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고통이 끝났지만 그 고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업무기준을 참고하여 개인의 가치를 최대화하는 시도를 했다. 결국, 그동안의 자질구레했던 일을 중지하고, 왕성한 야심도 하루아침에 깨버리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결단을 눈앞에 두고 이립(30세)의 해를 맞았지만, 나는 허무하게 운명이 가져다 줄 호의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이 최대의 슬픔이었다.
나는 이때문에 내 일생 동안 큰 일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했다. 나같이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절박한 상황에 놓이지 않는 한, 솥을 부수고 배를 불사르는 배수의 진을 칠 결단을 하기 어렵다. 나는 내 신체 속에, 태어날 때부터, 하나의 극복하기 힘든 타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 않나 의심한다. 그것은 우리 고향 시골에서 흔히 보아온 진흙 빛깔의 게으른 뱀같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때가 되지 않으면, 누가 어떻게 가지고 놀든 게으르게 꿈쩍 할 뿐이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살아있는 관성(慣性)이다.
이 관성이 유전되어 온 것일까? 아니다. 나의 부친과 모친은 모두 대단히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던가! 모친의 신념은 굳게 참고 견디며,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경험을 예로 들면서 나에게 간곡히 말했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왜 못하겠니? 설령 다른 사람이 못하는 일이라도 우리는 응당 해봐야 하는거야."
나의 부족한 점은, 바로 모친의 이런 전력투구하는 태도이다. 정말 모친은 나와 비교가 안된다.
바로 나의 성격 가운데 우유부단함과 사람의 마음을 천진스럽게 보는 환상은 나를 이런 바늘방석 같은 심판대에 앉게 했다. 정말 내가 스스로 취한 모욕이요, 자업자득이다.
나를 심판한 것은 타인이 아니라 또 다른 나였다. 나와 이 심판관은 어둠 속에서 서로 살펴보다가, 서로 상대를 가늠해보았고, 계속 여러 해 전에 헤어졌다가 결국 서로 알아본 형제처럼 서로 끌어안고 통곡했다. 그는 역시 몇 년 전의 바로 나였고, 뜨거운 피와 이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한 명의 "무력 청년(無力靑年)" 같았다.
그의 심판을 마주하며, 나는 꼬치꼬치 스스로 물었다.
곧 이립의 해가 되는데, 너는 어떻게 자립하고, 사업을 일으킬 텐가? 설마, 너는 일생을 과연 이렇게, 하루 또 하루, 한해 또 한해 그럭저럭 지내고 말건가?
이립의 해를 중국어 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이 30세가 되면, 당연히 인격이 자립해야 하고, 학식을 자립해야 하며, 사업을 자립해야 되는 그런 나이이다." 이 나이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당연히 완전 독립을 하는 것 외에도, 보다 많은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생활 가운데 또는 가정생활 속에서, 우리는 모두 앞의 말을 받아서 뒤에 말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우리가 이 해에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망연자실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이 나이가 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을 아직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앞날과 운명을 걱정하면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이런 일들을 모두 적절히 잘 해결할 수 있을까? 미세먼지같이, 주된 나쁜 것이 사라졌다고 해도 그 악영향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막막함을 그림자도, 종적도 없이 주동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도리스 레싱(1919~2013 : 영국 소설가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은 < 생존자의 회고록 >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건들을 회고하면, 우리는 충분히 당초 사건이 발생했을 때 느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내포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이 사건들은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만들어 자신을 휴일 다음날, 공원 잔디밭에 내버려진 폐기물처럼 느끼게 만든다.
사람은 피차 비교하게 되는데, 그것은 사건의 본질에서 아직 인가되지 않은 것들이 앞으로 획인될거라는 희망 혹은 기대와 비슷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들은 어떤 것들은 완전히 외부로 배제시켜놓는다."
현재 이 한 달과 만났던 것을 회고하면, 확실히 이 영국 여류작가가 한 말처럼, 나는 사건의 본질에 비해서 청춘에 대한 애도와 앞날에 대한 걱정이 보다 많고 풍부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록 나의 개인적 경험은, 레싱의 전국 또는 세계적로 파급된 재난이라는 허구의 장(場)보다, 너무나 작아서 말을 꺼낼 것도 없다.
이 하나의 형편없이 망가진 달이, 나 개인의 성장으로 말하자면, 나비가 허물을 벗고 우화 하거나 봉황이 열반하기 전날 밤과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아픔은 의심할 것 없이 고통스럽다. 네가 어둠 속에서 자신과 직면할 필요가 있고, 그가 죽게 생겼다면, 자기 돈을 써서라도 구해내야 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나에게 준 선물은 바로 < 생존자의 회고록>에서 번역자가 이 소설을 평한 말과 같다. 그것은 재난에 대한 깊은 체험이기도 하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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