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같은 해에 나는 작사가 챠오위(乔羽; 1927~ 산동성 출신)를 인터뷰했다. 그때 그는 이미 작사가 사회에서 "챠오 어르신"으로 추앙받는 원로였다. 별생각 없이 그에게 사신장(谢辛庄)의 시냇물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이것이 생각지도 않게 그에게서 중요한 화제를 이끌어 내었다.
그는 짙은 산동 사투리로 읊었다. "한줄기 큰 강은 물결이 느긋하고, 바람이 불면, 강언덕에 벼꽃향이 실려온다네. 나는 강 언덕에 올라...."
그가 물었다. 어째서 "장강만리파랑관(長江萬里波浪寬: 장강은 물결도 느긋하다)를 이용하지 않느냐?" 그는 TV극 < 상간령 >의 감독 샤멍(沙蒙)이 이 가사에 매우 만족해한다면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한줄기 큰 강"을 "장강 만리"로 바꾸면 기백이 생기긴 하겠다고 하였다. 챠오 어르신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바꿀 수 없어, 바꿀 수 없어! 장강은 특정한 강을 가리키는 말이니까 말야. 장강 변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누구네 고향이나, 다 작은 시냇물, 작은 골짜기가 있는 거 아니겠어? 이 강이 다시 작아져서, 심지어 부르는 이름마저 없다고 해도, 그건 아들 딸들의 마음속에서는 큰 강이고, 일생동안 잊을 수 없는 거야! 우리 집도 강 언덕에 살았지. 언덕 위, 바로 너네 집, 우리 집 문 앞이 그런 작은 시내, 작은 골짜기 근처 아니겠나!"
챠오 어르신의 고견이었다. 사신장의 시냇물도 < 나의 조국 >에 나오는 큰강이 아니겠는가?
작은 강이라는 잠재의식을 갖은 사람에 작가 예신(叶辛)도 있다.
2012년 나는 귀주(貴州)에가서 한 행사에 참가했는데, 휴게실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상해(上海) 청년이 40년 전 귀주의 낙후된 마을 생산대에 지청(知靑)으로 참여했는데, 그때가 21세 때였다고 한다. 당연히 농촌 활동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그의 가슴 속에 있는 작은 강은 신용하(神龙河), 강의 위치는 구이저우와 후난성 경계에 있는 범정산 기슭의 운사촌( 云舍村)이라고 했다. 그가 마을 사람들과 줄을 늘어뜨려 길이를 재 보니, 이 강은 시작점에서 끝부분까지 총 800m로 1km도 안 되는 거리였다.
"황혼 녘이 되면, 맑고 깨끗한 신용하 물 위에 석양이 비춰, 무수한 금빛 동그라미, 은빛 반짝임들을 만들어내는데.... 토가족 마을에는 밥 짓는 연기가 가물가물 올라가고, 닭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지.
마을 바깥에는 논두렁 밭두렁길이 보이고, 울창한 나무 숲이 수은파 산꼭대기까지 가득 한데, 정말 신용하 강변의 경치는 기가 막혔어."
예신은 그의 마음속의 작은 강을 한편의 아름다운 글로 썼다. < 세상에서 제일 짧은 강 >이라는 글이다.
나는 그에게 신용하가 세상에서 제일 짧은 강은 결코 아니다. 우리들의 강은 사신장, 이름 없는 작은 골짜기에 있는데, 기껏 4~500m 길이밖에 안된다...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개회 시간이 되어 그가 강연하러 연단에 올라가는 바람에 말하지 못했다.
또 같은 해, 2012년 깊은 가을, 나와 투아오(凸凹) 작가는 같이 신장(新疆)에 가서 민요를 수집하는 활동에 참가했다. 같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갈 때, 우리는 석양 아래의 타림강을 보았다. 정녕 장대하고 광활한 큰 강! 나는 그에게 작문 제목을 주며, 타림 강에 대한 글을 써보라고 권하였다. 나는 그가 뒤로 뺄 것으로 여겨, 그가 그러겠다고 말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며칠 지나서, 다시 기회를 보아 쓰기 어려울수록 좋은 글이 쓰일 거라고 말했다.
며칠 뒤 그가 나에게 원고를 보여주었는데, 져목은 < 대해로 흘러가지 않는 강 >이었다. 나는 격려하여 마지않았다. 그는 고향인 거마강(拒馬河)에서 천리 떨어진 신의 강, 타림강까지 썼는데, 그의 글에 결국 바다로 흘러가지 않는 타림강에 대한 찬미와 동시에 작자의 고향에 있는 작은 강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스며 있었다.
정(情)은 바로 이런 마음이다. 누구에게나 가슴속을 흐르는 강이 있다.
작년에 나는 우시(无锡)를 탐방했다. 우시, 옛 도시 당코우(荡口) 진에 갔을 때, 의외의 수확이 있었다. 우시를 탐방하면서, "고난을 거칠수록, 평원을 넘을수록 출렁이는 황하 장강"의 음악가 왕신(王莘), 그의 고향은 어디인가? 를 썼다. 사람들은 대부분 천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유명한 < 조국을 찬양하라 >를, 바로 북경에서 천진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담뱃갑 종이에 써서 완성했던 탓이다.
그런데, 그곳은 신중국 성립이후의 집이다. 왕신의 고향은 우시, 양코우이고,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은 옛 도시 당코 우 (荡口)의 북창하(北仓河) 변이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부모가, 그가 6세 되던 해, 먹는 입을 하나라도 줄이려고 어린 뫙신을 당코우의 시덕교회 학교로 보냈던 것이다. 이때부터 책가방을 멘 어린 사내아이가 매일 작은 다리를 건너 맞은편에 있는 학당으로 등교했다. 오후 무렵, 그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북창하(北仓河)에서 뛰놀았다.
만년에 그는 작곡가가 되어 자주고향을 찾았는데, 그는 모교에 기부금과 물품을 기증하고, 무보수로 어린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그는 마지막으로 고향 시냇가에 족적을 남겼다.
우리가 왕신의 금빛 조각상 앞에 서면 기념관에서 " 오성홍기가 바람에 휘날린다"의 선율이 들려온다. 나는 그가 "황하 장강의 출렁임을 건너"의 기본 멜로디를 작곡할 때, 틀림없이 고향에 있는 북창하 시냇물이 그의 가슴속 출렁였을 것이라 믿는다!
생각은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마치 창밖의 눈송이가 흩날리는 것처럼.
이런 밤에 잠이 올리도 없고, 나는 숫제 휴대폰을 켰다. 메시지가 하나 왔다. 웨이신 친구들 중, 전에 나와 함께 생산대에 갔었던 학교 친구들이 물었다.
"이형, 거기 안갈래? 갈 거야, 말 거야? 어디 한번 말해봐!"
"가다니, 어딜가?" "시골 말이야, 사신장에 가보자고!"
나는 금세 알아들었다. "갈게, 갈께 왕대장(王队) 말이니 무조건 충성!"
누구나 가슴속을 흐르는 시냇물은 있다.
금년에 시골 가는 계획은 꽃피는 봄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나와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 모두들 눈이 펄펄 내리던 꽁꽁 언 시냇물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정경이 떠올랐나 보다.
오직 사신장에만 있는 그 시냇물.
내가 청춘을 보낸 곳, 오직 우리만 인정하는...
原載 < 인민일보 > 2015년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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