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년 시절, 산동성 서쪽, 남평원에 있는 고향, 교신(乔辛) 마을은 모두들 수박을 심느라 신바람이 났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버지와 엄마는 동네 사람들처럼 삼 무(1亩:200평, 3 무는 600평) 가량의 땅을 수박밭으로 만들었다. 수박은 봄철에 줄기가 생장하기 시착한다. 우리 집, 3 무의 밭도 연녹색 수박 줄기가 가득했고, 그 아래, 주먹만 한, 파란 줄이 선명한 수박들이 가득했다. 우리 부모는 하루가 다르게 왕성하게 커가는 수박을 보고, 절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수박밭이 누가 지나갔는지, 혹은 어떤 야생 동물이 지나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넓은 부분이 못쓰게 되어 버렸다. 수박 줄기가 끊어져서 엉망이 되었고, 밭에 가득했던 설익은 수박들이 짓뭉개 져서 하얀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었으며, 공기 중에 설익은 수박 냄새가 퍼져 나갔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눈이 벌개졌고, 엄마는 땅바닥에 펄썩 주저앉아 진흙 바닥을 치며 엉엉 울었다.
그날 낮, 아버지는 바로 읍내에 가서 네 개의 굵은 백양나무 목재를 사다가 밭에 말뚝을 박았다. 그러고 나서, 지면에서 사람 키 정도 높이에 대나무 장대를 묶고 나무판자를 덧대어 원두막을 만들었다.
원두막이 너무 높아 아버지는 벽돌을 가져다가 세칸 계단을 쌓았다. 이렇게 하니, 하나의 높다란 수박밭 원두막이 지어졌다.
원두막이 완성되자, 아버지는 원두막 아래에서 담배를 피웠고, 나는 원두막 위로 기어 올라가, 안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와,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3 무가 넘는 수박밭이 눈 아래 들어왔다. 이런 것이 바로 누각의 느낌 아닐까?
나는 아버지가 지어놓은 수박밭 원두막에 감격했고, 그해 여름방학 내내 아버지와 함께 이 원두막에서 지냈다.매일 밤, 어둠의 장막이 깔리면, 부자 둘이서 밝은 달빛을 이용하여, 수박밭 끝까지 가서, 우선 밭 전체를 한 바퀴 순시한다. 그러고 나서 의자를 밟고 원두막에 올라가 부자가 나란히 딱딱한 간이 나무 침상에 눕는다.
밖에는 폭우처럼 달빛이 쏬아지거나, 칠흑 같은 밤의 장막이 드리워지고, 네눈박이 강이지도 따라 들어와 원두막 아래에서 동그랗게 웅크리고 작은 소리로 가르릉가르릉 코를 곤다. 아버지는 명멸하는 담배불 속에서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하고, 하늘 가득한 별빛이 내 얼굴 위에서 깜빡인다.- --- 내 정신은 아주 먼 곳을 헤매고 다닌다. 한 번은 달 위에 있는 상상을했다가, 한 번은 별들 사이를 천천히 돌아다니는 상상을 한다.
여름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원두막의 나무 침대가 삐그덕 삐그덕 흔들린다. 나는 꿈을 꾸는 가운데서도 큰 바다 위에서 파도에 흔들리는 것처럼 느낀다.
그 해 여름, 나의 성장(成長)은 대단히 중요했다. 우리 집 "누각"에서 나는 체험했다.
무엇이 자연의 교향악인지, 무엇이 밤의 어두움인지, 무엇이 벌레들의 향연인지, 무엇이 이슬처럼 짧은 밤기운인지, 무엇이 영혼의 고독과 충실함인지....
15년 전, 나는 평원에 이별을 고하고, 남북이 엇갈리는 경계의 산악지역에 와서 일하게 되었다. 여기 사람들은 북방의 순박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집들은 이미 남방의 정취를 가지고 있다. 산악 지역 산촌(山村)에는 평평한 지붕은 거의 없고, 제일 많은 것이 기와집이다. 기와집의 장점은 쉽게 비가 새지 않는것 외에도 이미 심미적인 정취가 안에 녹아있다---- 하얀 석회 담장, 붉은 기와, 푸른 벽돌, 사람 인(人) 자형 용마루 지붕, 높고 높은 용마루 ----- 하지만 평지붕의 억압 감은 애당초 없다. 설령 지붕을 찌르는 천장이라도 툭 트이고 시원하게 보인다.
산세의 기복에 순응하여 이루어진 작은 현성(縣城), 시내에는 별장이 많이 지어져 있고, 별장에는 당연히 다락방이 있다. 밖에서 보면 뾰족하게 높게 솟았거나 혹은 인(人) 자형으로 경사진 용마루, 용마루 아래 옆으로 서있는 베란다.---- 위에는 하늘 창이 있고, 그것이 바로 다락방이다. 비록 곳곳에 모두 5~6층의 작은 다층 집들이 서있지만, 이 집들 제일 꼭대기 부분에는 역시 다락방이 있다. 나는 높고 낮은 누각 집들의 형상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다락 방안의 어둡고 혼란스러운 이야기들을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또한 친구네 집의 다락방을 들여다 보기 좋아한다. 층계를 따라 올라가면 점점 높아 지는데 높낮이가 고르지 않은 실내 천장은 마치 십 밖에 있는 산 구릉 같다. 친구 집 다락방은 탁 트인 공간이 있고, 간격이 들쑥날쑥하다. 다락방의 설계는 주인의 마음을 표현한다. 혹은 쌓아놓은 물건, 혹은 하는 일, 혹은 거기 사는 사람, 혹은 지붕 사진은 찍거나, 손님을 만나는 차실로 쓸 수도 있고, 넓은 수영장으로 쓰기도 한다. 어쨌거나 다락방은 최고의 내밀한 사적 공간이다.
몇 년째, 나는 이런 내밀한 사적 공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집을 살 때, 걸어 올라가는 수고는 생각지 않고 언제나 사고 싶었던, 고층 누각을 결국 샀다. 가장 좋은 것은 안으로 설치된 층계가 있는 것인데, 빙글빙글 돌아 오르면 다락방에 오를 수 있다. 먹고 싸고 하는 생리적 생활을 마치고, 밥그릇을 물리고 나서, 목욕을 한 다음, 헐렁한 당의(唐衣)를 입고, 다락방에 오른다. 푹신한 담요 또는 소파에 앉거나 누워서 책을 몇 페이지 읽거나, 붓글씨를 몇 자 쓰거나, 차를 데우고, 손님을 맞을 수도 있고 몇 줄기 난을 칠 수도 있다.
피곤하면, 창을 열고 나가, 탁 트인 베란다에서 허리를 죽 뻗어보고, 혹은 노천 등(藤)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어보기도 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한다. 나는 이런 곳이 좋다. 이 다층 건물 위, 높낮이가 비스듬한 작은 다락방이 좋다.
바람 부는 여름날 밤, 베란다에 앉아 있으면, 언제나 내가 들판에서 아버지와 원두막에 누워 수박밭을 지키던 정경이 떠오른다. 그 하나하나의 마음이 일 순간 울렁울렁 떠오르면, 하늘은 왜 그렇게 낮아 보이고, 별들은 왜 그렇게나 손에 닿을 듯 가까운지.... 고향은 또 왜 그렇게 가깝고, 몸만 돌리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지....
그럼, 나의 누각에 대한 이상(理想)은 모두 그때, 소년 시절의 여름과 그 밤에서 시작된 것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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