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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가장 멀면서, 가장 가까운. (三) :(最远的,最近的) 指尖

수년 전, 나는 집에서 수백리 떨어진 도시에서 얼마 동안 머물렀다. 나는 매주, 집에 두통의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쓸 때는 말하기 좋은 얘기만 썼다. 하지만 매번 답장을 받으면, 언제나 움츠리고 구석진 곳에서 혹은 방에서 문을 잠그고, 얼굴이 온통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요즘 여자 애들 같으면, 매일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멋진 옷을 샀느니, 맛있는 걸 먹었느니, 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부모들 보라고 열심히 영상을 찍어 댈 것이다.

이에 비해서, 남자애들의 자세는 훨씬 소탈해서, 지금까지 짜증 낸 적이 없다. 바로 입는 것 먹는 것이  부족할 때만, 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남편은, 자기도 대학에 들어갔을 때, 돈이 떨어졌을 때만 집에 편지를 썼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상습적이 습관은 지금 그에게는 모조리 사라졌다. 그는 연락하는 것을 마치 일종의 독립할 방법이 없다는 표현으로 간주하고, 자기가 원래 청풍명월에 걸치적 거릴 것이 없는 사람인 듯, 침묵으로, 자기가 평안하고  근심이 없다는 표시를 했다.
어떤 때는 내가 다른 사람이 그럴 것이라 상상하고, 300, 200元씩 돈을 보냈다. 그를 압박하면,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전화해 오지 않을까? 확실히 알게 된 것은, 그는 아무렇게나, 계획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의 이런 생각은 분명히 편협하고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그때 무의식 중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그가 수업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였다. 그때 "엄마야?"하는 그의 목소리는 나를 한동안 부끄럽게 했다.
거듭, 그놈의 끝자리가 65로 끝나는 전화번호를 치니, 그 안에서 내가 낳아서 기른 사람의  목소리가 났다.
문: 엄마(아빠) 바쁜 일 있어요?
답: 누워서 TV 보느라고(신문 보느라고).
문: TV에서 무얼 보는데요(무슨 뉴스를 읽는데요) ?
답: < 영광스러운 대지 > (스포츠 뉴스)
문: 오늘 점심때 무얼 드셨어요?
답:  모르겠다. 아직 만들지 않아서.
문: 집에 뭐 부족한 게 있어요? 채소나 고기가?
답: 냉장고 안에 모두 있다. 너 밥 먹으러 올 거니?

내가 그들에게 갔을 때, 기뻐할 때도 기뻐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들이 기뻐할 때는 많이 먹었다고 했고, 기뻐하지 않을  때는, 오늘 밥은 정말 맛이 없다고 했다.
웨이신(微信: 중국 메신저 프로그램)에는 어머니의 사랑은 사심 없고, 위대하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매번 읽을 때마다, 언제나 얼굴에 감동의 표정을 짓게 한다. 하지만, 이 세상, 결코  모든 어머니가 위대하고 사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아주 적은 것이나 같다.

내가 그를 낳아서 기를 때, 어쩌면, 나는 생명을 도외시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보다 많았던 것은 일종의 어쩔 수 없음, 일종의 속세 습속을 위배할 용기가 없는 무력함이었고, 그밖에 부모에 대한 임무였다.

내가 그를 갖게 되었을 때, 아주 여러 번 그를 기대와 희망으로 여겼다. 이점은 그에게 불공평하다. 나는 언제나 내가 그에게 생명을 주었다고 생각했고, 나의 사유재산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그를 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와 부딪혔다 해도, 그를 때린다는 것은 더더욱 용납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어느 정도는 결코 내가 그를 너무 아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단지 그가 내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그를 얕보고 모욕하는 것은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은 하면 안 된다.
설령 그가 다른 사람에게 얕보임을 당한다면, 집에 돌아와서, 나 역시 그를 질책할 것이다. 그에게 부여된 모든 불공평은, 나에게 책임이 있다.
우리 사이에 연결된 탯줄은, 나의 관념 속에서는, 이제까지 한 번도 가위에 잘려 모체와 떨어진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