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적부터 노는 데는 빠지지 않았다.
귀뚜라미를 잡고, 참새를 잡고, 눈사람을 만들고, 막대 놀이를 했다.
항전(抗战) 8년, 남쪽으로 피난을 가서, 생활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노는 본성은 막을 수 없었다. 수영하고, 손으로 물고기를 잡고, 청개구리를 낚았다. 당시 개구리 뒷다리를 넣고 볶은 고추장은 맛이 기가 막혔다.
중학교에 들어가, 축구를 했는데,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여전히 확실한 축구 광이다. 한밤중에 일어나, 끝까지 앉아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브라질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축구를 안 보면, 사람 사는 기쁨의 반이 사라지고, 낚시를 좋아하지 않으면 또 기쁨의 반이 사라진다." "마작을 하지 않으면, 기쁨은 거기서 또 반으로 준다."
매번 반으로 줄면, 영원히, 완전히 줄어들지는 않는다.
내가 노는데, 가장 확실한 동료는 자전거다.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 프레임 사이에 가랑이를 넣고 반씩 밟으며 놀기 시작한 이래, 벌써 자전거 이력 60년째다. 세계 명품, 산창(三枪), 펑토우(凤头) 자전거, 국내 명품 자전거로는 비합(飞鸽 비둘기), 영원(永久), 대홍기( 大红旗) 등이 있는데, 나는 돌아가며 탔다. 타이어를 바꾸고, 바퀴를 바로 집고, 부품 교체를 한때, 남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하다 보니, 그런 것들은 이제 손바닥 보듯 훤하다. 처자식 아는 것보다 자전거를 더 잘 안다.
"가난뱅이는 자전거를 즐기고, 부자는 시계를 츨긴다"는 시대에, 북경은 자전거 왕국이었다. 등교하고, 출근하고, 출장 가고, 교외에 놀러 가고, 몇 리든 몇십 리든 한번 자전거에 뛰어오르면, 막힐 것이 없었다.
하방(下放)으로 평곡현 산골짜기에 노동을 갔을 때는, 매월 한 번씩 도시에 갔다. 90km, 시속 15킬로로 내달렸다. "무쇠다리 운송대"와 한패가 되어 동행했는데, 그들은 한 차에 양편으로 지게를 걸고, 200킬로의 계란을 나르는데, 깨뜨리지 않고 북경까지 갈 수 있었다. "저는 감히 부끄럽기만 히네요"
하지만 나의 대홍기(大红旗:자전거)도 55킬로의 산골 토산품을 싣고 집으로 갔다. ---- 감, 홍과, 설화 배, 호두, 밤, 팥, 신선과는 한 근에 3푼이고 건과는 5푼인데 값도 싸고 맛도 좋아 가져가면 식구들 모두 대환영이었다.
자전거의 장점은 말로 다 못한다.
소음이 없고, 오염이 없으며, 걸음을 대신하고, 물건을 다르고, 체육 단련을 위해 널리 사용된다. 차량 중에서 가장 멋진 발명품이다.
민간에서 연구하여 제작한지 100년, 전 지구상에 보급된 지 100년 되었다. 자동차로 붐비는, 현대 도시에서, 오늘날 자전거의 생태문명의 매력은 힘차게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자전거는 원래 전문 기술자가 설계하지 않았다.
그 총명하고 재치 있는 발명은 노는 데서부터 나왔다.
최초의 자전거는 이태리 화가의 붓 끝에서 출현했다.
1790년, 독일 시프 라커 백작은 차가 꽉 찬 좁은 거리에 있다가, 마차가 튀긴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그는 화를 내는 대신, 기발한 생각을 했다. 만약 마차 중간을 잘라서 둘로 만들면, 차들이 모였을 때, 통과하기 용이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목마 앞뒤로 하나씩 나무 바퀴를 달고, 그걸 타고 발로 지면을 밟고 앞으로 나갔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매우 재미있게 생각했고, 그것을 "목마륜"이라고 불렀다.
빙더라스 남작은 "목마륜"에 다시 핸들을 설치하여, 방향을 통제할 수 있는 목제 두 바퀴 차를 만들었고, 1818년, 영국에서 발명특허를 얻었다.
1839년, 스코틀랜드 대장장이 맥밀란은 이런 기초 위에 크랭크 샤프트 연결축으로 후륜 구동되는 철제 자전거를 만들었다. 그걸 타고 가니, 두발이 땅에서 떨어졌고, 크랭크를 밟으면 앞으로 나갔다.
이것은 하나의 대단히 대담하고도 지혜로운 첫 시도였다. 그가 얼마나 많이 나가떨어졌으며, 얼마나 여러 번 비웃음을 샀는지 모른다.
주위 사람들이 말했다. 이 두 바퀴 차는 스스로 서지 못하는데, 사람이 타고 간다고 안 넘어질 수 있겠어?
하지만 맥밀란은 두 바퀴 차는 정지상태에서는 넘어지지만 움직일 때 수시로 방향을 조정하면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연습을 거듭했고, 능숙한 기술이 생겼다. 그는 결국 자전거를 타고 큰 길을 맘껏 달리게 되었다!
그 후, 수많은 완가(玩家)가 자전거를 완벽하게 탈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인, 앙리 미사는 밟아서 돌리는 페달을 만들었고, 아일란드 수의사 던로프는 고무 타이어를 자전거에 달았다.
1888년이 되었다. 영국 기계 기술자인 스탈리는, 자전거의 집대성자로서 "앞에는 핸들로 방향을 조정하고, 쳬인으로 후륜 구동"되는 첫 번째 현대식 자전거를 만들었다. 게다가 대량생산을 하여, 전 세계에 신속히 보급시켰다.
자전거의 발명은 두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두 바퀴가 앞뒤 종렬로 배치되고, 동력이 차를 탄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은 지금까지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의하여 관찰하면 알 수 있는데, 마차, 자동차, 등 각종 차량은 두 바퀴, 네 바퀴 혹은 여러 바퀴라도 모두 좌우 황열로 배치되어 있어서, 차 몸통이 비교적 넓고 도로를 차지하는 면적이 크다.
자전거도 다른 이름으로 차이지만, 도로를 점용하는 면적이 제일 적어서 구불구불한 작은 길도 능히 통행할 수 있다.
게다가, 마차는 축력에 의존하고, 자동차, 기차는 기름, 석탄, 전기를 소모하고 인력거마저도 차부가 끄는 힘에 의존한다. 하지만 자전거가 이용하는 것은 자신의 힘이다.
타고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걸음을 대신하여 오고 가니, 체육 단련도 되고, 에너지를 절약하니, 환경도 보호되니, 일거 다 듣 아닌가?
육십 년을 한 갑자(甲子)라 하며, 음력으로는 한 세기다.
하하, 나는 세기를 뛰어넘은 자전거 꾼이다. 내가 만약 장수한다면, 아예 다시 육십 년을 자전거를 탔으면 좋으련만...
原載《북경 문학》2015년 제11기.
'중국 수필,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주의 중심(宇宙的中心) - 2 : 东君 (0) | 2022.11.09 |
---|---|
우주의 중심(宇宙的中心) - 1 : 东君 (0) | 2022.11.06 |
완가 (玩家: 놀이를 좋아하는 사람) 2/3 : 赵大年 (2) | 2022.11.01 |
완가 (玩家: 놀이를 좋아하는 사람) 1/3 : 赵大年 (0) | 2022.10.28 |
바람이 석문(石門)을 지나갔다.(风从石门过)- 끝.午后茶 (0) | 2022.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