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 수필, 단편소설

패옥, 댕그랑 소리.(环玉叮当) 邵丽

 

나는 점점 진실한 물질들에 깊이 빠져 들었다.
나는 경제적인 가치가 거의 없는 보석 혹은 나무토막들을 묶기 위해 매듭법을 배우려고, 전국을 돌아다녔고, 심지어는 국외에서 까지 각종 작은 장신구들을 수집했다.
나는 아무 목적도 없는 수공예 장인으로 변했고, 실제로,나는 점점 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나는 이런 물질들에 깊이 빠져들었고, 결국 혼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물질은 변하지 않는다. 어느날 내가 죽더라도, 그것들은 여전히 살아서 우리 아이들 생활에 들어가 있거나, 혹은 새로운 주인의 생활에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부처가 꽃을 꺾자,가섭존자가 웃었다.
어떤 사람은 가섭존자가 미소 지었다고 썼으나, 미소보다는 결국 웃었다고 하는 것이 낫다.
도(道)는 하나에서 나오며, 깨달음 하나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1993년, 나는 처음 신장(新藏: 신장 위구르 자치주)에 갔는데 포도구의 포도와 다반청 아가씨의 땋은 머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어떤 친구가 나를 옥(玉) 가게에 데리고 갔는데, 나는 그 가게에서 무려 5시간이나 머물렀다. 다음날 카스(咯什)에 갔을 때, 나는 다시 직접 옥 가게에 갔다. 당시의 느낌을 묘사할 방법이 없는데,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온전히 회상하기 위해, 조자(粗瓷: 유약을 바르지 않고 저온에서 구운 자기), 청화 완(碗) 이야기를 하겠다. 식사 때 젓가락을 놓는 자기 받침-----어머니를 따라 친구 집에 갔을 때, 백조가 그려 있는 자기 젓가락 받침이 너무나 좋아서 한 개를 몰래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 밤에 이불속에 숨어서 그것을 감상하였다.
어릴 때 생활은 금 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더구나 옥기(玉器)는 없었던 시절인데, 그때는 조직적으로 또 대규모로 문화를 없애던 시기였다. 온통 잿더미가 되었고, 심지어는 책에서도 이런것들이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아름다운 화전옥(和田玉:신장성 화전 지역에서 나는 옥) 앞에 섰을 때, 몰려드는 감동! 그것은 정말 첫사랑처럼, 갑자기 닥쳐와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경악했다.

여인은 정신적이다. 하지만 또 제일 물질에 항거할 방법이 없기도 하다. 하물며 옥(玉)이라니! 그것도 화전 옥(和田玉) 이라니!

1993년, 계란 크기의 화전옥 원석은 대개 2~3천 원(元) 정도 했다. 거기에 백색 정도, 매끄러운 정도, 이런 것들이 모두 가격 상승 요인에 속했다. 나는 5천 원(元)을 주고 나 혼자 곧은 평면 팔찌를 하나 샀는데, 넉넉하고 묵직했다. 그때는, 자기가 팔찌를 찼다고 불평하는 여성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구시대의 산물이니, 두 번 죽어도 해방의 이름으로 같은 ---- 그녀들은 돈을 많이 쓰더라도 수입 손목시계를 사 갖거나, 혹은 금빛 번쩍이는 팔찌를 산다.
나의 옥팔찌는 긴 시간 속에 벼개머리 맡에서 조용히 누워있어야 했다.

나와 같이 있은지 오래되었으니, 그 팔찌는 나의 환희와 애상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시각마다, 나는 그것의 귀속을 그리워했다. 먼 여행을 떠나는 날에는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 그것이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되뇌었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그것을 위해서 짧은 시를 하나 썼다.

