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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가장 멀면서, 가장 가까운. (二) :(最远的,最近的) 指尖

재작년, 그가 병에 걸렸다.

나는 급한 마음에 연락도 안 하고, 밤중에 기차표를 사서, 제남에서 차를 갈아타고 그를 보러 갔다. 기숙사에 가니 숙소의 다섯 명이 모두 인터넷에 빠져있었고, 그 혼자 수업 들어가서 없었다. 나는 기숙사 구역으로부터 계속 걸어서 서문(西門) 강의실 건물로 갔다.

때는 11월, 플라타너스 나뭇잎은 햇볕 속에 빛이 번쩍이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오가는데, 이따금 계회 떡(계화 꽃을 넣고 만든 찹쌀떡) 향기가 풍겨왔다. 문득 그와 함께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조급하기도 하고, 또 그와 만나는 즐거음을 억제하기 힘들어, 문자를 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혹 그를 성기 시계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서서 뜨거운 한 낮, 열기를 참아가며 안을 들여다보면서 기다렸다.

나는 나중에도 그날 오전을 자주 그리워하게 되었다. 도서관 문 앞에서, 키가 크고, 비쩍 마른, 깨끗한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일종의 친근하면서도 아주 먼 느낌이 들었다. 11월 한낮이지만, 8월의 윤택하고 맑은 생동감이 있었다.

마치 그가 집으로 돌아올 때 기차역에 가서 그를 기다렸을 때처럼, 모든 사람이 물결처럼 빠져나가자, 그가 높은 나선 계단 위에서 내려왔다.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번쩍거리는 가운데를 걸어오면서, 나를 보더니 긴 팔뚝을 뻗어 한번 휘둘렀다. 마치 '나 왔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또 '내가 엄마를 보았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여러 해 전, 소학교에 들어갔을 때, 방학을 해서 그를 데리러 가면, 언제나 수백 명의 어린 친구들이 교문 안에서 줄을 서서 밖으로 나와 흩어지면서, 갑자기 밀물처럼 사방에서 몰아닥치는데, 갑자기 눈앞에 그가 나타났다.

그때, 나는 그렇게나 많은 똑같은 교복을 입은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그를 찾아낼 방법이 없나 답답해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가 내 손을 잡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말했다. "엄마, 나 찾을 필요 없어. 내가 엄마를 볼 수 있단 말이야."

그날 시내에 볼일이 있어, 도심을 걸어가고 있는데, 부모님이 눈에 보였다. 그들은 망연히 거기 앉아있으면서, 이따금 주위 사람과 말하거나 혹은 머리를 돌려 주위 사람들을 보았다. 눈앞에 분명히 넓은 세상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나보다. 내가 그들 앞으로 걸어가니, 그들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아빠" 소리치자, 그들은 느릿느릿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곧바로 내가 그들 사이에 앉자 그들은 정신이 돌아와서 내가 그들의 자식임을 알아보았다. 점점 늙어가고, 피로해지고, 마비가 되더라도, 아이는 어디에 있던지 한눈에 알아보는 부모의 자식이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내 눈에는 그들만 보일까?

이유는 그들이 나에게 생명을 주었고, 나를 정성 들여 어른이 되도록 키웠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나를 꾸짔고 때리고 욕했고, 나를 위해 울고 웃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이 문제를 어느 때, 밤에 잠도 안 자고 생각해보았으나, 결국 역시 잘 모르겠어서, 흐지부지 끝냈다.

젊었을 때, 나의 부모는 나에게 충분한 자유를 주었다. 그런 자유는 일종의 실험적이며, 경험적인 성장(成長) 자산이었고, 나는 고통스럽지만 만족했다.

나는 부모가 했던 것을 그대로 배워서, 똑 같이 나의 자식에게 충분한 자유를 주었다. 예컨대, 그가 방학 기간에 집에 오지 않는 것을 허용한다든지, 그가 하기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든지, 그가 연애를 하도록 격려한다든지 하는 것 들이다.

경험해 보아야만, 비로소 생생한 진리를 알 수 있다.

겨울방학 때, 한가한 틈에 대화하던 중, 화제가 장래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자 그가 말했다. "노력이 관건이에요. 부단히 노력한다면, 보다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망망하기만 하고 아무 대책도 없던 그때, 그는 하나의 확실하고 정확한 곳을 향하여 급진적이고, 용감하게 높은 자세를 견지하며 걸어갔다.

생각해보니, 이것은 그의 염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