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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때늦은 각성 ; 迟到的觉醒 (一) : 2/3 向迅

내 생활이 어쩌다가, 갑자기 이처럼 엉망이 되었을까?
이런 망연자실함은 어째서 나의 정신생활에 이런 격렬한 충격을 가져왔나?
그건 앞글에서 분석한 것처럼이건 일련의 연고가 있다. 구멍이 없는데 바람이 들어올 리 없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은, 이립(而立: 30세. 뜻을 세운다는 의미)의 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 그 찬미할만한 새벽은, 때마침, 내가 29세의 일 년에서 최후의 일 개월, 거기서 첫째 날이었다. 적어도 그것이 제일 직접적인 원인이다. 만약 압박하며 다가오는 그 형기(刑期) 같은 생일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걸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을까?

이립의 해, 시간보다 훨씬 날카로운 총알이, 앞쪽의 어두운 밤에서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그건 확실히 내 심장에 명중했고, 나를 땅바닥에 쓰러뜨렸을 뿐만 아니라, 나의 청춘을 한방에 말소해버렸다. 그것은 앞길을 알 수 없는 터널 같았고, 거기다 내가 타고 있는 기차가 바로 소리 내며 동굴의 철궤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 그건 무서워서 벌 빌 떨리는 일 순간이었다. 그것 일체가 캄캄한 동굴에 삼켜지려고 할 때, 오직 톱니바퀴와 철궤가 어둠 속에서 코를 찌르는 불꽃을 내뿜으며 마찰했다.

그것들은 마치 우담화처럼 순식간에 번쩍 타면서 없어지는 불꽃이었고, 우리는 심각하게 체득했다. 이름다운 시절은 한번 가면 다시는 오지 않고, 새로운 서광을 보려면 또 이처럼 힘들어야 한다.

한걸음 내딛기 힘든 어려운 상황에서, 번개처럼빠르게 지나가는 한 달, 나는 시간에 대해서 지나치게 민감해져서, 어떤 사물에서도 다 느꼈다. 게다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발견은, 내가 시간에 대하여 유념하는 것과, 그것에 대한 공포는 가치가 같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어느 만큼 유념하는가는 바로 그것에 대해 마음속에 얼마만큼 공포심을 가지는가 와 같다.

한걸음 더 나가, 내가 연기처럼 사라져간 지난날의 청춘 시절을 아까워하며 추억할수록, 사람을 혐오해서 초조감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것은 더욱 강렬해졌다. 마치 인생 30세가 정말 보기만 해도 뒷걸음치게 만드는 공포의 깎아지른 절벽길을 방불케 했다.

그것은 가장 고통스런 나날이었으며, 가장 사람을 괴롭히는 고통이고, 연옥 같은 것이다. 며칠 후, 나는 두 눈이 쑥 들어가고, 야위어서 뼈만 남았고, 정신이 산만해져서, 전과는 딴사람이 되어버렸다.

29세의 마지막 하루,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캄캄한 하루를 경험했다. 이날, 내가 한 모든 일들은,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광신도와 다름없었다. 초조, 번민, 근심, 고독감, 슬픔으로 온 세상을 잃은 것 같았고, 새벽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고, 태양이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하루종일 사무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을 했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걸어 다니는 좀비처럼 길고 긴 거리와 골목을 누비고 다녔고, 나의 모든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다. 거리 한 모퉁이에서 나는 한 무리의 떼강도가 내 신상에서 유일하게 남이 있는 한점 청춘마저 탈탈 털어가려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했다.

황혼 무렵, 나는 한없이 슬프게 창가에 서서 오늘의 휘황한 낙조가 풍덩 소리를 내며 건물들 사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물보라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저녁 무렵이 지나자, 무궁무진한 캄캄한 밤이 폭우처럼 하늘에서 쏬아졌다. 거리와 건물 숲에 있는 모든 등불이 비에 젖었다. 그런 공황과 으스스하고 서늘한 느낌은 지금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날 밤, 자정을 알리는 시계 소리가 울릴 때, 나는 잠재의식 속에서 손을 뻗어 무언가 잡으려했다. 하지만 두 손에 잡힌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이 순간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뱅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의 30세, 내가 뜻을 세우는 해에게,이렇게 내 신체의 대문을 열었다. 비록 내가 차갑게 맞이했지만, 고개를 끄떡여 의사표시를 하지도 않았고, 의례적인 악수도 하지 않았다. 좌우 여닫이문은 무거웠고, 나는 지쳤다.

30세, 하나의 원본과 어떤 나이 세는 법으로도 결코 무슨 두 가지 형태의 나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 때문에 무서운 악마의 저주 혹은 하나의 벗어던질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는 우리의 정신을 한 번도 겪지 못했던 곤경에 빠지게 하나? 우리가 고의로 앞서 간 길에서 자기에게 하나의 극복하기 어려운 정신장애를 스스로 설치하려 하는 것일까?
나는 사람마다 다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일 근본적 연유는 대체로 같다. 우리는 어둠도 두려워 하지만, 보다 두려워 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진실한 자기와 마주 대하는 것이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그 당시의 나는 엄연히 철두철미한 실패자였다.
나는 그 때 업계에서 명망 높은 한 직장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월급은 박했고 앞날은 암담했다. 같은 나이 또래들은 대부분 장가도 가고, 애도 낳고, 집도 사고 차도 샀다. 사업상 대다수가 득의 만만해서 질주하고 있었다. 정치하는 친구들은 단번에 청운의 꿈을 이루었고, 교육에 몸담은 친구들은 널리 후학들을 양성했고, 상업에 종사하는 친구들은 거금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결혼도 못했고, 부동산도 못 샀고, 여전히 남에게 얹혀살았으며, 혈혈단신, 형체와 그림자가 서로 위로하는 꼴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었다.

이것은 어쩌면 애석해하거나 유감스러워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결국 소금에 절인 생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단지 내가 가슴에 품은 큰 뜻일 뿐이었다. 하우키 무라까미(村上春樹) 선생이 작품을 쓴 생애도 30세에 시작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제일 치명적으로 사람을 근심 걱정하게 했던 것은 과거 5-6년 간의 그저그랫던 기관 생활이었다. 내 일생에서 제일 진귀한 청춘이 소모되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나의 성공적인 이화(異化)는, 너무 무능하여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이 그저 현상에 안주하고 조심스럽게만 행동하는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의 각이 선명한 모서리는 여러 번 연마되어 평평해졌다. 가슴에 용솟음치던 뜨거운 피는 진작에 차갑게 식어 버렸다. 그 당시 호랑이를 겁내지 않았던 어린 송아지의 투지는 벌써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생활은 온수 속에서 삶아지는 청개구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비록, 진작에, 이곳에 계속 체류하게 되면 어떤 결말이 오리라는 것을 잘 알았지만, 그래 보았자 현상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이것 때문에 한차례 다른 식으로 생계를 도모하려고 기도하는, 역심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또, 버리고 취하는 것 사이를 배회했다. 그리고 이 배회로 여러차례 좋은 기회를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