패옥의 댕그랑 소리
속세의 마음을 끌어낸다
하나의 옥팔찌
손과의 틈
그건 우리들이
제일 면밀하게 남기는 말

20여년이 지나서, 신장의 화전옥은 값이 백배 이상 뛰었다.
청해옥(청해성에서 나는 곤륜옥)과 남양의 독산옥도 가격을 보면 깜짝 놀랄 만큼 올랐다. 당초에 나는 수장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고, 많이 획득하려면 자기 욕심껏 하면 되었다. 결과적으로 우연하게 생각도 안 한 큰돈을 벌게 된다면, 별의별 공도 다 들일 것이다. 어떤 친구는 부러워 부러워 죽겠다고 하며,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지만, 내가 어찌 그렇게 오랜 세월 후를 보는 안목을 가질 수 있겠는가?

마음이 갑자기 썰렁해진다. 만약 오직 가치 때문이라면, 나는 안목이 긴 것일까 짧은 것일까? 이런 돌에 대한 사랑은 전혀 느낌을 다르게 만든다. 누가 자신의 뼈의 무게를 잰다는 말인가?

오늘에 와서, 취옥이든, 침향이든, 밀랍(蜜蠟)이든, 벽옥이든, 또는 남홍,진주, 산호, 녹송석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생명을 다하여 보석 이야기를 썼다. 거기에는 오히려 여러 가지의 누가 상전벽해가 되는 걸 알까 하는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감탄이 절로 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 그중 재마 나는 이야기를 말하려다, 그만 둔다.

제일 맞는 것은, 나는 많은 귀중한 것들을 날려버렸다.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마침 가치가 없는 것들 뿐이다.하지만 나는 아직도 기쁨을 느끼는데, 이것이 나와 그것들의 인연이다.

가격을 좋아한다는 것은 결코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비추어 각종 물질에 가격표를 붙힌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전히 그것들일 뿐, 설마 그것들이 가격표를 풑인디고 해서 또 다른 것일 리 있겠는가?

물질에 가격을 정하는 것은 사실 욕망의 표시 가격이다. 하지만 나는 삼엄한 욕망의 틈새에서 어떤 기회에 움직여도 물가가 등귀한 물건과는 시종 비켜갔다. 나는 진심으로그것들의 품질만 바랐지 그것들의 가격표를 바란 건 아니다. 만약 생활이 곤궁해져서 장식물들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한다면, 틀림없이 마음이 몸 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시각, 손바닥 안의 오목한 곳에 쥐고 있는 것은, 물거품이라고 불리우는 팔찌이다. 그것의 아름다운 정도는 비취 못지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파랑 꽃이 흩날리는 것 같은 최상품 비취이다.
작년부터, 나는 고비사막에서 자란다는 보석을 찾기 사작했다. 그것은 고비 옥(戈壁玉)이라고 불리는 장식품이다. 그것의 세밀하고 아름다운 정도는 백옥에 견줄만하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의 욕망 때문에 푸대접 받았다.

나는 각종 보석과 나무토막들로 목걸이와 팔찌를 만들었다.
보리수 뿌리, 야자 껍데기, 작은 잎 자단목, 남국(南國)에서 나는 홍두, 감람나무 씨 ---- 어떤 때는 남몰래 기뻐하기도 했는데, 그것들은 자기의 생명으로 내 생명을 확장시켜주었다. 그러니, 내가 어찌 자기의 생명을 기꺼이 바치는 그들을 위해 노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나와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썼다. 어두운 곳에서 천천히 생장하는 힘, 갑자기 이처럼 크고 눈부시다!

일 년 또 일 년, 이렇게 갈고 닦여 나온 생명의 밝음, 이들이 조용히 나를 동반해주고 있다. 내가 노쇠하고 침체되어도 그 정교한 아름다움은 조금도 감소되지 않는다. 그것들을 위해 나도 있는 힘을 다해 스스로 빛날 것이다.

 

原載 < 검찰일보 > 2016년 9월 2일

 

※ 작가 소개: 샤오 리(邵丽) 1965년생 하남성 주코우 출신, 저명 여성 작가.(소설,산문,시가 작품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