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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바람이 석문(石門)을 지나갔다.(风从石门过)-1.午后茶

바람은 내 맘대로 한다.(风是我的随心所欲)

날씨가 시원해졌다. 거리에는 더 이상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달이 파란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조용히 외톨이 오후차(午后茶 :人名-직역하면 오후의 차)가 석문의 도로에 멍하니, 혼자 서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성봉(成峰)의 집 문앞에 묶여있는 누렁이는 벌러덩 누워 눈을 감고 먹은 것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만둔(满囤) 집,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개는 어느 구석에 엎드려 나쁜 궁리를 하고 있는지, 그림자도 안보였고, 기척도 없었다. 동쪽 거리 조문(兆文)의 피리 소리는 며칠째 계속 벙어리가 되었는데, 어머니 말로는 조문이 병이 나서 피를 토했다고 했다. 매일 이맘때쯤 인민공사 오 소창(소규모 공장)에서 늦게 돌아오는 춘구 큰형은 오늘 밤에는 하필이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은? 역시 숨어버렸을까? 피곤해서, 자고있을까?

고개를 들어, 다시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니, 형언할 수 없는 억울함이 갑자기 소년 오후차의 마음속에 사무친다.

목적 없이 거리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다섯째 삼촌네 집 후문이 열려있다. 점점 희미하게 다섯째 삼촌의 심하게 기침을 하며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섯째 삼촌은 천식을 앓은 지 십수 년, 해마다 심해지며, 기침을 할수록 등이 굽어졌다.

당주(挡珠)네 집 등불이 환하다. 당주 엄마가 등불 아래 신발 밑창을 촘촘히 꿰매고 있다. 당주 엄마는 머리에 바늘을 비비는데, 머리카락은 비빌수록 희어졌다.

대편(大片)네 집 앞 뒤 창이 모두 열려있다. 대편은 잠이 들었는지 보이지 않고, 그의 코 고는 소리만 한차례 한차례 파도처럼 들려왔다.

옥수수 잎 한가닥이 돌연 빙글빙글 돌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느릿느릿 땅 위로 떨어졌다. 그 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왔는지 오후 차가 살펴볼 때까지 기다려 주지도 않고, 괴이한 바람은 즉시 사라져서 그림자도, 흔적도 남지 않았다. 오후차는 본능적으로 한 손을 치켜들고, 공연히 하늘을 향해 뻗었다. 마치 갑자기 불어 온 실바람을 잡으려는 듯이.

모든 것이 조용하게 되돌아갔다. 하지만 이런 조용함은 등 뒤에서 갑작스럽게 후려치는, 주먹에 순식간에 깨졌다.

"오후차, 어디 아프냐? 왜 혼자서 거리에서 지랄하고 있냐? "

은홍(银红 )!

은홍은 거의 매일 밤 그의 형집으로 가서 형수가 어망 짜는 것을 도왔다. 오후차는 오늘 밤도 거리에서 그를 만날 것같은 예감을 느꼈고, 과연 그를 만났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오후차는 가볍게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너였구나. 깜짝 놀랐지 않아."

"이놈 새가슴이네?" 은홍은 힘껏 오후차의 이마를 튕기며 웃었다.

"난 공부 안 해도 돼. 나 내일 대련에 가. 셋째 외삼촌이 진교 홍기 인민공사에 말해서 나에게 임시 일자리를 구해주었거든. 하하. 나도 출근하는 거야!"

말을 하면서, 다시 한번 정말 거칠게 오후차의 이마를 튕겼다.

오후차는 정말 아팠는데, 그건 이마뿐 아니었다. 은홍을 보고 흥분되고 기쁨에 넘쳤던 것은 깡그리 사라졌다. 그는 어찌 말해야 좋을지 알지 못했고, 마음속으로 갑자기 고독감이 밀려 들어왔다. 한참 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 오후차가 말했다. "너네 세째 삼촌 정알 능력있구나. 다 네 복이지 뭐." 오후차가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더는 은홍을 보지 않고, 자기 발만 집중해서 보았다.

은홍은 오후차보다 두 살 많았다. 오후차보다 두살 많은 걸 갖고, 은홍은 학부형 같은 말투로 명령조로 말했다.

"빨리 집에 가. 벌써 몇 시야? 네 엄마가 분명히 널 찾을 거야!"

오후차는 바람처럼 집을 향해 뛰어갔다. 집 문앞에 이르자 오후차는 은홍에게 맞은 자기 이마를 만져보았고, 곧 담장 옆에 주저앉았다.

집에서 기르는 개 아황(阿黄)이 꼬리를 흔들며 뛰어올라 주인의 손을 핥더니, 오후차의 품 안에 기대어 편안히 잠이 들었다.

오후차는 이황을 꽉 끌어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는 아주 옅은 구름이 끼어 있었고, 달은 무척 하얬다.

마음이 점점 텅텅 비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