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할 때,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았다.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보아라, 이 사람을!" 그와 나는 얼굴을 마주하고 있고, 네 개의 눈이 서로 바라본다. 우리는 이렇게 가까이 있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다. 당신은 그를 보고, 그도 당신을 본다.
당신은 그에 대해서 아는가? 아니, 별로 잘 몰라.
당신은 그에게 만족하는가? 아니 별로 만족하지 않아.
뒤집어, 그에게 물어도 마찬가지 일게다.
사람은, 30세 이전 용모는 타고 난 것이고, 30세 이후의 용모는 자기가 만든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오관(五官: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은 한 손바닥 크기에 순서대로 배열되어있다. 하지만, 세상 수천수만의 사람들 중에서 두 사람의 용모가 완전히 같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왜 일까? 얼굴에는 한 사람의 경력과 수양이 씌여있는데, 그의 생활습관, 음식, 수면, 노동, 애정, 욕망, 금전, 지위, 명예, 등등 모두 얼굴에 써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경력이 정확히 같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용모가 똑 같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뛰어난 점쟁이가 한사람의 얼굴에서 그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면, 한 권의 전기를 읽는 것과 같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거울 속에서 하얀 이발가운을 둘러쓰고 앉아있는 사람을 가늠해보는데, 보기만 해도 그의 역사를 모두 안다. 하지만 나는 왜 그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까? 이것이 문제다.
자기 자신을 타인의 입장이되어 자세히 보거나,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을 자세히 보면, 자기 자신이 바로 낯선 숨결을 내뿜고 있을 것이다. 이 사람, 나는 그와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는데, 나는 그의 습관을 알고 있으며, 그의 결점도 알고 있다. 그가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도 알고 있고, 그의 내심의 비밀도 꿰뚫고 있으며, 그가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불만인지도 확실히 안다.
이 사람, 당신이 보기에는, 그는 벌써 운명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고, 양호한 교육을 받았으며, 특정한 재능도 있다. 만약 그가 충분히 근면했고, 충분히 노력했더라면, 그는 아마 지금보다 훨신 크게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많은 세월을 헛되히 보냈고, 자주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빈둥대었고, 장기바둑을 두고, 등등. 이러니 어찌 다른 사람이 그에 대하여 만족해하겠는가!
이 사람, 그는 마치 그가 무궁무진한 미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노는데 정신 팔렸다. 사실 그도 시간이 쏜살같이 사 라저 가고, 결코 헤프게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는 했다.
만약, 그가 평균수명만큼 살 수 있다면, 그는 대충 2만 시간이 남아있다. 거기서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진정한 일 할 시간은 일만 시간도 채 안될 것이다. 이건 매우 겁난다. 형제여, 일만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더라도, 하루하루를 아껴야 한다. 하물며, 일만 시간은 길지 않은 시간이니 더욱 아까워해야 한다.
보이라, 그가 이렇게나 진지한 것을!
자기 자신을 자세히 보면, 유쾌한 일은 하나도 없다.
이 사람, 그는 보기에는 물처럼 고요하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대단히 혼란스럽다. 이건 희극적 순간이고, 그는 지금 놀라고 의아해한다. 당신은 그가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는 전에는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쓸 때, 그는 어쩔 수 없이 그의 황폐한 24시간을 마주해야 했다. 그는 창피했다. 그는 도피했다.
"무얼 도피해?" " 생명의 의지에서! "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만물은 모두 의지가 있다. 한 톨 씨앗의 의지는 바로 그의 기적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것이다. 씨앗의 최대 비전은 싹을 트이고,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씨앗은 이 과정을 완성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씨앗의 의지이다.
사람의 의지는?
바로 최대한 생명의 기적을 창조하는 것이다. 생명의 비전을 실현하는 공훈과 업적을 완성하고, 창조 비전의 일제를 창조하는 것이다. 만약 게을리한다면, 그건 생명 의지를 모독하는 것이다. 그건 바로 생명의 부정이다.
