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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내가 지단(地坛)에 간 것은 오직 너를 보려고 간거야 (4/5) - 杨海蒂

 

 

"생계를 위해 작품을 쓴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강요된 일이지만... 뜻 밖에 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을 수도 있다.
우직한 나 사철생도 아직까지 돈과 명성, 이 두가지를 싫어할 만큼 순결하지는 않았다. 하물며, 돈은 '병이 심각한 나의 육신'을 부양시켰고, 명성은 빈약한 허영을 지탱시켜 주지 않았던가? 나의 나약한 마음이 점차  강건해져야 하는 여러 순간에서 , 나는 명성의 황당한 일면을 확실히 보았다...."

"타인의 선의(善意), 혹은 나의 위장, 혹은 어떤 스타일의 오랜 습관인 미화(美化)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찬가(贊歌)이다....
나는 사실 작가가 되는 것이 맞치 않는지 모른다. 기껏해야 운명이 나를 이 길(이와 비슷한)로 데려왔을 뿐이다....
좌우가 아득히 멀더라도 언제나 가야만 하는 길은 있다. 이 길은 더 이상 다리로 갈 수 없는 길이고, 펜으로 찾아가야 하는 길이다. 이렇게 찾아다니다 보니,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제일 조급했던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도 겨우, 글을 쓰는 작가인 셈인데, 그건 어떤 학문 괴도 관계없다. 학문이란, 꿋꿋하게 연구해야 하는 것이고, 특히 공인이 필요하다. 수학, 철학, 미학, 또 문학, 이런 것들은 모두 시끄럽지 않은 일이지 않은가?

취추바이(瞿秋白 ;구추백)가 떠오른다. 그는 < 쓸데없는 말 >이란 글에서 고귀한 자성(自省)과 위대한 겸손을 보여주었다.

양쪽 콩팥이 모두 괴사 하고, 요독증으로 하루 걸러 한 번씩 병원에 가서 투석을 받는 것은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철생은 21세 때, 가장 고통스러웠던 그 세월을 견뎌내었다. 그러고 나니, 설령 사망의 위협과 마주한다 해도, 사철생으로서는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당시, 병원의 왕주임은, 하루 종일 고통스러워 삶의 의욕을 잃은 그를 위로했다. "그래도 책을 보거라. 너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니? 사람이 하루를 살더라도 헛되이 살면 안 되는 거야. 장래에 일도 해야 하는데, 바쁠 때는 잠깐의 시간도 없을 거야. 지금 이런 시간을 헛되히 보낸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나중에, 그 의사는 이렇게 그를 평가했다.
"사철생은 의지가 굳고, 지혜로우며, 특히 인품이 뛰어난 사람이다."
수십년의 온갖 풍파가 지나간 후, 사철생은 이미 인간세상의 일체의 고난, 재해, 재난에 대하여 마음 편히 대할 수 있었다.
"내 직업은 병이 나는 것이야. 나머지 여가 시간에 글을 쓰지."
그는 웃으며 말했다."투석을 받는 건 바로 출근하는 거와 같지. 어떤 때는 번거롭지만, 의사 간호사들이 매일같이 출근하는 걸 생각하면, 나는 그래도 일주일에 삼일만 출근하니 그들에 비하면 얼마나 좋아?"
그는 50세 생일 축하연 때, 작가 친구인 진촌(阵村)에게 말했다. "독수리도 나이 오십 먹으면, 건강은 필요하지만 장수(長壽)에 대해선 말 안 해."
이 유머는 사람들을 마음 아프게 했다.
"유머는 인생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말이다.

영혼의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데 이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운명의 깨우침이다.

< 병(病) 틈에 붓을 꺾다 >는 투석을 받는 중 휠체어에서, 혹은 수술대 주변에서 쓴 책으로 꼬박 4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 썼다.
"병이 든다는 것은 생활 체험 중 하나다. 심지어 새로운 국면을 여는 순례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병이 드는 경험은 만족을 알아가는 한걸음 한걸음이라 할 수도 있다. 열이 나면 비로소 열이 없었던 나날이 얼마나 개운했던지 알게 된다. 기침을 하면, 비로소 기침 안 할 때, 목이 얼마나 편안했던지 알게 된다. 휠체어에 앉는 순간, 나는 언제나 생각했다. 직립보행을 할 수 없다면 어찌 인간의 특징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 나는 암울한 기분이 들었다.
또 욕창이 발생하자 연이어 며칠 동안 이리저리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단정히 앉아있던 나날들이 사실 얼마나 깔끔했었던지 알았다.
나중에 다시 요독증을 앓게 되자 늘 머리가 어지러워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지난날들이 더욱 그리워졌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사실 매시 매초, 우리들은 언제나 행운아들이다. 왜냐하면 어떤 재난 앞에도 언제나 "더욱(更)" 이란 한 글자를 덧붙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깨달음은 명철한 생각을 개인의 살아있는 체험에 융합시켜서, 우리들에게 작가의 겸손함과 감사하는 마음, 부드러우나 강인함을 보게 하고, 우리들이 알도록 깨우쳐 준다.
행복과 불행은 사람의 느낌에 달려있다. 바라는 것이 작고 적게 구하면,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마음, 감사하는 마음, 화목한 마음을 갖게 되어, 마음의 평안과 진정한 항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 아가멤논 >에 명언이 하나 있다.
"지혜는 고난을 경험하면서 얻게 된다." 당연히, 모든 고난에서 지혜와 덕행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면, 고난, 가난, 병의 고통은 정신의 퇴폐, 도덕의 타락에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반드시 큰 고통이 있어야, 큰 깨달음이 생기고, 큰 깨달음이 있어야 큰 자비심이 생기며, 큰 자비심이 있어야 비로소 큰 지혜가 생겨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고난을 통과해야 기쁨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사철생에게, 쾌락은 당연히 행운의 결과가 아니었고, 일종의 덕행----영특하고 용맹한 덕행이었다.
덕행의 견인 아래, 그는 즐거움으로 고통과 균형을 맞추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혼의 평온함, 인생의 자족감을 얻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권하기를 불당에 가서 좋은 향을 피우고, 부처님에게 복을 내려달라고 쉬지 않고 빌면 혹시, 나에게 여러 가지 건강을 줄지도 모른다고 했을 때 나는 망설였다. 향을 태우러 가서는 그런 요구를 하지 말아야한다. 운명이 너에게 무슨 빚을 졌다고 여기면 안 된다.

오직 미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만을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