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벌써 50세가 되도록 늙었다.
하지만, 어렸을 적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은 잊을 수 없고, 심지어 나이가 늙어 갈수록 더욱 눈 잎에 생생하고, 바로 어제 일같이 분명하다.
내가 쓴 고향마을은 기억 가운데 남아있는 고향마을이다. 당연히 실제 모양이 전부 훌륭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남학생 급우와 다투고, 또 여학생 급우에게 왕따를 당하고, 몰래 운 적도 있다. 심지어 백지 위에 상대방의 이름을 적고, 상대방을 찢어버리 듯, 그것을 좍좍 찢어버린 적도 있다.
잘 모르겠지만, 그가 카이(凯) 성의 여학생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그 여자애는 그의 취학 전 어린이반 때 급우였다. 그날, 그의 붓글씨 교본이 찢어졌는데, 카이가 찢었다고 했다. 다음 날 나는 그를 데리고 학교에 가서, 곧장 교실로 달려 들어가, 그 여자애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도록 호되게 꾸짖었다. 반에 있던 다른 아이들까지 모두 얼굴에 큰 죄라도 지은 듯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그들 모두 이 사건에 가담했다는 듯이.
지금 와서 생각하니, 이건 그 여자애 혼자 잘못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일 이후, 나는 지독하다는 명성을 얻었다.
그가 중학교에 들어 갈 때까지, 같은 반 급우들은 감히 우리 집에 올 생각도 못했다. 졸업할 때, 그의 급우 학부형이 그의 찢어진 붓글씨 교본을 되돌려주려고, 내 출근하는 길에 들고 왔다. 그의 급우가 전화로 그에게 '너네 엄마 멋있던데. 막상 보니까 지독해 보이지도 않더라'라고 했다. 이 말은 나의 이전 여러 가지 잘난 체 했던 행실을 죽도록 후회하게 만들었다.
너의 어렸을 적은, 행복했니?
나는 안목이 좁고 가슴에 품은 것은 오직 물질적인 공급만을 중시했다. 나는 한번도 학교 안에서 일어난, 그가 혼자서 맞닥뜨려야 했던 사건에 대해서 물은 적이 없다. 그 역시 나에게 터놓고 말한 적이 없다. 어느 때 둘째 아이가 자기 별명을 말하다가, 하마터면 울뻔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네 형은 별명이 있니? 아이가 말했다. "우리 형은 공부도 잘하고, 힘도 세서, 애들이 감히 별명을 못 붙여." "그렇구나."
아주 여러해 지나서, 그가 겨우 말했다. 누가 자기에게 별명을 붙였는데, 들어본 적이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어렸을 때, 나도 별명이 있었다.시골 사람들은 부모와 손위 어르신의 이름을 가지고 나를 조롱하곤 했다. 그들은 우리 부친의 이름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일테면 바람(風)과 마(馬) 소(牛)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물체라는 명칭으로 나를 불렀다. 매번 부를 때마다, 나는 금세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그들이 나를 조롱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나를, 나의 부모와 선대 조상 전부를 경멸하여 일종의 물건처럼 취급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했다. "그들은 모두 나의 성(姓)씨에서 웃음거리를 찾아냈고, 역으로 나도 그들에게서 웃음거리를 잡아냈어요."
남자아이들의 굳셈과 강경함은 어쩌면 여기 있나 보다.
그는 하나의 닉네임이 능히 몸과 마음을 해칠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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