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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바람이 석문(石門)을 지나갔다.(风从石门过)- 3.午后车

 

피리를 잘 부는 녕조문(会吹笛宁兆文)

피리 소리가 다시 들렸다.

물론 조문(兆文)이 부는 피리 소리다. 조문은 거리 입구에 서서, 마치 극장 무대 위에 선 것처럼 몰입해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불었다. 관중은 오직 오후차 한 사람인 때가 많았다.

오후차는 조문의 피리 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것도 좋아했다. 조문이 달빛 아래, 올백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한곡 뽑을 때는 흥분이 물결치기도 하였다. 올백 머리를 다시 흔들면, 곡조는 맑고 명랑한 소리가 뚝 그치고, 밤은 정적에 휩싸이게 된다. 사람이 후련하게 듣지 못하고, 여전히 곡에 빠져있게 되면, 머리가 멍해진다.

조문이 웃으며 묻는다."셋째 아재, 더 듣고 싶어?" 오후차는 고개를 끝 덕인 다. 조문은 비록 오후차보다 나이가 몇십 살 더 많지만, 항렬을 감안해서 오후차를 셋째 아재라고 불렀다. 조문은 올백 머리를 흔들며, < 채찍을 휘둘러 말을 재촉하며 바삐 양식을 나르다 >라는 곡을 불기 시작한다. 오후차는 곡에 푹 빠져서 정신없이 듣는다. 눈앞에 정말 양식 운반 수레들이 와글와글 나타난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오후차는 일부러 조금 일찍 가는데, 목적은 조문이 밥 먹는 것을 보기 위해서다. 조문의 메뉴는 일 년 내내 변함이 없다. 주식은 옥수수 부침이든가 조밥이든가 이고, 부식은 오직 한 가지, 채 썬 감자 국이다.

조문은 밥을 다 짓고 나면, 방 구들의 식탁에 두 개의 대접을 놓는다. 한 대접에는 밥을 담고, 한 대접에는 국을 담는다. 밥 대접은 크고, 국 대접은 작은데, 대접 모두 열기를 내뿜는다.

하지만 급하게 먹지 않는다. 조문은 웃통을 훌러덩 벗고, 대충대충 두 손과 얼굴을 씻고, 책상다리를 하고 구들에 앉는다.

큰 밥사발에 가득 밥을 담고, 말없이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마치 먹기 아까워하는 것 같았다. 밥그릇을 조심히 받들고 몇 입 먹으니, 밥은 벌어 반절 이상 없어진다. 다시 몇 입 먹으니 사발은 벌써 텅텅 비었다.

이때서야 국을 억기 시작한다. 먹는 것도 알뜰히 먹는데, 한 번에 들어 뻥날까 봐 한 모금씩 먹는다. 다른 생각은 아예 없다. 꿀꺽꿀꺽, 한 모금씩 한 모금씩, 감잣국의 신선하고 개운한 맛을 음미한다.

또다시 사발에 밥을 가득 담는다. 이렇게 하다 보니, 순시칸에 네 사발을 먹어치웠다. 조문은 입을 만지며 눈은 꼼짝하지 않고 대접 위의 밥만 본다.

"더 이상 먹을 게 없군. 더 먹다간, 내일 새벽에는 서북풍이나 먹게 되나?" 말은 이렇게 해도, 사람은 역시 대접 속, 밥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반 사발 담는다.

조문이 이렇게 밥을 먹는 것은 그야말로 일종의 즐거움이다. 대체로, 식욕부진인 사람이 조문의 밥 먹는 것을 본다면, 틀림없이 먹는 양이 대폭 늘어날 것이다. 어쩌면, 조문은 식욕이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 성욕을 챙길 틈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장가를 못 간 것 같다.

사실, 조문은 체구가 크고 훤칠하며, 남성미가 있기 때문에 여성들 눈으로 볼 때, 반드시 크고 거친 동북(东北 : 동북 삼성) 사내로 볼 것이다. 이런 남자들은 정말 감출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다시금 조문을 보게 된 것은 봄볕이 포근하던 어느 날 정오였다.

오후차가 조문 집에 들어갔을 때, 그는 막 점심을 먹고 났을 때였다. 조문은 한순간에 늙은 것같이 보였다. 머리도 백발이 더 많았고, 얼굴에도 주름살이 자글자글했다.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오후차가 물었는데, 묻고 나자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문은 망설이며, 그의 나이가 마치 하나의 어렵디 어려운 수학 문제라도 되는 양, 잠깐 동안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만에, 조문이 오후차를 보면서 마지 못 해 웃었다.

조문은 이번에는 자기가 59세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그는 벌써 여러 해째 계속 59 넘었다고 해왔다.

"앉아, 셋째 아재." 조문은 오후차에게 담배 한 대를 권했다. 그러다 갑자기 오후차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 떠올랐는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혼자 담뱃불을 붙였다. 그리고 천천히 담배를 피웠다.

봄볕이 창살을 뚫고 들어와 집안을 비췄다. 온 집안이 환했다.

햇볕 아래, 앉아있으니, 정신이 멍한 게 조금 졸리기도 했다. 조문이 베개를 던지며 말했다. "졸리면 눈 좀 붙여."

잠시 멍했다가 정신이 반쯤 들었다. "됐어요." 오후차는 말하면서 몸을 일으켜 떠나려고 했다.

조문은 더 있으라고 잡아 앉혔다.

조문은 상자에서 오래된 편지를 한통 꺼내면서 말했다.

"귀찮더라도, 셋째 아재, 편지 하나만 써줘. 그 여자가 이 편지에서, 곧 석문에 와서 나하고 결혼한댔어."

여러 해 전에, 쑤메이(素梅; 소매)라는 철령(铁岭) 여자가 석문에 왔었다. 그건 오후차 큰형의 공로였다. 큰형은 가공의 중매쟁이를 통하여 먼 랴오베이(辽北 동북 지방)에서 남편 잃은 소학교 여선생을 석문으로 데려왔다. 쑤메이는 조문 집에서 8일 있었는데, 그건 조문에게 꿀처럼 감미로운 8일이었다.

쑤메이가 돌아간지 얼마 안 되어 조문에게 이 편지를 보냈다.

이것은 거절 편지였는데, 조문은 글자를 한자도 몰랐다. 큰형은 조문이 상심할까 봐, 쑤메이가 편지에서 5.1 노동절에 석문에 와서 그와 결혼할 거라고 말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오늘도, 조문은 여전히, 똑같이 더 이상 젊지 않은, 먼데 있는 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셋째 아재, 그녀에게 말해줘. 석문이 곧 이사 가서, 나도 다층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내가 기다리는 중이라고."

오후차는 무겁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알았다.

이것이 한 총각 남자가 일생 동안 가지고 있는 비밀이며, 기대라는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