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나는 인터넷에 들어가, 그 중학교 여자 동창생에게, '언약을 실현시켰다. 노신문학원에 왔는데, 전에 내가 편지로 너에게 말했지 않냐' 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벌써 그 일을 잊었다.
노신문학원, 나는 잊지 못한다!
사실, 전에 인터넷 여러 곳에 접속하여, 노신(鲁迅)으로 명명된 문학 마당을 검색해 보았다. 이곳은 신중국 초에 최고 지도자 모택동 주석의 배려로 대 작가 정령(丁玲) 등, 선배들이 창안하여, 중앙 문학 연구소에서 중국작가협회 문학 강습소에 이르기 까지, 계속 개혁 시기를 거쳐오다가 "노신문학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소련의 명예로운, 세계적 고리키문학원은 내가 소련 문학작품을 읽을 때 보니, 여러 차례 작가 소개 중에 고리키 문학원이 나왔다.
예를 들면 < 백륜선(하얀 기선) >의 작가 아이터마투오프가 있다.
중국에 있는 노신문학원은 여러 차례 이사를 가다가, 캠퍼스가 지금처럼 현대문학관과 함께 있게 되었다.
2009년 겨울, 모친이 세상을 떠난 지 보름 후, 나는 상복을 입은 채 랴오닝 문학관으로 달려갔다. 랴오닝성에 첫 번째로 열리는 중국 청년작가 고급 연구 토론반에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작은 대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등교했는데, 그걸 구둣주걱 삼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 허리를 굽혀 신을 신지 못했다. 중풍에 걸린 후, 제일 먼저 신발 신을 필요가 없어졌고 나는 한동안 신을 신지 않았나.
나중에, 다시 일어서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계속 신을 신고, 질질 끌고 다녔다. 대문을 나서, 공부하러 가려면, 신을 신는 연습부터 해야 했다. 처음에는 한 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가시 박힌 쇠 신발을 신은 것 같이 힘들었다.
나는 뒤뚱뒤뚱 걸어서 노신 문학원으로 들어갔다. 어떤 미녀 시인이 나에게, 걷는 것이 꼭 새끼 오리 같다고 했다.그러나 저러나, 어쨌든, 나는 왔다.
몽상이, 그것도 30년 동인 굳게 지킨 몽상이 실현된 것이다. 나는 이미 귀밑 머리가 희끗희끗한 반백(오십)이 다되었고, 생과 사를 다 겪어보고 이제서 여기 온 것이다.
2012년, 나는 < 마설(马说) >의 고료를 뼈가 굳어가는 병에 걸린 아이에게 기증하였다. 그리고, 적십자사에 가서 사체와 장기를 기증하는 공증을 했다. 당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를 사회에 기부하여 보답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내가 받은 사랑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갚아야 한다.(滴水之恩 涌泉相报)
스승과 친구들은 웃으며 나를 "햇볕 사나이, 햇볕을 만드는 공장장이라고 놀렸다. 나도 웃으며 말했다."나의 웃는 얼굴은 단지 태양빛을 굴절하는 깨진 거울 조각이야. 너무 많이들 사랑을 비춰주어서 내 마음까지 빛나게 되었는가 봐."
또 다른 군대 작가 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의 스스로 향상하려는 노력은, 자석 같이 사회의 사랑하는 마음을 흡인하여 응집시킵니다."
둘째 형은 중풍에 걸린 지 36년 만에 푸른 연기가 되어 먼 곳으로 사라졌다.
나는 책을 읽고 공부하느라 나의 생명을 다르게 변화시켰고, 나의 몽상은 현실을 밝게 비추었다.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노신문학원은 중국 문단의 황포 군관학교(사관학교)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곳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여기는 내가 열렬히 사랑하는 문학의, 내 불구 생명이 반드시 가야 하는 몽상의 역참(驿站)이고, 나는 여기 공부하러 왔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해탈을 하러 왔다. 문학원은 나에게 마음의 병이었고, 하나의 징크스였다. 여기는 보물섬 동굴, 나는 여기 찾아와서 소리친다. "열려라 참깨"
노신문학원 최초의 두 곳, 내 방을 회상해보면, 우리 집 옛날 초기 집이 생각난다. 나는 온돌에 누워 보낸 몇 년 동인 부모를 오직 귀찮게만 했다. 나는 몽상하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늙은 부친은 내가 다시 걸어가게 된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천국에서 아버지의 영혼이 나의 여행, 내가 노신문학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노신문학원에 대해서, 나는 성지 순례하는 정감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무릎 꿇고 엎드려 절한다. 여기는 문학의 성지로, 문학의 길을 따라, 나는 걸어왔으며, 노신문학원을 향한 나의 미래를 알아보았다.
내가 여기 걸어온 것은 떠나기 위함이다. 나는 한 곡의 연가(恋歌)를 30년 동안 부른 것이다. 만약, 나의 생명에 30년의 세월이 남았다 해도, 나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충만했을 것이다. 사람이 몇 명이 왔던지, 온만큼 떠난다.
노신문학원은 그래도 노신문학원이다. 여전히 여기서는 보다 많은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보다 많은 사람을 떠나 보낸다. 떠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그녀를 가슴 속으로 안아준다. 노신문학원이 있으니 우리들은 몽상을 놓아둘 곳이 있다. 모두들 정신(精神)의 마당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에게 정신의 마당이란 바로 노신문화원 같은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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