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양길이 가경황제에 의해 이리로 유배를 갔던 이후, 바로 뒤따른 사람은 국사관편수관, 보천국(조폐공사 해당 기관) 감독 기운사(祁韵士)였다.
기운사는 가경 9년 (1804), 보천국 동(銅) 부족 사건 때, 다른 사람의 무고로 체포되어 하옥되었다. 가경이 평생 제일 싫어한 것이 횡령, 수뢰범이었는데, 상소문을 보자 탁자를 치며 대노(大怒)하였다. 그는 바로 교지를 내려 보천국 감독을 역임한 사람들을 법에 따라 감옥에 가두고, 모두 죽을죄를 지었다고 단정하었다. 기운사의 이름도 그 명단 가운데 들어있었다.
기운사는 근면하고 학문연구에만 혼신을 다하는 바보 같은 책벌레였다. 비록 그의 품계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의 학식과 품덕(品德)은 모두가 익히 알았고, 많은 조신들이 탄복해 마지않았다. 수십 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전임자들이 저질러온 거액의 결손 사건에 막 임명받은 기운사도 이끌려들어 갔고, 참형 집행에 배방( 陪绑 :사형집행을 강제 참관케 하여 겁을 주거나, 자백하게 하는 중국 특유의 형사 제도)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공정하지 않다고 대들거나 억울해하지 않았다.
여러 조신(朝臣)들이 가경에게 기운사의 사형을 면제해 달라고 주청 했다. 가경은 유가의 경전과 서적들을 많이 읽은 사람이었다. 그는 바보도 아니고, 억울한 사정이 반드시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의사를 이미 밝혔는데, 어찌 황제의 말을 주워 담을 수 있겠는가? 기운사는 사형은 면할 수 있었지만, 살아서 치룰 죄는 용서받을 수 없어서, 서북방, 이리로 3년간 보내졌다.
지식인으로서, 그가 어릴 때부터 등을 밝히고, 밤 새워, 새벽닭이 울 때까지 책을 읽으며, 상투를 대들보에 묶고,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르며 잠을 쫓았던 이유는, 오직 국가를 위해서, 그리고 가문에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유배는 지식인의 정신세계에 커다란 손상을 입혔다. 세상 물정의 냉혹함, 친구들의 백안시, 이상(理想)에 대한 환멸, 이런 것들이 그를 돌아 올 수 없는 심연에 추락시켰지만, 이느 순간, 호호 숨을 불어 미약한 생명의 작은 불꽃을 되살릴 수 있었다.
기운사는 황제의 성지를 듣는 그 순간,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유배의 길을 걸어가는 그날부터, 기운사는 "시(詩)를 가까이하지 않기"로 습관을 바꾸었다. 하지만, 서북지방의 웅휘하고 장려한 자연 풍광은 그를 '서재에서 책이나 보는 학구파 기질'에서 벗어나게 했고, 하루도 시를 안 쓰는 날이 없는 시인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만리행정기>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서북지역에서의 노역 : 을축년 2월 18일 수도에서 출발한 지 6개월이 걸려서, 7월 17일이 되어서야 겨우 이강(伊江)에 도착했다. 날자로 쳐서 170여 일, 그동안 본 것은 산천(山川) 성루, 명승고적, 인물 풍속과 요새 밖 봉화대, 황사였는데 이런 일체가 특이하고 공포스러운 장연이었다. 주변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느낌으로 눈에 다 들어왔다. 그는 객사에서 쉴 때마다, 손 가는 대로 드문드문 글을 써서 작은 상자에 던져 넣었다. 그것도 날자가 오래되자 점점 쌓여갔고, 어디서 썼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서북지역에 도착한 후, 일이 없는 휴일 혹은 바람불고 궂은비가 내리는 날, 혼자 앉아있기 무료해서 글을 썼던 헝겊 조각들을 꺼내 보았다. 하나하나 모아서 생각해가며 들여다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조금 덧붙히니, 점점 완결된 글이 되어 긴다."
행간의 글자 어디엔가, 유배 당해 가는 사람의 처량하고 슬픈 마음이 배어있다. 이것은 전부 한 전문가, 학자의 부지런함과 노력의 결과이다.
기운사는 신강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신기함을 느꼈다.
그는 선선(鄯善), 연목심(連木沁)에서 카얼징(坎儿井: 천산에서 내린 눈 녹은 물을 지하로 연결한 수로)을 보고 말했다.
"돌 틈에서 갑자기 샘이 솟아, 조금 북쪽에 있는 계곡, 깊은 숲속에 솟은 샘물과 다리 부근에서 합해져서 졸졸 소리내며 흐른다. 위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우거져, 어두운 구름 징막을 두른 듯하여,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날씨임에도, 문득 맑고 서늘하다. 그 때보니, 사람들 머리가 여럿 보이고, 부녀자들은 깔깔대며 말에 물을 먹이고 빨래를 해서 방망이로 두드린다. 사람들 왕래가 끊이지 않는, 또 다른 별천지 같다."
우루무치에 도착하자, 그는 이렇게 썼다.
"북로에서 제일 인구가 많고 물자가 풍부한 지역이다. 가게들이 꽉 들어찼고, 밥 짓는 연기가 사방에세 일어난다. 모래 산과 울창한 숲이 보기만해도 멀고 아득하다.
그의 글은 요점을 찔렀고, 대체로 모든 것이 맞았다.
그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요새안의 목호(木湖)를 이렇게 묘사했다.
"푸른 색과 남색이 물이 깊고 얕은 데 따라 층이 진다. 물결이 잔잔하여 거울같은데, 빛나는 하늘과 산의 빛갈이 거꾸로 비쳐진다. 홀연히 여러가지로 변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구나. 어느 때는 원앙과 흰 기러기가 헤엄치며 오가는데, 갈매기같이 무심하여, 사람을 보아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정말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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