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문학원 본관 앞 탁 트인 안채 뜰은 대단히 이채로워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정면에 강철 와이어에 매달린 노신의 상이 있고, 양쪽 툇마루에는 현대문학 명저에 이름을 남긴 거장들의 초상화와 이름이 줄지어 있어, 참으로 장관이고, 놀랍다.
또 현대문학관에는 현대 문학 명저에 나오는 인물 삽화를 전시한 화랑이 있다.
기숙사 내방 창가에서는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데, 매화나무 숲에는 큰 걸음으로 전진하는 형체가 있다.처음에 나는 그것이 살아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야 그것이 조각상임을 알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둘러보면 추도분(邹韬奋 중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기자)이 보이고, 정원에는 선배 대가들의 조각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수강생마다 모두 자기도 미래의 조각상이 되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 안을 돌아다니다 보니, 갑자기 그들이 비에 젖었다 햇볕에 말랐다 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방금 노신문학원에 왔지만, 마음속으로 그녀와 헤어지게 되면 어쩌나 벌써부터 겁을 내는 것 같다.
캠퍼스에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 노신문학원이 지금은 이런 모습이지만, 미래에는 아마 변할 것이다. 나 역시 변할 것이다!
노신문학원, 너에게 나의 생활 태도를 말하고 싶다.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을 사철생 선생은 이미 확고하게 말했다. 그는 내심을 향해, 매우 깊이 파 들어갔지만, 나는 외부세계를 향해 탐색하고, 의논하고 싶을 뿐이다.
북경에 오니, 나도 사철생처럼 지단공원에가서, 느껴보고, 깨닫고 싶어졌다.
노신문학원이 창립된 지 70여 해, 문학은 영원하고 나도 영원한 작업에 참여했다.
문학, 이것은 내가 전생에서부터 가지고 온 꿈이다. 그녀는 나에게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준다. 하지만 그녀가 나에게 준 고통은 병든 고통보다 훨씬 많다. 지금까지, 여전히 행복하기 때문에, 더욱 고통받는다.
병으로 오는 고통은 운명이다.어둠 속에서, 하늘의 뜻으로 나는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문학의 고통과 즐거움은, 심하게 말하면 고통은 크고, 즐거움은 작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나 자신이 적극적으로 추구해 왔다. 나의 밖으로 드러난 변화된 즐거움은 어느 누구나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문학 몽상을 받아들이느라 가슴 졸이며, 차에 깔리고 발버둥 쳤다. 이것은 오직 나만의 가장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체험이다. 예를 들어, 내가 자유자재로 걸을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오직 스스로 다시 일어서고 싶은 내 마음은 너무나 분명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문학을 포기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더라도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병으로 인한 고통만 받아들이면 된다. 문학 이상을 추구하지 않아도 되고, 정신적 형벌을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노신문학원에 와서 도착 보고를 하기 전, 나는 일부러 혼자 섬서성(省)에 가서 백록원에 올라가서 전충실 선생의 혼(魂)에 참배했다.
나는 장편소설 < 백록원 >과의 인연 때문에 겨우 문학계와 접근할 수있었다. 백록원의 저자 전충실 선생은 나의 졸저 < 머슴 살이 >의 추천 글을 써 주었고, 내가 엮은 < 선양 장애인 문학 >의 제목을 써줌으로, 선배로서 나의 일과 사업을 밀어주었다.
나의 인생은 사랑이 차곡차곡 쌓여저 이루어졌다. 노신문학원에 대한 사랑은 나 자신의 정신적 고향에서 발원하였다. 사랑과 아낌에 의해서 나는 가까스로 현재의 내가 된 것이다.
옥란화 꽃잎을 밟는, 나와 학우들은 똑같은 수강생들이다. 다른 것은, 개개인들이 노신문학원에 오게 된 길이다.
남들 같은 연정(恋情)이 없었던 시기에, 나에게는 노신문학원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고, 내가 외출해서 풍경을 구경 다닐 수 없던 시절에, 나는 노신문학원의 풍광을 간절히 상상했다. 나와 손잡은 시간은 왔고, 또 손잡았던 기억은 갔다.
노신문학원이라는 몽상은 완성되었고, 다시 새로운 몽상이 시작되었다. 후반부 인생에서, 나의 염원은, 내가 노신문학원의 한 구루 꽃나무가 되는 것이다.
고향의 강, 물결위에 태양빛이 반사되면, 강이 온통 붉게 물든다.
물방울의 사랑은, 강에서 용이 튀어나와서 중국 중원에 날아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는 스스로 물방울, 그것도 한 마리 작은 물고기 같은 물방울이라고 상상한다. 집 문 앞 작은 못에서 출발해서 여러 강언덕을 마다하고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에 보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흘러가는 세월 밑바닥에 누워, 세월이 나를 갈고 닦게하고, 나를 조각하게 하고 싶었다.
기차처럼 흐르는 물, 세월 가운데 작은 배, 거기에 나를 싣는다. 아내가 좋아하는 한마디 말이 있다. "배가 산 앞에 이르면, 새로운 물길이 생겨난다." 여기서, 멀리 사라졌던 세월이 부활할 수 있다. 노신문학원이 나를 위해 20년이란 세월을 삭감시켜 줄 수 있을까?
노신문학원은 나의 18세와 36세를 가위로 잘라 연결시켜서, 한데 모아주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이 날까? 아니야, 꼭 그런 생각나야 해!
노신 문학원은 기나긴 여행길의 주유소이다. 노신문학원을 통한 길에, 사랑하는 마음을 기진 개개의 사람들이, 나의 인생 이야기에 하나하나의 이정표를 만들어 주었다.
노신문학원, 여기로 거슬러 흘러간 나는, 작은 물고기 같은 물 한 방울, 나는 스스로 빛을 발산한다.
나는 노신문학원에 이름을 올리기만 하고, 세월에 묻혀버린 한 사람이 될까 두렵다.
나는 한 개의 작은 물방울, 하늘가에 걸려있는 무지개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 扛住 >에 있는 글.
작가 赵凯 : 1970년생 농민작가. 랴오닝 작가협회 7회 문학작가. 중국 10대 장애인 우수작가.
대표작, 천안문 앞에서의 감은(感恩), 내 고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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