이 사람, 그는 지금 이발의자에 억눌려 도망칠 곳이 없다. 그는 그렇게 도움도 못 받고, 그렇게 기가 꺾여서, 마치 세계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 같다.
이발사의 가위가 차칵차칵 머리에서 소리를 낸다.
지금은 월요일 오전, 이발소 전제에서 당신이 유일한 손님이다. 이발소는 조용하기 그지없는데, 어디서 편안한 음악을 틀었는지 모르지만 조용한 음악이 훨씬 평온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얼굴 앞에 밝게 비치는 큰 거울은 공간을 증폭시켜, 환각을 느끼게 한다. 당신의 시선은 냉엄하여 마치 판사 같다. 기이한 공간이다.
일순간, 당신은 주위의 문제가 모두 사라진 것같이 느낀다. 유일하게 남이 있는 것은 오직 당신, 그리고 거울과 거울 속의 사람이다. 당신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그를 심판한다. 혹은, 당신이 그의 심판을 받는다. 얼핏 보기에 세상에서 제일 엉터리 재판 같다.
하지만 사실은 제일 진지하고, 제일 엄격한 재판이다. 아무도 당신보다 더 많은 증거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고, 아무도 그 사람 보다 더 많은 당신을 목표로 한 증거를 가지고 재판을 진행시킬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풍부하고 다채로우며, 색채가 화려하다.
우리는 시시각각 영상, 정보를 접한다. 우리는 잠시도 자신을 한가하게 놓아두지 않으며 TV를 보거나 신문을 들썩인다. 인터넷을 하거나 웨이신을 들여다보고, 가상세계와 잡담을 나누거나 아주 먼 곳의 낯선 사람 혹은 이웃과 공허한 한담을 나눈다.
우리는 점점 더 자기 자신과 마주 대하기 어려워졌다.
아무것도 안 하고, 어두운 가운데 반시간 이상 앉아서, 허공을 마주하고 침묵 속에 생각에 잠기는 것을 몇 사람이나 해 보았을까?
미국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는 < 대어를 낚다 >라는 책을 썼다. 그는 책에서, 혼자서 잠재의식의 깊은 바다에 빠져들어야 대어를 낚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자주 조용히 앉아 명상을 하고, 내재의 소리를 경청하였다. 그는 말했다. "창의(創意)는 물고기 같다. 만약 당신이 작은 고기를 잡고 싶다면, 얕은 물에 있으면 된다.하지만 대어를 잡고 싶으면, 반드시 심연에 빠져들어야 한다." 또 말하기를"당신이 내재(內在)에 빠져들면, 당신 자신이 거기에 있으니, 진정한 쾌락도 바로 거기에 있다."
나는 데이빗 린치의 방법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왕양명(王陽明)은 지행합일(知行合一: 지식과 행동이 서로 일치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행합일을 실행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나의 제일 큰 적은 바로 나 자신이다.
지금 이 시각, 큰 거울 앞에서 나는 피동적으로 나 자신을 마주 대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을 보았고, 또 다른 나를 보았다.
나는 매달 언제나 이발을 하고, 매번 언제나 거울 속 사람을 자세히 본다.
이것 빼고는 나는 나 자신을 자세히 보는 일이 거의 없다.
설령 매일 아침, 면도를 하면서 거울을 마주 본다 해도, 자세히 보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수염이 깨끗이 깎였나 볼 뿐이다. 내 얼굴에 대해서는 보고도 못 본 척한다. 나는 나를 자세히 보는 게 어색하다.
공자는 하루 세 번 자기를 돌아보라(一日三省吾身) 고 하였다. 나는 그러지 못하고, 한 달에 딱 한번 반성한다. 게다가 그것도 피동적으로.
사실,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는 근본적으로 거울이 필요 없다. 단지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으면 된다. 필요한 것은 오직 혼자 있는 시간이며, 오직 용기이다.
보아라, 이 사람을. 그가 반성할 용기를 갖고 있기 바라면서.
原載 < 인민일보 > 2015년 11월 25일 "大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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