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도, 하루 종일 죽음의 언저리를 넘나들던 이 소년은 결국 고통 속으로 가라앉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오히려 고난을 발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작품을 쓰는 것으로 그는 생활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았다.
정신적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았으며, 생명의 존엄과 삶의 환희를 찾았다.
"작품을 쓴다는 것은 바로 살 길을 찾기 사작한 것이다." 사철생은 솔직히 말했다. 작품을 끊이지 않고 발표하게 되면서 연이어 상(賞)도 탔다. 그는 의지와 사상에 의지해서 우뚝 서기 시작했으며, 한 사람의 문학의 스트롱맨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살 길을 찾은 것 외에도, 당연히 무언가 추구하고, 무언가 가치를 느꼇다. 천천히 일을 하였고, 그러자 천천히 삶의 재미와 가치가 생겨났다. 그는 말했다." 한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은 그 의의와 필연성이 매우 크다."
인간은 이 세상에 가치를 부여하고, 생명에 의의를 부여한다. 또 인간은 생존의 의의가 필요하한데 그것은 바로 생명의 품질이다.
이미, 사철생은 소설 < 생명은 거문고의 현과 같다 >를 썼다. 거기서 맹인이 자신의 황당한 인생과 맞서, 숙명적 투쟁을 통하여 생존의 가치와 의의를 얻는다는 내용을 썼다. < 허 삼다의 순환 논증 >에서, 그는 기왕의 생명의 의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고, 동시에 해답을 내놓았다. 어느 누구라도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사람마다 모두 잘 살아지지는 얺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모두가 스스로의 일종의 의의를 확립할 수는 없기 때문이며, 또 영원히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향해 가기 때문이다.
맞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올 때는 주먹을 꼭 쥐고 오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주먹을 좍 펴고 간다. 인생 마지막에 도달하면, 직위, 지폐, 집, 차 등 모두가 공허해기 때문이다. 모든 공명, 이익과 관록, 일제의 부귀영화가 모두 연기처럼 사라지게 된다. 기왕 죽는 것을 피할 수 없고, 부인과도 결국 이별하게 될 거라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전심전력으로 사랑하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끊임 없이 훌륭한 일을 창조하는 것일까?
나는 아마도 생명이라는 은혜는 진귀하고, 사랑은 값을 헤아릴 수 없으며, 인류가 창조한 아름다움은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언제나 멀리서 볼 수록 아름답고, 볼수록 자기의 못생기고 약한 것이 보이고, 점점 끝이 없어 보이고, 볼수록 한계가 보인다. (사철생의 말)
우리는 당언히 전과 다름없이, 있는 힘을 다해서 물질이 아닌 이상(理想)을 추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상만이 생명에 의의를 부여하고, 이상만이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늪 같이, 점점 우리의 이상을 가라앉게 하고, 우리를 날마다 범속하게 만든다. 시간은 모래시계 같이, 끝없이 우리의 기억을 여과시켜,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가 버리는 것을 개의치 않게 만든데. 하지만 혜안을 가진 사철생은 하나하나의 지나간 일에서 하나하나의 조각들을 채택하여 글을 썼다.
감동적인 이야기, 생각해 볼만한 감정, 세상에 알려야 할 사람.
절, 교회, 유치원, 고향..., 불교 음악, 경 읽기, 종소리;
승려, 아들 딸, B 선생, 장자(庄子), 샨샨(사람 이름), 외할머니....
그의 작품은 마치 한 폭 한 폭 정성껏 조각되고 잘 다듬은 세필화 같다.
느릿느릿 독자의 눈앞에 펼쳐져서, 사람을 동경하게 만들고, 황홀하게 만든다.
이런 지나간 일들은 따뜻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그의 펜 아래 옛일을 떠올리지만, 슬프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소년의 경망스러움, 청춘의 아름다움, 젊은이의 몽상, 운명의 변화무쌍함, 역사의 부침, 인간의 온정, 친구와 우정, 반성과 참회.
이런 것들을 그는 일관되게, 순수하고 이름답게, 소박하고 수수하게, 평온하고 지혜롭게, 침착하고 힘 있는 언어로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어느 때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어떤 때는 속된 세상의 핵심에 다가가면서, 오래된 일로 희석시키며, 함의가 깊고, 길게 이야기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21세가 되던 그해에 "내가 죽지 않았던 것은 전적으로 친구들의 우의 덕분이었다." "그때 사신(死神)과 멀리 떨어지게 된 것은 친구들이 그렇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좋은 친구들이란, 늘 책을 들고 병원에 찾아왔던 그의 하방 때 같이 고생했던 지청(知靑: 지식 청년) 친구들 외에도, 어릴 때 친구들, 그리고 장자(莊子), 샤 오헝(小恒)도 있는데 이들도 어릴 적 친구라 해야 할까?
영혼이 범속을 초탈함으로 해서, 그는 안목이 높아졌고, 자기의 속세에서의 운명을 내려다 보았다.
"이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겁이 많고 나약하다. 천성이 우매하고 완고하니 반드시 인간세상으로 와야 하는 연유이다.", "불구는 "금생의 징벌과 전생의 악행"이라고 썼다.
게다가 반성을 잘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자기의 영혼과 마주 했을 때, 낙담하고 의기소침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그날의 행위는 조금 교활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추악했을까? K (왜소하고 비쩍 마른 끔찍한 이이) 같은 사람을 끌어들인 셈이 아닐까?"
"며칠 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학교에 와서 나에게 알렸다. 할머니는 서운한 거 하나 없이, 편안하게 가셨어. 나는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곧 나는 알았다. 이 긴장 풀린 한숨은 왜 일까?
양심, 모든 것이 명백하다.
하지만, 명백히 인간 본성의 죄악에 가로막혀서였다고 할 수도 없다.
몇 년 이래, 나는 계속 그 죄악의 순간에서 도피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을 영원히 도피할 수도 없다." "나는 천지신명께 가도 했고, 지단(地坛: 지신을 모시는 제단)의 오래된 담벼락 아래, 두 손을 맞대고, 경외심을 가득 담아(사실은 실리적인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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