에 제비가 둥지를 짓게 했다. 당시에는 어느 집 들보와 처마 사이에 만약 새집이 없다면 체면을 깎이는 일로 여겼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가자 새의 둥지는 보기 힘들어졌고 마치 그것들이 옛날에도 없었던 것 같아졌다.

나는 남방 외진 곳에 있는 시골에 갈 때마다, 자주 깨 닿는다. 사람이 살지 않는 오래된 집, 그 안에 유일하게 있는 것은 쥐 굴밖에 없다. 당연히 제비가 진흙을 물어다 지은 집도 없다. 하지만 처마 밑에는 여전히 새의 둥지가 쓸쓸하게 진흙 흔적을 남겨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걸 보면, 당시에 주인이 새와 그들 가족이 한 처마 밑에서 사는 것을 틀림없이 기쁘게 바라보았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새들도 이렇게 사람의 기(氣)가 있는 곳에 기거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새가 하늘의 숨결을 인간에게 가져온 것은, 바로 가축이 땅의 기(氣)를 집으로 가져온 것이나 같다.

하늘과 땅 사이의 숨결이 사람 몸에서 합류하면, 이 집안은 편안하고 회복한 느낌이 생겨날 것이다.

사람이 새를 볼 때 일종의 친근감이 생기는 걸 보면, 새도 사람이 사는 곳을 볼 때 이러지 않겠는가?

어렸을 때, 우리 마을에서 새집을 지으려고 고옥을 한 채 허물었다. 집 주인이 토방 아래에 새 둥지가 있는 것을 보았다. 주인은 갑자기 인부들에게 말해서 잠시 토방 허무는 것을 보류하도록 시켰다.

토방이 새 둥지를 비호했는지 아니면 새 둥지가 토방을 비호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어쩌면, 토방과 새 둥지 사이가 이미 하나의 상호 의존적인 전체로 변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나중에 고옥의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만약에 새 둥지가 없었다면, 그대로 토방을 헐어버렸을 건가요?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지금 같은, 철근 콘크리트 밀림 속에서, 여전히 이렇게 허약한 토방을 볼 수 있다면, 누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하늘과 서로 통하는 경로는 새들이 만든다고 생각한다. 새 둥지는 그 시발점이고, 그 종점은 망망한 우주(宇宙) 가운데 어떤 점이다. 아마도, 이 두 개의 점은 신(神)의 같은 한 손안에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 그 경로가 차단되었지만,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회복될 것이다. 이따금 그 고옥을 지나가면서, 고개를 들고 눈에 잘 띠지 않는 새 둥지를 본다. 그건 마치 어떤 길의 출발점을 보는 것 같다.

이따금, 나는 그것이 아마도,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 프랑스 철학자)가 말하는 "우주의 중심"일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