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에 나는 노신문학원에 통신교육을 신청했다. 이 역시, < 소설 선간(小說选刊) >에서 읽은 학생 모집 정보를 보고 나서였다. 통신 교육원의 간행물을 정성껏 챙겨 놓으니 내 마음속으로, 노신문학원이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2004년 겨울, 부친은 눈송이 처럼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렇게 글을 썼다. 만년에 소뇌위축증으로 병상에 누웠던 부친은, 내가 산(山)처럼 의지했던 분이다. 부친은 아들들의 질병을 마주하고서는, 어찌해볼 방법이 없었지만 부친 자신의 업무를 할 때는 분명한 소리와 색갈이 있었다. 신중국(新中國 : 중화인민 공화국 설립 이후의 중국)에서, 부친은 조직의 파견 명령을 받고 요하(辽河) 양안을 두루 다니며, 여러 초중고교를 설립했고, 마지막으로 고향에 1968년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있는 전일제 종합학교를 세웠다.
부친은 농촌에서 태어나, 사숙에서 기초를 닦았고, 국립사범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진실하고, 모범적인 일생을 살았다. 부친의 중추적 역량은 하나하나의 글자로, 한 페이지의 역사책에 쌓였고, 정장본 책처럼 되었다. 부친의 중추적 역량에는 몇 천년 동안 문명으로 전승된 강인함이 녹아있다.
부친은 교장으로서, 문혁(文革: 문화 대혁명) 기간 때, 한번도 자신이 사제지간 충돌을 당하지 않았으니, 이 기적은 내가 찬탄해 마지않는다.
부친은 성격이 온화하고, 인간됨이 원칙을 고수하는 중용의 길을 갔으며, 부친의 삶과 정신은 가장 중국답다. 부친의 의지는 내 가슴속에 높고 큰 기념비이다!
나는 자립하고 싶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글 쓰는 일 밖에 없다.
하추치 선생은 랴오닝성 작가협회 주석, 류조림(刘兆林)선생에게 편지를 보내, 나를 가까이서 도와주라고 부탁했다. 류조림 선생은 일부러 시골까지 나를 보러 와서, 자신의 생활체험을 써보라고 당부했다. 또한 내 원고를 가지고 가, 발표를 추천해 주었다.
< 만족문학 >에 나의 처녀작 단편 소설 < 여와(신화 속의 여제)의 어머니 >와 < 바다제비- 도시의 아름다운 글 >이 발표되었으며, 산문 < 어머니의 손 > 도 발표되었다.
"이 두 손은 적재량을 초과한 손이다", "만약 어머니가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더라면, 내 두 다리에는 먼지만 수북하게 덮혔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들어있는 나의 글은 < 독자 > 잡지에 실렸다.
산문 < 대어(大鱼)를 타고 싶어 하는 아이 >는 아버지의 사랑을 기념해서 쓴 글이며, 역시 나의 몽상을 표현하였다.
내가 태어나기 전, 황하 물이 불었을 때, 대어(大鱼) 한 마리가 우리 고향 마을 근처에 나타났다. 후에 수차(水车)로 움직이는 하얀 기선이 와서 대어를 찾아내어, 황하로 되돌려 보냈다.
나는 그 대어가 몇 년 후, 출생할 나를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풍에 걸린 후, 온돌방에 누워만 있다가, 벽에 걸 린 년화(年画: 중국인들이 설날 방안에 붙이는 그림)를 보고, < 여러 해, 연달아 고기가 나타나다 >, < 잉어가 등용문에 튀어 오르다 >를 썼다. 거기서, 베두렁이를 입은 어떤 남자아이가 커다란 븕은 붕어 등에 타고 있다.
나도 그렇게, 커다란 붉은 붕어를 타고 다리로 걷는 속박을 초월해 날아오르고 싶었다.
"꿈이 없는 발걸음으로는 푸른 하늘 깊은 곳에 갈 수 없다."
다시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따라 논에 나가 농약을 치고 나서 황하 강변에서 몸을 씻었다.
"그 대어도 틀림없이 나를 많이 생각할 것이다. 내가 그를 생각하는 것 저럼. 그 대어는 시간의 어두컴컴한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금(金) 알갱이 같은 어란(고기 알)을 내 꿈에 심어 준 것은 아버지였다."
이 산문으로 나는 맑고 깨끗한 어린이 문학 신작상을 탔다.
류조림 선생은 심양 시위원회, 시 정부에 연락하여 특별 허가를 받아 대병구조(大病救助:큰병 의료구조)을 받게 해 주었다.
두 다리를 인공 고관절로 교체하는 수술을 하여, 나는 중풍에 걸린 지 18년 만에 다시 일어서게 되었고, 다시 길을 걷을 수 있게 되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운동능력을 잃어버린 그때만큼 고통스러웠다. 이것은 마치 뱀이 허물 벗는 것의 반대 과정을 겪는 것과 같았다.
수술 후, 의사 간호사가 부축해 주는 가운데, 나는 일어섰다.
천지가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확 들더니, 파란 하늘과 푸른 나무들, 모두가 나에게 미소 지었다.
사람이 중년이 되어, 다시 걷는 법을 배우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어린아이도 몇 번 넘어지고, 몇번 구르고 나서야 걸을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나는 넘어지면 안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어렸을 때, 엄마가 부축해주며 스스로 걷는 것을 배우게 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고희(70세)를 넘긴 나이에 모친은 손으로 나를 부축해주며, 다시 걷는 법을 배워주었다.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나는 병원에서 치료과정이 가장 긴 환자였고, 75세의 모친은 최고령 간병인이었다. 모친은 나를 보살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환우들도 보살펴 주었으며, 간호사들을 도와 바느질도 해주었다.
모친의 여윈 손은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나를 부축하고 만리장성에도 올라갔었다. 중앙 6부 위원회에서 거행하는 신농촌 문명 건설 -----"100명의 농민작가, 100부의 농민작품"에서 류조림선생은 이 부분 책임자인 중국 작가 출판그룹 지도자 아이커바이얼.미지티(신장성 출신 작가. 하사크족)에게 나를 추천하여 중국 사회출판사가 나를 위한 문집 < 나의 고향 마을 >을 출판하게 해 주었다.
연로한 모친이 나를 부축하고 북경에 가서, 농민작가 대표회의에 참가할 수 있었으며, 이것은 집을 떠나 북경까지 간, 나의 첫 번째 먼 여행이었다.
노신문학원은 북경에 있다.
그곳은 내 마음속의 신성한 문학 성지였다. 하지만 일정이 너무 빡빡하여, 노신문학원에 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노신문학원괴 내가 이미 매우 가까이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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